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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y 16. 2023

꾸역꾸역 쓴 덕분에 얻게 된 세 가지


주말 오전 10시, 달릴 준비를 위해 스트레칭을 한다. 어느새 반팔을 입어도 될 만큼 날씨가 풀렸다. 해도 제법 열기를 뿜는다. 4.5킬로미터 완주를 목표로 첫 발을 뗀다. 며칠 전 끝난 꽃박람회에 사용한 꽃 덕분인지 바람 속에 향기가 전해진다. 바람, 공기, 햇볕, 나무와 꽃, 지나는 사람 이보다 좋을 순 없을 것 같은 아침이다. 이런 날씨에 이곳을 달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좋은 기분도 잠시, 몸에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절반 정도 달리면 이제부터 내면의 나와 치열한 대화가 이어진다. 온갖 핑계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한편으로 끝까지 뛸 수 있다고 다독이는 목소리도 힘을 내기 시작한다. 두 목소리가 치고받는 동안에도 발은 멈추지 않는다. 3/4 지점을 지날 때면 둘 중 한 놈과 승부를 봐야 한다. 이만큼 뛰었으니 충분해, 이제 그만 뛰자. 아니, 이만큼이나 뛰었으니 조금만 더 힘내면 완주할 수 있어. 발은 멈출 뜻이 없는 걸 보니 끝까지 뛸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이 출발했던 곳이 눈에 들어온다. 꾸역꾸역 뛴 덕분에 완주했다. 10번째 레이스, 3번째 완주로 기록됐다.


처음 호수 공원을 뛰기로 마음먹고 기록할 방법을 생각했었다. 스마트폰을 들고뛰자니 방해가 될 것 같았다. 가방을 메고 뛰려니 더 번거로울 것 같았다. 한편으로 나 같은 초보에게 기록은 아직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스마트폰을 두고 뛰기로 했다. 출발과 도착 시간만 확인하기로 했다. 평균 30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실제로 달린 거리, 주행 속도, 코스의 고저차, 심박수 등 다양한 숫자를 스마트 워치를 활용해 확인할 수 있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장비 빨 욕심에 구매를 심각하게 고려했었다. 생각을 고쳐먹고 일단 달리기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체력과 폐활량을 어느 정도 끌어올린 뒤 장비를 장만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겉모습보다 달리는 목적에 집중하기로 했다.


시간이 갈수록 장애물이 생긴다. 그럼에도 계속 달리고 싶다. 달리기를 통해 얻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이다.

첫째, 다리 근육을 키워 혈당 관리를 한다.

둘째, 폐활량을 키워 심장을 건강하게 만든다.

셋째, 군살이 없는 몸을 유지한다.

넷째, 규칙적인 생활을 지속한다.

이 밖에도 달리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을 거로 안다. 달리다 보면 분명 처음보다 나아지는 면이 많아질 것이다. 목적이 분명하고 바라는 게 명확하면 과정에 충실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바빠도 시간을 만들어 낼 것이고 달리다 힘들어도 끝까지 뛰려고 애쓸 것이다. 온갖 저항에 몸이 먼저 반응하며 일상에 습관으로 자리하면 바랄 게 없다.


6년째 글을 써온 것도 달리기와 비슷한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을 땐 왜 써야 하는지도 몰랐었다. 쓰면 좋다고 하는데 어디에 좋은지 몰랐다. 매일 쓰라고 하는데 매일 쓸 글감을 찾는 것도 일이었다. 과거의 경험을 솔직하게 풀어내야 자신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어디까지 얼마나 풀어내야 할지 의아했다. 이런 이야기가 누구에게 도움이 될지도 의심이 갔다. 핑계와 장애물, 의심과 비교로 매일을 보냈던 것 같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쓸 말이 없으면 말장난이라도 적었던 것 같다. 쓸 말이 많으면 남김없이 풀어냈던 것 같다. 모르는 건 계속 배웠다. 그렇게 서서히 근육이 생기고 폐활량이 늘고 체력이 좋아진 것 같다. 글쓰기도 멈추지 않고 꾸역꾸역 써 온 덕분에 얻게 된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나에 대해 알고 나의 가능성을 믿게 되었다.

둘째, 매일 쓰는 행위를 통해 규칙적인 일상을 살게 되었다.

셋째, 그동안 쌓인 글이 책이 되었다.

물론 세 가지보다 더 많은 걸 얻었고 앞으로 얻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 보다 더 많은 책을 쓸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하다. 왜냐하면 매일 써내는 글이 곧 책이 될 테니 말이다. 꾸준히 달릴수록 기록이 좋아지고, 기록이 좋아질수록 더 긴 코스를 달리고 싶어 한다. 달리는 사람이라면 마라톤 완주를 꿈꾼다고 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책을 내고 싶은 게 꿈이듯 말이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달리기든 글쓰기든 하나만 하면 목표에 닿을 수 있다. 바로 매일 달리고 매일 쓰는 것이다. 핑계가 있는 날도 쓰고, 몸이 피곤한 날도 달리고, 시간이 없어도 쓰고, 시간이 많아도 달리고, 글감이 없어도 쓰고, 달릴 공간이 없어도 달리고. 매일 조금씩 꾸역꾸역 하나씩 해내다 보면 분명 바라는 코스를 완주하고 원하는 책을 써낼 수 있을 것이다. 블로그, 브런치, 인스타그램 숫자가 신경은 쓰이지만 그래도 오늘 또 이렇게 한 편 썼다. 숫자 때문에 쓰는 글이 아니다. 쓰는 이유와 목적에만 집중한다. 오늘 썼으니 내일도 쓴다. 오늘 이 단어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다. 꾸역꾸역.





https://blog.naver.com/motifree33/223095989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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