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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Feb 22. 2023

사랑의 소비기한은?

2023. 02. 22.  07:15


남녀가 사랑으로 사는 기간은 얼마나 될까? 1년? 5년? 20년? 아니면 평생? 당연히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배우자를 만났느냐, 어떤 삶을 함께 살았느냐, 얼마나 서로에게 의지하고 공감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다른 환경에서 살아오다가 한가정을 이루고 산다는 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무조건 양보할 수도, 모든 걸 자신에게 맞추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서로 합의하는 선에서 균형을 맞추며 사는 게 그나마 덜 부딪치며 사는 것일 테다. 서로가 만족할 정도의 합의를 이루고 산다면 평생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저마다 사랑을 재정의 하는 과정도 필요해 보인다.


내가 정의하는 부부간의 사랑은 상대방이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다. 좋아하는 걸 해주는 건 어렵지 않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물론 사는 게 팍팍하면 그마저도 사치인 이들도 있다. 그래도 어쩌다 한 번 별 것 아닌 선물이나 이벤트가 서로에게 활력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상대방이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100번 잘하다가도 한 번 실수하면 그 한 번 때문에 모든 게 무너진다고 말한다. 특히 남녀사이는 그런 감정이 더하다. 아마도 상대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믿고 의지하는 존재이기에 한 번의 실수가 더 큰 실망으로 남는 게 아닐까 싶다. 


평일에는 내가 제일 먼저 씻는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면 씻고 출근 준비 한다. 머리 감고 샤워하면 거품이 나기 마련이다. 여기저기 흩어진 거품은 흐르는 물에 하수구로 모인다. 그대로 놔두면 시간이 지나 배수구위에 하얀 가루를 남긴다. 잘 씻기지도 않는다. 아내는 배수구 위 거품이 남는 게 싫다고 신혼 초에 말했다. 그때부터였다. 매일 씻고 나면 샤워기를 틀어 배수구 위 거품을 씻어냈다. 아직까지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다. 아내가 싫다고 해서다. 때로는 귀찮기도 하다. 시간에 쫓길 땐 씻을 시간도 부족한데 배수구 정리까지 하려면 마음이 급해진다. 그래도 몇 초면 충분히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다. 말끔히 정리하고 나면 오히려 나 스스로 뿌듯하다.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걸로 말이다.


거품을 씻어내는 건 해야 할 것 중 하나일 뿐이다. 더 많은 것들이 있다. 시간 약속을 지키고, 맡은 역할을 성실히 해내고, 부모님께 잘하고, 아이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상대가 미워지는 건 당연하다. 반대로 내가 해야 할 일을 잘하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걸 안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해야 할 일을 더 신경 써 잘하면 사랑의 유효기간이 늘리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듣기에는 지극히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쉬운데 왜 싸우고 이혼까지 하느냐고 되물을 수 있다. 남, 녀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역할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물론 세대가 변해 남녀로 선을 긋는 것도 옛말이다. 남자 여자가 아닌 역할로만 구분한다면, 살림을 하는 것과 돈을 버는 활동으로 나눌 수 있다. 각자의 역할에 따라 사고가 달라진다. 가정을 책임지면 그에 맞게 가치관이 변하고, 돈을 벌면 그에 따라 행동과 생각이 달라진다. 각자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자녀가 자라면 더 자주 부딪힌다. 돈이 많으면, 벌이가 시원찮아도 싸움은 늘 이어진다. 사소한 일에도 서로를 탓한다. 다시 화해하고 등 돌리기 무한 반복이다. 그러나 둘 의 노력은 결국엔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런 노력 이면에는 서로에 대한 사랑이 존재한다. 존재했었다가 맞을까? 어느 누구나 시작은 사랑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가치관이 변하면서 사랑의 정의도 달라졌다. 로맨틱에서 다큐멘터리로 장르가 변했다. 정의가 달라지고 장르가 변해도 사랑을 지키는 방법은 각자에게 맞게 재정의 해보는 거라 생각한다. 사는 모습이 달라지고 사람이 변함에 따라 서로에 대한 사랑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각자에게 바라는 것,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 등. 그때마다 재정의된 사랑에 합의한다면 유효기간이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랑을 흔히 유통기한에 비교하고는 했었다. 얼마 전부터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사용하게끔 제도가 달라졌다. 소비기한은 유통과정을 거쳐 소비자 손에 들어간 뒤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인정되는 기간으로 정의한다. 이 말은 제품에 문제만 없다면 언제 먹어도 괜찮다는 의미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상대방에게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함께 사는 내내 사랑의 감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서로 조금씩 배려하고 이해하고 관심 가져줄 수 있다면 말이다. 


2023. 02. 22.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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