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Oct 26. 2022

쾌감을 주는 찰나의 순간

2022. 10. 26.   07:35



달콤한 음료나 과자를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때가 온다. 이는 뇌에 세로토닌이 증가해 순간적으로 쾌감을 느끼게 되고 이를 '지복점'이라고 한다. 달콤한 맛이 나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지복점을 계산해 당 함량을 조절한다고 한다. 그래서 당이 든 음료나 과자를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쉽게 끊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분이 좋아지는 상태는 중독이라고까지 말한다. 과자 한 봉지, 음료수 한 잔을 마시는 그 순간은 기분이 들뜨고 걱정도 잊는다. 또 과자나 음료수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한 몫한다. 우리 삶에도 지복점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자신이 정한 목표에 닿았을 때이다. 목표가 크든 작든 성취하는 그 순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근육 빠진 게 눈에 보일 정도예요 회원님."

6월에 개인 PT가 끝나고 연장을 못했다. 20회를 추가하면 남은 7개월 동안 꾸준히 관리할 수 있다고 트레이너가 제안했다. 마음은 당장이라도 연장하고 싶었다. 언제나 돈이 문제다. 아내에게 넌지시 물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단다. 조르지도 못하고 입을 닫았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언제 어느 때 눈먼 돈이 생길지도 모르고, 또 어느 순간 아내가 마음을 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3번 이상 운동하러 간다. 갈 때마다 트레이너와 마주친다. 트레이너도 PT 받으라고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한다. 서로 눈치만 보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운동을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쩌다 안부인사 겸 PT연장 여부를 넌지시 묻는다. 당연히 연장하겠다고, 다음 달까지만 기다려 달라며 웃어넘겼다. 그렇게 끌어온 게 4개월 째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나를 지켜본 트레이너가 한 마디 건넸다. 요즘 들어 운동에 열의가 없어 보인단다. 나도 핑계를 댔다. 자주 오지도 못하고 시간에 쫓겨 오니 급하게 하고 간다고. 트레이너는 누가 되었든 PT를 다시 받으라고 했다. 그래야 이제껏 노력한 걸 지킬 수 있을 거로 말했다. 맞는 말이다. 설렁설렁하다 보면 어느새 몸은 원래대로 돌아가고 말 테다. 


처음 PT 받기 시작했을 땐 재미도 있었고 의지도 넘쳤다. 짧은 시간 극적인 변화를 바라고 시작한 운동이 아니었다. 꾸준히 지치지 않고 운동이 삶의 일부분이 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트레이너도 내 뜻에 맞게 운동량을 조절해 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덕분에 운동에 대한 동기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다. PT를 받는 날은 트레이너가 시키대로 해내다 보면 성취감이 가장 컸다. 안 될 것 같은 순간도 그의 구령에 쥐어짜듯 하나 더 해내면 쾌감 같은 게 느껴졌다. 힘은 들어드 한 세트를 마무리했다는 나 자신이 뿌듯했다.    


정해진 PT가 끝나고 혼자 운동을 이어갔다. 배운 대로 동작과 세트를 계산하며 한 시간 남짓 운동했다. 혼자 운동을 이어갈수록 슬금슬금 요령을 피웠다. 세트 수도 오락가락, 힘들면 중간에 포기하고, 정해진 시간을 다 채우지도 않았다. 내가 보는 거울 속 나는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였다. 트레이너와 운동하는 동안 만들어진 몸을 유지하고 있는 걸로 보였다. 당연히 더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트레이너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몸은 거짓말을 안 한다고 했다. 운동량이 적어지면 몸도 따라서 변하게 되어있다. 


일주일에 2~3회, 한 번 가면 1시간가량, 1시간 동안 5~6개의 운동기구 최소 4세트씩 한다. 세트가 거듭될수록 몸은 힘들다. 마지막 세트에는 들 힘조차 없어 이를 악물기 까지 한다. 옆에서 구령을 넣어주고 '할 수 있다'라고 응원을 들으면 안 될 것 같은 순간도 기어이 힘을 내게 된다. 찰나의 고비를 넘기면 비로소 해냈다는 성취감에 뿌듯해진다. 달콤한 음식을 먹었을 때 세로토닌이 분비되는 것처럼 말이다. 운동뿐 아니라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은 이러한 고비의 연속이다. 오늘 아침 아이들을 위해 무슨 반찬을 만들어주지? 오늘 미팅을 잘해야 계약을 따낼 수 있을 텐데, 이번 시험을 잘 봐야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데. 어떤 일이든 시작이 있고 과정을 거쳐 결과를 얻게 된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이상 실패든 성공이든 결과를 손에 쥔다. 성취가 어느 시점에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예상한 대로 잘 해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게 세상일이기도 하다. 또 반대로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때 뜻하지 않는 성과를 갖게 될 수도 있다. 성공이든 실패든 마지막 한 번의 고비는 찾아오는 법이다. 숨이 차 더 이상 들어 올릴 수 없을 것 같을 때, 옆에서 큰소리로 힘내라는 말이 들리면 나도 몰랐던 힘이 쏟는다. 계약을 따내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고 생각 들 때 한 번 더 점검하는 태도. 공부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 들어도 한 번 더 보겠다는 자세. 누군가의 지시일 수도 있고, 자신의 의지일 수도 있다. 동기가 어떠하든 그 한 번의 노력이 결국 바라는 성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인생은 길고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혼자 넘는 산도 있고 함께 넘는 산도 있다. 올라도 끝이 안 보이는 산도 있고, 구릉처럼 가볍게 넘는 산도 있다. 어느 순간 어떤 산을 넘더라도 고비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힘이 들고 안 들고의 차이일 뿐이다. 그렇다고 정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고, 어떤 고비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마음이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낼 테니 말이다. 


2022. 10. 26.   08:34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