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Nov 14. 2022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가 아니다

2022. 11. 14.  07:06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했다.  아는 것이 힘이 되기도 하지만, 알아서 힘이 빠지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차라리 모르고 덤비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멋모르고 덤비는 사람에게 운도 따르고 나름의 성공을 손에 쥐기도 하니 말이다. 알면 따지게 된다. 겁을 내게 되는 것도 아는 게 많아지면서이다. 막연했던 것들에 실체를 알게 되면 섣불리 달려들지 못한다. 뇌가 그렇게 시킨다. 뇌를 속이는 방법을 안다면 겁낼 일도 줄어들 수 있다. 물론 속아준다는 전제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모든 시작에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제 아무리 완벽한 계획도 용기 내지 않으면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용기는 준비가 완벽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일 때 생긴다. 나는 무턱대고 시작했다. 이거라도 한 번 해보자 식이었다. 용기라고 할 수 없었다. 5년 전 만약 끓어오르는 열정과 담대한 용기를 품고 시작했다면 어쩌면 더 빨리 목표에 닿았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았기에 목표가 원대하지도 뚜렷하지도 않았고 5년째 같은 일상을 반복해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명확한 의식을 갖고 시작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과정이 달라지는 것 같다. 나처럼 흐리멍덩하게 시작하고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목적의식을 갖는다면 시간이 더딜 수밖에 없다. 반대로 선명한 의식을 가질수록 시간에 비례해 결과치도 더 크고 빠르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개인의 차이는 있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를 읽은 결론은 후자가 더 빨리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의미에는 용기가 커진다는 것도 담고 있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부터 알고, 모르는 걸 배울수록 나에 대해 알게 된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걸 구별하게 되고, 할 수 있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도 알게 된다. 그렇게 자신만의 강점을 찾아가면서 더불어 용기도 자란다. 나도 그랬으면 지금 이렇게 불안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물론 시작하기 이전의 나와 비교도 안 될 만큼 달라진 부분은 있다. 하고 싶은 걸 찾았고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그렇다. 여기에 함정이 있는 것 같다. 오랜 시간 탐색 끝에 하고 싶은 걸 발견하고 꾸준히 성과를 내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선택이 맞는지 의심이 든다. 의심이 드는 건 아마도 이전에 몰랐던 현실을 알게 되면서인 것 같다. 


막연하게 작가를 꿈꿨다. 단지 평생 일 할 수 있고 운이 따르면 제법 경제적 안정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5년을 부딪쳐보니 결론은 녹녹지 않다는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를 욕심은 없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막상 마주한 현실은 용기를 꺾기에 충분했다. 용기를 더 내고 열정을 불태워도 모자랄 시기에 전의를 상실한 폐잔병 꼴이 되었다. 그동안 내가 마주한 현실은 누군가에게 들었던 그런 것들이었다. 글은 돈이 되지 않는다,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책 한 권으로 이름 알리려고 하지 마라, 글을 잘 쓴다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어느 출판사도 호의적이지 않다, 알아서 하지 못하면 알아서 도태된다. 


아마 이렇게 읽을수록 기운 빠지는 글을 읽고 싶은 사람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글로 쓰면서 불안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겠다며 막무가내로 썼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쓰고 나면 때로는 힘도 얻지만 때로는 왜 이러고 있는지 싶을 때도 있다. 넋두리로 글을 마무리한다면 나 조차도 배울 게 없다. 그래서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해 보려고 한다.


막연했던 현실을 마주하면서 실체를 알게 되었다. 두려움이 생기는 이유는 실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실체를 알고 나면 두려울 이유도 사라진다. 남들에게 들었던 작가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부딪쳐 깨달은 건 막연한 불안을 지우게 해 줬다. 두려움을 지우니 현실만 남는다. 현실은 인정하면 그만이다. 부족한 실력을 인정하고, 덜 대중적인 글이라는 걸 인정하고, 더 잘 사는 게 더 잘 쓰는 것이라는 걸 인정하면 된다. 인정하면 내 위치가 보인다. 어디쯤 인지 알면 그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는 아니다. 적어도 '한 번 해보지 뭐'처럼 주먹구구는 아니다. 어느 정도 현실감을 갖고 조금 더 단단하게 상황을 버텨낼 힘을 키웠다. 다시 말해 섣불리 포기하지 않겠는 것이다. 괜한 걱정으로 망설이지 않고, 될까 안 될까 고민하지 않고, 한 방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동안 얻은 것들이 힘이 되었다. 직접 경험하며 얻은 것들이다. 이게 진짜 '아는 것'이라 생각한다. 막연했을 때보다 지금은 알게 된 게 더 많다. 알게 된 것들을 밑천 삼아 가던 길 계속 가려고 한다. 기운 빠지는 글보다 기운 나는 글을 써야겠다. 아는 것을 종잣돈 삼아 힘이 나는 글을 쓰면서 말이다. 


2022. 11. 14.  08:42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에 필요한 두 가지 피드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