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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Nov 11. 2022

된장찌개는 오래 끓일수록
깊은 맛을 낸다

기다림은 삶의 일부분

2022. 11. 11.  07:36



된장찌개가 맛있으려면 된장 맛도 중요합니다. 그것보다 뚝배기 안에서 다양한 재료와 된장이 한데 어우러져 끓여지는 시간이 맛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끓는 내내 재료의 맛이 우러나며 깊이를 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된장찌개를 끓을 때까지 기다려주면 됩니다. 기다림 뒤 맛보는 진하고 구수한 한 입이 그 시간을 잊게 해 주니 말입니다. 간혹 기다림을 참지 못해 먼저 불을 끄면 맛은 덜 할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도 깊이 우려난 된장찌개 맛을 즐기기 위해 기다리듯, 기다림이라는 대가를 치렀을 때 얻게 되는 것들이 왕왕 있는 것 같습니다.


기다림이 부끄러운 감정이 아닌데 스스로 그렇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런 내용의 글을 쓰려니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믿는 저는 기다림도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다리는 데 익숙해져야 쓸데없는 감정 소모나 힘을 낭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머리로는 그래야 한다고 다짐을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을 때가 더러 있습니다. 

지난달에도 투고를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는 동안 반가운 소식을 주는 출판사가 없습니다. 투고의 역사는 작년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때는 시작부터 기다림을 각오하고 투고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달이 지나서야 겨우 계약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뒤로도 두 번째, 세 번째 책 투고를 했지만 결과는 기다림만 남겼습니다. 그래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당연한 과정이라고 여겼습니다. 투고를 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더 컸습니다. 제대로 된 책을 쓰지 못했던 때에 비하며 이루 말할 수 없을 테니까요. 

저도 사람인지라 기다려야 한다는 감정 반대편에는 그림자처럼 희망이 자리해 있습니다. 희망 때문에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대가 버팀목이라 여겼습니다.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희망과 기대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만 지치지 않으려면 적당 때에 희망에 응답이 오길 바랐습니다. 세상일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 걸 새삼 깨닫습니다. 깨닫는다는 건 마음을 비울 수도 있다는 의미인데 그렇게까지는 못하겠습니다. 포기가 안 됩니다. 포기는 어쩌면 제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걸 수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일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생각하면 지금 이 정도는 얼마든 이겨내는 게 맞습니다. 이 생각이 맞다면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일 테고요.


기다림을 참지 못하게 만드는 독버섯 같은 감정이 하나 있습니다. 비교입니다. 지금껏 여러 내용으로 비교의 감정이 쓸모없음을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도 비교에서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해왔고. 쓸모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또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인지라 비교의 감정이 크림빵 속 크림처럼 한데 섞여 있습니다. 빼빼로에 초콜릿과 과자가 분리된 것처럼 따로 떼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쉽게도 빼빼로를 한 입 물면 결국 과자까지 먹게 되는 걸 보면 비교에서 벗어난다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기다림은 지루하고 비교는 답답하고, 총체적 난국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두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안 하면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없으니 이렇게 붙잡고 사는 것 같습니다. 다르게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내가 붙잡고 있는 것과 그저 곁에 두는 것의 차이로 접근하는 겁니다. 내가 붙잡고 있다는 건 반대로 내가 놓을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놓지 못해 매달리고 조바심 내고 비교하는 것입니다. 놓아버린다고 그 감정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저 곁에 평생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문득문득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조금이라도 자유로우려면 있는 듯 없는 듯 곁에 두는 게 답인 것 같습니다.

감정은 인정해주고 마주했을 때 실체를 드러낸다고 했습니다. 또 이름을 붙여주면 그 감정에서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우울할 땐 우울을 인정하고 내 기분에 이름을 달아주면 한결 수월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기다림도 같다고 여깁니다. 기다림의 끝을 마주하길 바라면서 지금 감정을 이렇게 글로 표현합니다. 


이 기다림이 결국 저를 숙성시켜줄 것입니다. 기다림에 굳은살이 배기면 더 단단한 새살이 날 테고요. 기다림에 무뎌지면 희망을 갖지 못할 것 같습니다. 기다림은 당연하지만 설렘은 잃고 싶지 않습니다. 설렘이 없는 기다림은 초코 없는 빼빼로와 같습니다. 먹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기다림도 삶의 한 부분이라 여깁니다. 지치지 않으렵니다. 지친 나를 보면 서글퍼질 것 같네요. 그러려고 매일 이렇게 글을 쓰는 게 아닐 테니까요. 끓일수록 맛이 우러나는 된장찌개처럼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뚝배기 안에 다양한 재료들이 맛을 우려내듯 오늘 또 한 편의 글로 제 삶의 맛을 우려내 봅니다.   

   

2022. 11.1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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