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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an 17. 2023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다

습작


2023. 01. 16.  07:35


밥솥은 비었다. 반찬 만들 재료도 없다. 금요일 저녁이라 아무것도 하기 싫다. 배달앱은 벌써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내는 통화 중이다. 두 아들은 학원 끝나고 오면 8시다. 통화가 끝나면 물어보고 시킬까? 두 아들이 돌아오면 먹고 싶은 걸 물어볼까? 회사를 나설 때부터 배는 고팠다. 있는 밥과 반찬으로 대충이라도 먹고 싶었다. 통화를 끝난 아내도 피곤한지 TV앞에 앉는다.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먹고 싶은 거 시켜." 아내가 대답했다. 다시 배달앱 화면만 넘긴다.

"조금 있으면 애들 돌아오는 데 그때 시킬까?" 아내는 TV만 보고 있다.  


둘이 같이 들어온다. 무슨 일 때문인지 둘 다 잔뜩 화가 나 있다.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각자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저녁 시켜 먹을 건데 먹고 싶은 거 있니?" 들렸겠지?

큰 아들은 먹기 싫단다. 작은 아들은 아무거나. 퇴근 무렵 차가워진 공기에 따뜻한 국물 생각이 났다. 배달앱을 켰을 때도 감자탕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3인분 주문했다. 괜찮겠지?


주문량이 많은 지 1시간 뒤 도착으로 뜬다. 9시 5분, 공동현관 인터폰이 울린다. 현관에서 포장을 받아 든 아내가 문을 닫으면 묻는다.

"여보! 반조리로 주문했어? 이럴 거면 더 일찍 주문했어야지" 알아서 하란 말에 따랐을 뿐인데. 

감자탕은 끓이면서 먹어야 제맛이다. 휴대버너를 식탁 가운데 올리고 냄비에 붓고 끓였다. 셋이 둘러앉았다. 끓는 동안 큰아들도 나온다.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체 식탁에 앉는다. 3인분만 시켜서 모자랄 텐데.

"양이 왜 이렇게 적어요?" 네가 안 먹겠다고 해서 안 시켰다고 차마 말 못 했다. 작은 아들도 한 마디 거든다.

"배달도 늦어서 배가 엄청 고픈데 이걸로는 부족하겠는데요." 아내도 거든다.

"이왕 시키는 거 많이 하지 그랬어." 결국 또 내 잘못이다.

"이럴 때 보면 당신 은근히 손이 작아. 당신 어머니는 정 반대고. 아주버님도 집에 놀러 올 때면 두 식구 다 먹을 수 있게 양도 알아서 제때 배달시켜 주던데."

나도 그런 형이 부러웠다. 작은형은 그런 면에서 탁월하다. 먹는 문제만큼은 한치의 망설임이 없다. 함께 자랄 땐 그런 형 덕분에 먹을 걱정 없었다. 늘 미리 챙겼다. 나는 숟가락만 챙겼다. 그게 당연했고 익숙해졌다. 선택은 늘 형 몫이었다. 


"맛은 있는데 양이 적어 먹다 만 것 같다. 너희는 어떠니? 라면 하나 더 끓여 먹을까?" 아내가 말했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저는 그만 먹을래요." 큰아들이 말했다.

"아빠도 드실 거면 세 개 끓일까요?" 나를 챙기는 건 작은아들뿐이다. 나는 빈 그릇을 싱크대에 담갔다. 밥때를 넘겼더니 감자탕도 별 맛없었다. 3인분을 넷이 먹으려면 누군가는 적게 먹을 수밖에 없다. 그게 나라는 건 암묵적 합의 같은 것이었다. 지금껏 그래왔다. 자식 입에 먼저 넣어주는 게 좋은 부모라고 배웠다. 그러려고 돈 버는 거라고. 내가 선택한 적 없지만 자식을 낳는 순간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먹고 싶은 건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먹고 싶은 게 먼저다. 선택은 늘 내 몫이 아니다. 


 

"여보, 회식이 길어질 것 같아. 애들은 할머니 집에서 저녁 먹고 천천히 올 거야. 밥이 없는데 어쩌지? 미안한데 밖에서 먹고 가면 안 될까?" 아내는 월 말이라 또 회식이었다. 그래도 밥은 챙겨줬는데. 

점심도 못 먹었다. 자리에 일어나는데 부장이 불렀다. 2시에 임원 보고가 있다면 브리핑 자료가 필요하단다. 이러려고 오전에 아무 말 없었구나. 다시 자리에 앉았다. 10분 남기고 자료를 넘겼다. 입맛도 보고서에 담아 보냈다. 믹스커피 한 잔 들고 옥상으로 갔다. 점심 장사가 끝난 찌개골목은 한산했다. 골목을 채우던 찌개 냄새도 옅어졌다. 저녁에는 아내가 김치찌개를 끓여주면 좋겠다 싶었다.


'50년 전통 원조 할매 김치찌개' 발이 이끄는 대로 왔다. 아니, 낮에 옥상에서 맡았던 그 냄새를 따라온 거였다.  문 앞을 서성였다. 올 사람이 있는 것처럼 전화기도 만지작 거렸다. 주인장 할매와 눈도 몇 번 마주쳤다. 할매는 별 신경 안 쓰는 눈치다. 올 놈은 오게 되어있다고 늘 말하는 할매였다. 내가 오길 바라고 한 말은 아닐터다. 이대로 집에 가봐야 굶기밖에 더한다. 혼자 먹는 라면도 지겹다. 배달음식도 귀찮다. 식당에서 혼자 먹어본 적 없었다. 아니, 어쩌면 오늘 처음 혼자 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혼자? 가능할까? 


계속.


2023. 01. 1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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