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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Nov 30. 2022

성진아, 강진은 따뜻하니?

2022. 11. 30.  07:35


흔들리는 나뭇가지만 봐도 찬기운이 전해지는 것 같은 아침입니다.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창 사이로 슬쩍슬쩍 들이치는 바람에 다리가 시립니다. 자고 났더니 우리를 겨울의 한 복판으로 데려다 놓은 것 같습니다. 무슨 글을 쓸지 생각하다가 불현듯 강진 사는 친구 성진이가 떠오릅니다. 강진은 여기만큼 추울까?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영상 1도입니다. 어제보다 15도 낮아지긴 했지만 서울만큼 춥지는 않을 겁니다. 추위가 싫은 저는 덜 추운 곳에 사는 친구가 살짝 부럽습니다. 겨울에 만요.


성진이가 강진으로 내려간지도 6년이 지났습니다. 아내의 사업을 위해 직장도 포기하고 강진행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두 아이의 진로도 오래 고민했을 겁니다. 서울에 살면서 누렸던 다양한 혜택(?)도 포기해야 했을 겁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그들은 새로운 문을 열었고 치열한 노력 끝에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여전히 치열한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6년 전 선택 앞에서 고민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지켜본 저를 비롯한 다른 친구도 불안했는데 정작 당사자는 얼마나 더 불안했을까요? 무엇도 선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건 말 그대로 무모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정을 내리고 선택을 믿으며 지금껏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사업도 자리를 잡았고 집도 장만하고 원하는 취미도 즐기며 나름 여유로운 삶을 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성진이가 부러운 건 아닙니다. 새로운 기회이긴 했지만 포기한 것도 많았습니다. 저라면 포기해야 할 것들 때문에 같은 선택을 못했을 것 같습니다. 서울에 비하면 강진은 작은 곳입니다. 사는 곳 주변으로 편의 시설이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없는 게 없다고는 하지만 서울에서 누렸던 것에 비하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성진이도 불편을 감수하는 건 더 큰 가치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병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더 나은 진료를 받으려면 근처 목포나 광주로 가는 불편을 감수합니다. 영화 한 편 보려면 차를 몰고 한 시간은 달려야 합니다. 수입차에 꽂혀 장만했지만 정작 서비스를 받으려면 광주까지 나와야 하는 불편도 있습니다. 집이 외진 곳에 위치해 과자 한 봉지를 사려면 차를 타고 나와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직접 살아보지 못해 적지 못한 게 더 많습니다. 정작 본인에게는 이보다 더 불편한 게 많을 수 있습니다.


일산에 산지 14년째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게 불편할 뿐입니다.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혜택을 마음껏 누리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생활이 영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이곳을 벗어나야 할 때 올 겁니다. 그때가 온다면 이왕이면 덜 추운 남쪽으로 가고 싶습니다. 20대 때 일 때문에 제주도에서 1월 한 달을 보낸 적 있습니다. 1월의 제주는 외투가 필요 없었습니다. 아침과 저녁은 봄가을에 느끼는 쌀쌀함 정도였습니다. 추위를 싫어하는 제게는 딱이었습니다. 그때 제주의 한 달 살이가 머지않아 저를 그곳으로 이끌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상상만 해도 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현실은 냉기로 가득해 보입니다. 당장 사무실로 가는 길에 마주할 찬바람에 어금니가 벌써 덜덜 거립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강진에 사는 성진이를 부러워한다고 당장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언젠가 제주도에 살 걸 상상한다고 몸이 따뜻해지는 것도 아닐 겁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외투를 뚫고 들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면 사무실까지 출근하는 것입니다. 출근하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고, 주어진 일을 하며 월급을 벌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의미 있게 하루를 보내면 또 다른 하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춥다고 합니다. 더 추워진 날씨를 또 버티며 하루를 보낼 겁니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와 추워진 날씨를 이겨내며 오늘을 살다 보면 따뜻한 곳에서 살 수 있는 기회도 찾아올 것입니다. 그때를 기약하며 오늘도 추위를 이겨내고 내 역할에 충실하는 하루를 보내려고 합니다.   


2022. 11. 3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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