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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y 18. 2023

인생은 타이밍

평일 오전 7시 반, 천왕역 1번 출구 앞 단골 카페 2층에 자리 잡습니다. 글 쓰는 중간중간 통창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지하철 출입구 앞에 선 버스에서 마술사 입에서 나오는 만국기처럼 사람이 쏟아져 나옵니다. 곧바로 앞사람 뒤통수 따라 빨려가듯 역 안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출퇴근 시간 유난히 사람이 몰리는 시간대가 있습니다. 대중교통도 도로 위 자동차도 그렇습니다. 혼잡한 시간대를 피하려면 일찍 나서거나 여유 부리며 늦게 출발하면 됩니다. 안타깝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 일찍 서두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20년째 출근길 시달리는 게 싫어 1시간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일어날 때 힘든 건 편하게 출근하는 걸로 보상받습니다.      


1시간이나 일찍 나서는 데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 직장을 다니며 얻는 결괏값입니다. 제 경험상 10분에서 30분 일찍 나서면 운이 많이 작용했습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겼을 때 30분 까먹는 건 일도 아니었습니다. 대중교통도 도로 위 정체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1시간 일찍 나섰을 때 그나마 상황에 대처해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몸도 마음도 편하게 1시간 일찍 나서길 선택했습니다.


출근길은 1시간 여유를 가지면 어떤 상황에도 대처 가능합니다. 물론 저마다 사정에 따라 여유시간은 다를 겁니다. 살다 보면 대처가 안 되는 상황도 많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사고, 작정하고 덤벼드는 사기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질병 등. 불시에 생기는 여러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보험을 들어놓습니다. 모든 사건 사고에 대비하지는 못해도 큰돈 드는 일에는 요긴하게 활용하기도 합니다. 보험이 경제적인 부분은 해결해 줄 수 있겠지만, 무너지는 멘털은 어떻게 붙잡아야 할까요?


세상에 나온 지 48년, 직장 생활 22년 차, 결혼 생활 15년 차. 이제 반환점에 선 것 같습니다. 그동안 돈 문제, 인간관계, 진로 걱정등 다양한 일로 기쁘고 슬프고 정신줄 놓고 다시 일어시기를 반복해 왔습니다. 몇 만 원 없어 휴대폰이 끊기도 했었고, 빚이 빚을 낳아 회생 절차를 밟기도 했었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주변사람에게 상처 주기도 했었습니다.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되었고, 딸 둘 낳아 키우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살면서 겪게 되는 희로애락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6년째 책 읽고 글 쓰다 보니 세상을 바라보고 대처하는 자세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변화라고 해서 세상이치에 통달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저 저 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전과 비교했을 때 조금 나아졌다고 느끼는 정도입니다. 책에서 배우고 글을 쓰며 삶에 적용하는 중입니다. 여전히 멘털이 무너지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3년 만에 맺은 첫 책 계약이 6개월 만에 파기되었고, 강의하려고 모객 했지만 수개월 허탕 쳤고,

몇 권째 투고했지만 여전히 계약과는 인연이 멀었습니다. 시도했던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해왔습니다. 수개월 초고 쓰는데 온 정신을 쏟았습니다. 강의를 위해 몇 날 며칠 고민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세상일은 내 뜻대로 되는 게 없었습니다. 


이제는 나에게 생기는 일에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되어 갑니다. 내려놓는다는 건 포기가 아닌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 될 일은 안 되더군요. 반대로 생각지 못했던 기회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기도 합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죠. 둘 중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좋은 일은 좋은 대로 기뻐하고, 뜻대로 안 되는 일은 다음을 기약하는 걸로 말이죠. 물론 잘 되지 않는 일에는 원망하고 짜증 나고 후회가 들기도 합니다. 그때  드는 감정은 그대로 인정해 주려고 노력합니다. 감정조차 외면하고 살아서는 안 될 테니까요. 건강을 위해서 감정은 그 자체로 인정해 주는 게 맞다고 배웠습니다. 대신 거리를 둠으로써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습니다. 더 좋은 일도 더 최악인 순간도 있을 겁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두 발 단단히 딛고 서면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 낭비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랬듯 앞으로도 꾸준히 읽고 쓰면서 나를 단련해 간다면요. 대중교통, 도로 위에서 시달리는 게 싫어 1시간 일찍 나서길 택했습니다. 습관이 되니 지금은 6시면 사무실에 도착해 자기 계발에 몰두합니다. 살면서 겪게 된 다양한 일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읽고 쓰기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중심을 잡다 보니 관계도 일도 성과도 서서히 좋아지고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1시간 일찍 출근하는 습관으로 새벽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읽고 쓰면서 감정의 중심을 잡아왔습니다. 이렇게 저 나름의 방식으로 삶이 던지는 문제에 대처해 왔습니다. 


어떤 일이든 미리 서둘러 나쁠 건 없는 것 같습니다. 1시간 일찍 나서면 느긋한 출근길을 만끽할 수 있고, 더 나이 들기 전에 읽고 쓰기로 마음의 중심을 잡으면 남은 인생 덜 휘둘리며 살 것 같습니다. 서두른 덕분에 남들보다 몇 발 앞서지 못해도 적어도 스스로 만족하는 삶은 살게 되었습니다. 오롯이 나로 존재하는 삶을 살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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