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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06. 2023

떡볶이 좋아하세요?

행당초등학교 후문 앞에 떡볶이 가게가 있었다. 점심으로 도시락을 싸 다니던 때였다. 수업이 끝나기 전까지는 학교 밖 출입이 불가했다. 한 날은 후문을 지키는 아저씨가 안 계셨던 것 같다. 점심을 먹고도 배가 고팠는지 친구 몇 명이서 후문 앞 떡볶이 가게를 찾았다. 주인아주머니는 눈치가 빨랐다. 수업이 끝나기 전에 나온 걸 알고는 가게에 딸린 방을 내주었다. 가진 돈을 몽땅 털어도 2~3천 원이 전부였다. 떡볶이에 튀김을 버무리고 순대 한 접시를 시켰다. 익숙한 맛이었다. 주인아주머니의 특별 대우를 받아서인지 그날따라 맛이 남달랐던 것 같다. 떡볶이 맛이 어떤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딴에 일탈이었고 한 방에 둘러앉아 특별한 대접을 받았던 탓에 35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 그 느낌이 생생하다. 


아내는 떡볶이를 좋아한다. 두 딸도 좋아한다. 아내는 극강의 매운맛도 아무렇지 않게 먹는 맵신이다. 두 딸은 순한 맛을 겨우 먹는 정도다. 나도 맵찔이라 아내보다 두 딸과 입맛이 맞다. 그런 탓에 아내도 순한 맛에 만족해한다. 얼마 전 큰딸이 기말고사 준비를 위해 문제집이 필요하다고 서점에 가자고 했다. 둘 만 보내기 뭐 해 운전기사를 했다. 책 고르는 중 아내가 길 건너 떡볶이 집에 가자고 했다. 일산에 살면서 이제까지 먹어본 맛 중 최고라고 인정한 집이었다. 큰딸도 먹어본 기억이 있던 터라 따라나섰다. 즉석 떡볶이는 가게에서 먹어야 제맛이다. 초등학교 때 신당동 떡볶이 골목에서 봤던 비주얼이다. 냄비 가득 담긴 구성도 비슷했고 맛도 다르지 않았다. 가늘고 긴 떡, 삼각형 어묵, 양배추, 양파, 당근, 납작 만두, 당면과 라면 사리, 깐 달걀까지. 그 집만의 비법 소스인지 거부감 없는 맛이었다. 냄비 바닥이 드러날 만큼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나는 나름 떡볶이 맛을(지극히 주관적으로) 감별할 수 있다. 어머니는 10년 넘게 분식집을 했었다. 주 메뉴는 떡볶이와 튀김, 만두였다. 만두는 떡볶이 다음 주력 메뉴였다. 아버지가 직접 소를 만들고 반죽한 피로 하나씩 싸고 쪄냈다. 두 분은 손맛이 좋아 금방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그런 맛집의 분식을 원 없이 먹고 자랐다. 그러니 맛을 감별하는 능력도 갖게 되었다. 어머니만의 비법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만드는 과정에는 관심 없었을 때다. 최상의 맛을 낼 때 눈치 보지 않고 먹는 게 내가 하는 일이었다. 그 안에 무엇이 얼마나 들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고픈 배를 채우면  그걸로 만족했다. 어머니는 분식집을 그만두고도 가끔 떡볶이를 해줬다. 매번 어릴 때 먹었던 그 맛이 났다. 짐작 건데 어릴 때와 비슷한 맛이 났던 건 만드는 양에 달린 것 같다. 한 번을 먹어도 다섯 식구가 다 먹고도 남을 만큼 만들었으니 말이다. 들어가는 모든 재료가 넉넉했다. 어릴 때나 커서 먹는 어머니의 떡볶이는 언제나 푸짐했다. 먹는장사는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어머니만의 철학이 있다. 그러니 자식이든 남이든 부족하지 않게 퍼준 탓에 늘 같은 맛이 났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도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아서 인지 음식을 곧잘 한다. 물론 할 줄 아는 것만. 떡볶이는 언제 해줘도 두 딸이 반기는 메뉴다. 많은 재료를 넣지 않아도 붉은 빛깔이 나는 양념으로 버무린 떡과 면이면 만족해하는 것 같다.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숨겨놓은 재료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와 양념이 들어가는 게 전부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만들 때 들어가는 정성이다. 10여분 남짓이지만 온 정신을 집중한다. 요리가 끝날 때까지 가스레인지 앞을 지킨다. 재료가 더해질 때마다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한다. 내 입맛에 부족하면 양념을 더 한다. 맵지 않게 떡볶이 본연의 맛을 내려고 애쓴다. 두 딸도 이제까지 여러 가게에서 배달해 먹어봤다. 아직까지는 내가 만들어주는 맛이 더 낫단다. 나도 어머니에게서 배운 때문인지 만들 때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 늘 둘이 먹어도 넉넉하게 만든다. 남기는 게 아까워 꾸역꾸역 먹는 건 내 몫이다. 그래도 두 딸이 날려주는 만족의 쌍엄지 덕분에 요리할 맛이 난다.


뭐니 뭐니 해도 다 먹고 났을 때 땀에 흠뻑 젖을 만큼 매운맛이 떡볶이를 먹는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혓바닥이 얼얼하고 900밀리리터 쿨피스 한 팩을 다 비울만큼 매워야 제대로 된 떡볶이다. 매워서 짜증과 욕이 나올지언정 그렇게 먹고 나야 기분도 상쾌해진다. 뒷목이 축축해지고 잔뜩 힘 준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생쥐꼴이 되었을 때 진정 떡볶이를 즐겼다고 할 수 있다. 냄비에 담긴 재료는 물론 남은 국물에 밥을 볶고 후식으로 소프트 아이스크림까지 먹어주는 게 떡볶이에 대한 예의라고 배웠다. 건강 관리를 위해 음식을 조절하면서 이런 재미를 잊고 산지 좀 됐다. 아는 맛을 포기한 대가로 뱃살과 옆구리살, 몸무게를 줄였다. 스님이 고기를 끊듯 절제하는 건 아니다. 가끔 가족의 뜻에 따라 배달시켜 먹기도 한다. 순한 맛으로 먹다 보니 제대로 즐기지는 못한다. 떡볶이만큼은 호불호 없이 즐기는 메뉴가 되었다. 만들어 먹기도 하고 배달해 먹기도 한다. 어느 때이건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 둘러앉아 함께 먹는 걸 식구라고 한다. 한 공간에서 같은 음식을 먹으며 추억을 쌓아간다. 내가 이제까지 먹어왔던 떡볶이에 추억이 담겼듯, 두 딸도 자라는 동안 떡볶이에 다양한 추억을 담을 수 있길 바라본다. 이렇게까지 적었으니 저녁으로 떡볶이를 안 먹으면 안 될 것 같다. 두 딸은 마라탕 시켜주고 아내와 나는 매운맛에 도전해 봐야겠다. 땀에 젖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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