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25. 06:40
건축설계는 5학점 전공 필수였다. 누구도 선뜻 포기할 수도, 그렇다고 쉽게 학점을 딸 수 있는 과목도 아니었다. 설계수업은 일방향 방식이 아니다. 내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한 뒤 교수님의 피드백받는 과정을 반복된다. 이를 통해 설계를 배우고 결과물의 질도 높일 수 있게 된다. 설계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이다. 다양한 아이디어 중 조건에 맞는 최선의 선택을 위해 여러 의견을 듣고 판단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주변 사람의 피드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도 살다 보면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필요로 한다. 여러 의견을 듣고 판단할 수 있다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6살, 또래보다 빨리 내 일을 시작했다. 사회 경험은 없었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은 있었다. 그 믿음이면 누구보다 빨리 원하는 직장을 만들 거로 생각했다. 상대방에 대한 확신과 막연한 기대를 믿고 선택했다. 선택에 앞서 누구에게도 의견을 묻지 않았다. 혼자 생각하고 판단했다. 믿음이 판단의 근거였다. 그 믿음에 금이 가는 데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무런 진전 없이 시간만 갉아먹고 있었다. 내 선택이 옳았는지 의심이 들었다. 다른 선택이 필요했다. 그때도 아무에게 묻지 않았다. 물을 처지가 아니었다. 주변 사람에게는 사업한답시고 그럴듯한 모습만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러니 혼자 일자리를 알아보고, 몰래 면접을 봤고, 운 좋게 입사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두지 못했다. 다른 길을 앞에 두고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두 번이나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그때는 그곳을 벗어날 용기를 못 냈던 것 같다. 기회가 있었음에도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
그때는 냉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현실을 똑바로 볼 용기를 못 냈다. 어쩌면 내 선택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벗어날 기회를 만들었어도 스스로 포기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때 만약 주변 사람의 시선으로 나를 볼 기회를 가졌다면 좀 더 냉정하게 판단했을 것 같다.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나에게만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부모님은 물론 형들과 친구들에게도 내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고 의견을 구했을 것 같다. 처음 시작할 때 올바른 판단을 못했기에 몇 년을 까먹었다면, 적어도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 더 솔직해지고 주변 사람 의견에 귀를 기울어야 했을 테다.
20대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선택이 두려운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선택을 결정하는 데 상대방에 대한 믿음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보다 내 선택이 올바른지 묻고 답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더 나은 설계를 위해 다양한 피드백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말이다. 주변 사람에게 자신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알리고 의견을 듣는 것이다. 그 과정에 내 생각과 다른 결과가 나오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걸 그들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난 뒤 내린 결정은 후회도 덜하다. 나는 그러지 못했기에 4년 반을 낭비했다. 물론 배운 것도 있지만, 신중하지 못했던 내 태도가 아쉬울 따름이다. 만약 지금 알게 된 걸 그때도 알았다면 좀 더 나은 선택을 했을 거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일찍 시작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패든 성공이든 결과와 마주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선택에 앞서 다양한 의견을 듣는 것이다. 20대의 선택은 대부분 낯선 것에 대한 도전이다. 불안한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경험이 많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런 부족함을 주변 사람에게서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다양한 의견을 듣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다른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 발 물러나면 분명 못 보고 안 보인 부분이 보인다. 그러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을 테다. 하고 싶은 일에 뛰어들 용기도 필요하지만, 하면 안 되는 걸 선택할 때도 용기는 필요하다. 어쩌면 후자의 용기가 더 현명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2022. 12. 25. 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