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푼 기대를 안고 사업을 시작했다. 시작은 언제나 설레는 법이다. 시작의 설렘은 장밋빛 희망만 보인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희망은 희망일 뿐이었다. 희망이 사라지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절망은 아니지만 좌절을 맛봤다. 세상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늘 그래왔다. 이제까지 해온 일 중 내 뜻대로 한 번에 됐던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시련을 달고 살았다. 시련에 무뎌질만할 텐데 그렇지만도 않았다. 시련이 크든 작든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시련 없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 아니, 시련은 있어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자기 계발을 시작했다. 시련을 극복해 낸 사람들을 책으로 만났다. 그들은 어떤 자세로 삶을 사는지 들여다봤다. 그들을 통해 나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 찾았다. 찾았다고 생기는 건 아니었다. 단련의 시간이 필요했다. 단련을 통해 스스로 단단해지는 시간이다. 그들도 똑같은 시간을 겪으며 단단해졌다. 그들이 해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믿고 6년을 버텼다. 6년을 허투루 보낸 건 아니었다. 감정을 건드는 일에는 제법 단단해졌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태도는 고쳤다. 욱하는 성질도 많이 죽였다. 덕분에 괜한 오해나 후회할 짓은 하지 않는다.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 없다. 살다 보면 오만가지 일을 겪게 된다. 그럴 때마다 교과서처럼 완벽하게 대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니까. 기계처럼 감정이 없다면 어떤 일에도 의연해질 수 있다. 그저 스치는 바람 정도로만 여기고 말 것이다. 어쩌면 그런 태도가 필요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 자신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스스로를 안다는 건 그런 것 같다. 온갖 시련에도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함으로써 적절히 대처하는 것이다. 될 일에는 과감히 뛰어들고, 그렇지 않으면 빨리 포기하는 태도이다. 안타깝게도 냉정하지 못한 건 희망을 품고 살기 때문이다.
희망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가 있다. 희망을 믿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게 하나고, 희망을 믿는 대신 자신을 믿고 밀어붙이는 것이다.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태도도 필요하다. 반대로 희망보다는 자신을 믿는 게 더 필요할 수도 있다. 바꿔 생각해 보면 자신을 믿으면 희망도 잃지 않을 수 있다. 희망만 믿다가 일이 틀어지면 절망에 빠질 수 있지만, 자신을 믿음으로써 생기는 희망은 실패하더라도 끝난 게 아니다. 후자의 경우는 애초에 스스에게서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에 보다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허상 같은 희망을 쫓는 게 아닌 나를 믿고 나로 인해 만들어지는 희망을 갖고 싶다.
여전히 시련은 진행 중이다. 희망을 놓지 않았다. 이제까지 버텨온 나도 대견하다. 나를 믿으며 여기까지 견뎌왔다. 세상일 내 뜻대로 되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는 나를 믿었다. 포기하려고 마음먹었으면 이미 나자빠졌을 것이다. 이전의 나는 그러고도 남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제까지 버텨온 걸 보면 서서히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제법 버틸 줄도 안다. 가끔 징징거려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아직 제대로 해보지 않았기에 포기를 꺼내는 건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나잇살 먹었으면 적어도 자신에게 창피한 꼴은 보이고 싶지 않다. 남들은 몰라도 나는 알 테니 말이다.
마음이 심란하니 글도 안 써지는 요즘이다. 빈 화면을 보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썼다. 남들이 보든 말든. 적어도 나는 알고 알아줄 테니 말이다. 나를 믿는다는 건 그런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정한 규칙을 지키는 것이다. 당장은 도움이 안 되고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아도 포기하지 않는 거다. 남들에게 인정받기 이전에 내가 나를 먼저 인정해 주는 것이다. 내가 먼저고 나를 믿어야 남에게도 더 당당해질 수 있는 법이다. 이제까지 견뎌온 나를 칭찬한다. 지금 부는 이깟 바람은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나를 더 아끼고 나에게 더 집중하자. 지금까지 잘했고, 지금도 잘하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