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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pr 12. 2023

거인의 어깨가 필요하다면

강의 시작 4시간 전 문자가 왔다. '오늘은 혼자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당황스러웠지만 침착해지려고 했다. 아마 예전의 나였으면 당황하면서 상대를 탓하거나 핑계를 먼저 찾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늘 누군가의 등 뒤에 있는 게 익숙했기 때문이다. 굳이 나서고 싶지도, 나설 용기도 없었을 때다. 당장은 편했다. 책임을 질 일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딱 그만큼이었다. 내 앞을 가로막고선 누군가의 등을 넘어서려고 안 했다. 언제나 원하는 건 그 너머에 있는 걸 알면서. 


이미 상황은 정해졌다. 내가 진행해야 하는 건 변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준비하면 된다. 1주 차 강의를 했던 터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고 있었다. 일방향 강의가 아닌 1:1 피드백 형식이다. 저마다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피드백을 주면 된다. 주제를 정한 수강생도 있고, 어느 정도 분량을 적은 이도 있고, 아직 주제를 찾지 못한 분도 있었다. 각자의 상황에 맞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조언 전했다. 그보다 지금 단계에서 꼭 필요한 한 가지이자 가장 중요한 과정을 설명하기로 했다.


강의 시작 전 자신이 쓴 글을 보낸 분에게 개략적인 목차를 작성해 줬다. 글의 뼈대를 만들어 준 것이다. 말하고 싶은 내용은 누구나 갖고 있다. 다만 독자의 입장에서 쉽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모를 뿐이었다. 처음부터 뼈대를 잡고 시작할 수도 있었지만 저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모르니 그에 맞는 피드백을 줄 수 없었다. 적은 분량이라도 자신이 쓰고 싶은 주제가 정해져야 비로소 뼈대를 세울 수 있었다. 1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온 힘을 쥐어짜 세 분에게 개략적인 목차를 구성해 줬다.


아내 대신 저녁을 차려 아이들과 함께 먹고 나니  강의까지 10분 남았다. 셔츠 하나 걸쳐 있고 화면 앞에서 앉았다. 한 분씩 얼굴이 보였다. 서서히 손바닥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9시가 되고 화면 공유부터 했다. 앞서 보낸 목차를 보여주며 어떤 방식으로 글을 써야 할지 설명하기 위해서다. 소책자는 말 그대로 내용이 적은 책이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핵심만 담으면 된다. 분량이 적어도 괜찮다. 그러니 구성에 맞게 메시지만 명확하면 된다. 분량과 구성의 부담을 덜어준다면 분명 빠른 시간 안에 결과물을 낼 수 있을 것이다.


15분 남짓 설명했다. 화면에도 고스란히 보였을 것 같다. 반팔 티가 젖을 만큼 땀이 났다. 말하랴 땀 닦으랴. 준비한 내용 설명을 마쳐도 반응을 확인하지 못해 잘 전달됐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상황에서는 일단 수강생을 믿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리고 이어진 1:1 피드백과 마무리 멘트까지 1시간 남짓 진행됐다. 남은 2주 동안 목표를 이루는 이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이도 있다. 중요한 건 끝까지 해보는 경험을 갖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기회가 있을 때 해보지 않으면 다음 기회가 와도 시작도 못하는 이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처음 성과를 만들어내면 그다음은 분명 더 나은 성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시작 없이는 두 번째도 없을 테니 말이다.


남들 앞에서 강의하는 나. 수강생이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게 피드백 줄 수 있는 나. 분명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동기부여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나. 예전의 나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할 줄 아는 것도 없었고 말도 잘하지 못했고 계획과 목적 없이 살았다. 적어도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것도 가졌고, 계획과 목적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런 내가 될 수 있었던 건 내 앞을 가로막은 등을 넘어서기 위해 거인의 어깨를 빌렸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수강생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보란 듯이 보여주고 싶었다. 이를 물고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썼다.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오만이었다. 얼마 못 가 한계에 부딪쳤다. 어쩌면 스스로 만든 한계였을 수 있다. 다른 돌파구가 필요했다. 다시 글쓰기 강의를 기웃거렸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했다. 신중을 기했다. 몇 주 동안 탐색했다. 스스로에게도 물었다. 확신이 든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51퍼센트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수업을 듣기 시작한 게 2021년 1월부터였다. 


그 사이 나는 총 다섯 권의 책을 썼다. 집필 중인 책까지 포함하면 총 아홉 권의 원고를 갖게 되었다. 매주 수업을 듣는다. 28개월 동안 다섯 손가락보다 적게  수업에 빠졌다. 알 건 모르 건 계속 들었다. 매주 들으면서 매일 썼다. 피드백을 받으며 계속 고쳐나갔다. 어느 때부터 가르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글 쓰고 책 쓰는 게 삶에 얼마나 필요한 지 몸소 체험해 왔고, 분명 다른 이들에게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모았고 1년 넘게 관계를 유지하며 매일 함께 쓰고 있다. 28개월 동안 꾸준히 배웠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얼마 전 정규 강의를 할 수 있는 코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글과 책을 쓰고 싶은 이들에게 내가 배운 걸 그대로 전하는 유료 강의를 말한다.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비용을 받아 그 만한, 아니 그보다 더한 가치를 줘야 하는 강의이다.  해보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건 분명 다른 문제였다. 몇 주 동안 일기를 쓰며 나를 돌아봤다. 내 안에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하나씩 찾아봤다. 그 시간을 통해서 나온 답이라면 주저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시작했다.


6주째 코칭 과정을 듣고 있다. 배우는 입장과 가르치는 위치는 분명 달랐다. 또 하나의 등을 넘어서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았다. 코칭 과정의 본질은 명확했다. 더 많은 사람에게 글과 책 쓰기의 가치를 전하는 것이었다. 나도 그 가치를 배우고 실천해 지금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나처럼 변화를 바라는 이들에게 코치로써 쓰는 삶의 가치를 전하는 것이 소명이 되어야 했다. 


4주 동안 소책자를 쓰기 위해 생전 처음 글을 써보는 이도 있었다. 난생처음 글과 책 쓰기를 가르치려고 준비하는 나처럼 말이다. 그들도 모든 게 생소하고 어렵고 잘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고 있을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잘할 수 있을지, 실수하지 않을까, 역량을 갖췄는지 의심도 든다. 시작하는 누구나 당연히 갖게 되는 마음이다. 하지만 불안을 극복하지 못해 멈추는 이가 있다면, 일어나지 않은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당당하게 나아가는 사람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저마다의 몫이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고, 후회는 없다.


4월 28일 누군가에게 내 어깨를 내어주기 위해 홀로 서는 날이다. 그들이 얼마나 멀리 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기대에 미쳐 더 넓은 세상을 보는 이도 있을 것이고, 기대 못 미쳐 다른 이를 선택할 수 있다. 모두에게 모든 걸 만족시켜 줄 수는 없다. 내가 가진 역량만큼만 보여줄 수 있다. 억지로 까치발을 들어봐야 종아리에 쥐만 내릴 뿐이다. 그런 다리로 얼마나 못 갈 것이다. 내 수준을 인정하고 그들과 같이 나 또한 성장해 가면 된다. 적어도 지금은 그들보다 내 어깨가 조금은 높은 곳에 있을 테니 말이다.


거인의 어깨를 빌려 지금까지 왔고, 그 어깨를 넘어서는 게 내 목표다. 나 또한 나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나를 넘어서길 바란다. 그 길에 글쓰기와 책 쓰기는 훌륭한 도구가 되어 줄 것이다. 오롯이 스스로 읽고 쓰는 행위를 통해서만 우리는 변화할 수 있다. 외부의 그 어떤 자극에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스스로 깨치고 내 디딜 때 비로소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다. 그럼에도 꽤 괜찮은 자극을 받는다면 그 속도와 방향이 빠르고 크게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자이언트 북컨설팅 이은대 대표가 자극이 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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