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Sep 28. 2022

오늘도 쓰레기 한 편을 씁니다

2022. 09. 28.  07:42



쓰레기는 버릴 수 있어야 쓰레기입니다. 버리지 못하는 건 쓰레기라고 할 수 없습니다. 버리지 못해 쌓아 두면서 악취도 나고 벌레도 생깁니다. 쓰레기는 버려야 냄새도 안 나도 빈 공간도 생기고 건강한 일상을 살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쓰레기는 어떻게든 언젠가는 버리게 됩니다. 가끔 때를 놓쳐 곤란한 경우를 겪은 후에 버리기도 하지만요. 눈에 보이지 않는 쓰레기, 우리 마음에 남은 감정의 찌꺼기, 머리에 남는 생각의 쓰레기는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요?


쓰레기를 버릴 때 재활용으로 나누어 버리듯 보이지 않는 쓰레기를 버리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상처를 준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거나, 전문의의 상담을 받거나, 역할극을 통해 상대방이 되어보거나, 아니면 기억에서 사라질 때까지 꽁꽁 싸매도기도 합니다. 여러 방법 중 많은 사람이 경험한 글쓰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단지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그동안 쌓였던 거의 모든 찌꺼기를 씻어낼 수 있다고 합니다. 주변에는 이런 경험을 한 이들을 손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글쓰기가 입증된 방법이 된 것입니다. 사례가 많다는 건 그만큼 쉽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쉬운 듯 쉽지 않은 게 글쓰기입니다.


나를 보여주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책에서 하라고 해서 시작은 했지만 쓸수록 만만치 않았습니다. 나를 보여준다는 건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용기도 어디까지 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이 저에게도 해당된 것 같습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하나씩 드러내자고 마음먹고 쓰기를 이어갔습니다. 과거의 경험은 그 자체로 보여주면 됩니다. 그러나 불편한 감정, 원망, 비교, 시기, 후회, 미움 같은 감정을 쓰려니 손이 멈췄습니다. 이런 걸 쓰고 나면 나에게 남는 게 무엇일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괜한 오해를 부르는 건 아닌지. 더 큰 화를 일으키는 건 아닌지. 더 깊은 오해를 남기는 건 아닌지. 말 그대로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용기와 결단은 삶에 유익한 행동인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을 시작하려고 마음만 먹고 있는 것보다 일단 시작하면 무엇이든 얻게 되니 말입니다. 시작하는 데는 용기와 결단이면 충분했습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감정은 놓아두고 일단 잡히는 것부터 하나씩 풀어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 형들에 대한 오해, 나 자신에 대한 실망,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아내에게 저지른 실수 등. 모른 척 외면했던 감정의 찌꺼기를 마주하고 맨 손으로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냄새가 심해 코를 막기도 했습니다. 썩어 문드러져 손에 잡히지도 않았습니다.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도 있었습니다. 버리고 비우고 남은 자리에 벤 냄새와 자욱을 깨끗이 닦아 냈습니다. 그렇게 다시 생긴 자리에는 깨끗하고 좋은 것만 채우려고 합니다. 원망 대신 감사를, 오해 대신 이해를, 실망 대신 기대를, 미안함 대신 애정을, 실수 대신 당당함으로 말이죠.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을 쓰려고 한다면 5년 동안은 쓰레기를 영산 한다고 생각하라, 나는 세상 최고의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쓰레기'같은 글을 저는 마음껏 아무 글이나 쓰라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건 자신만의 특권입니다. 그런 글을 굳이 남에게 평가받을 필요는 없을 겁니다. 더불어 이왕이면 자기 안의 찌꺼기를 치울 수 있는 글을 쓴다면 그 5년이 더 가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같은 5년을 써야 한다면 적어도 자신의 마음은 깨끗하게 정리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졸작 같은 글로 자신의 감정의 찌꺼기와 생각의 쓰레기를 정리하고 나면 분명 더 넓고 깨끗한 공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새로운 생각과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입니다. 그때는 이전보다 더 건강하고 더 세련되고 더 힘찬 글이, 자신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2022. 09. 28.  08:32


매거진의 이전글 빈 종이가 두렵다면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