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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Feb 05. 2024

계속 쓰게 되는 힘, 처음의 설렘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

두 딸에게 제주도 여행은 세 번째다. 2017년 처음 갔었다. 큰딸은 대충 기억하지만 작은딸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작년 3월, 두 번째 제주도를 찾았다. 한 달 전부터 준비를 했었다. 각자 가보고 싶은 곳을 미리 찾아 동선을 짰었다. 4박 5일 동안 매일 두세 군데를 도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둘째는 중간에 멀미를 했지만 준비된 일정을 다 소화해 냈다. 그리고 지난달 세 번째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어쩐지 시큰둥한 눈치다. 미리 가보고 싶은 곳을 알아보지도 않았다. 제주에 사는 작은형을 만난 뒤에야 대충 일정이 정해졌다.


두 딸은 일본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제주도에 없는 다른 걸 볼 수 있는 곳이다. 비용은 더 들겠지만 아이들은 만족해할 수 있다. 그래도 굳이 제주도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작년에는 섬의 남쪽으로만 다녔다. 이번에는 성산, 우도 등 동쪽으로 다녀올 계획이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고 볼 만한 곳이 더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세 번째 방문이기는 했지만 이전과 다른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게 목적이었다. 다행히 여행을 마쳤을 때 두 딸의 만족도는 높았다. 다음번에는 섬의 서쪽을 공략하기로 했다.


두 딸에게는 처음이나 다름없었던 두 번째 제주 여행을 더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의 기준도 작년에 다녀온 두 번째 여행이었다. 처음만 한 두 번째는 없다고 한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처음 경험이 무엇보다 강렬하게 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경험은 처음보다는 시큰둥할 수밖에 없다. 아마 이다음에 제주도를 간다면 감흥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 어쩌면 따라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 제주도보다 더 흥미로운 곳을 발견하게 된다면 말이다.


재화나 서비스를 한 번 더 이용하면 각자가 느끼는 만족감은 점점 줄어드는 걸 가리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배고플 때 처음 먹는 라면 한 그릇과 뒤이어 먹는 두 번째 세 번째 라면의 맛과 만족감은 점점 줄어든다는 의미이다. 두 딸이 이번 여행을 시큰둥해 한 이유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다음에 제주의 다른 곳을 본다고 해도 처음 같았던 두 번째 여행에서 느꼈던 흥분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만약 일본이나 다른 나라로 간다면 흥미가 생길지도 모른다. 처음이 주는 설렘과 만족감으로 인해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반대로 작용하는 게 있다. 글쓰기이다. 글은 쓰면 쓸수록 만족감이 줄어들기보다 오히려 삶이 충만해지는 엄청난 효과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꾸준히 썼을 때 이야기이다. 글을 쓰면 여러 면이 좋아진다는 걸 알기에 많은 사람이 시도한다. 하지만 쓰면 쓸수록 어려워지는 게 글쓰기이다. 얼마 못 가 여러 이유로 포기하는 이들도 많아진다.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를 보기도 전에 말이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 안타깝다. 억지로라도 쓰라고 등 떠밀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것도 글쓰기이다.


어쩌면 글쓰기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일 수 있다. 쓰면 쓸수록 잘 쓰고 싶은 마음, 쓸수록 줄어드는 글감, 써도 극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는 현실 등 여러 이유로 인해 관심이 점차 줄어드는 게 아닐까 싶다. 시간이 갈수록 처음 쓸 때의 만족감보다는 분명 덜 하다. 배가 부를 땐 임금님 수라상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처럼, 결국에는 포기할 이유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이때 효용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가치가 높은 순으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래도 공통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성장과 변화가 아닐까 싶다. 그걸 얻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사람이다 보니 지치기 마련이다. 그래도 더 나은 자신을 바란다면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글쓰기는 이를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누군가는 공부를 통해, 누군가는 봉사로, 또 누군가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변화와 성장을 이루어 간다. 글 쓰는 행위에도 가치를 높이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새로운 목표를 정한다. 목표가 없을 때보다 목표를 갖고 글을 쓰면 동기 부여가 된다. 가령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위해 글을 쓰겠다고 정한다. 내가 경험한 것들을 글로 나누며 조금이나마 그들을 돕는 것이다. 분명 내 글에 누군가는 도움받을 것이며 이보다 가치 있는 일은 드물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둘째, 여럿이 함께 쓴다. 나도 글쓰기가 서툴 때 모임에 들어갔었다. 같은 목적으로 모인 이들과 글을 쓰니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그저 댓글 한 줄에도 계속 쓸 용기를 얻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쓴 댓글도 그들에게 힘을 주었다. 함께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만큼 든든한 게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셋째, 강의를 듣는다. 글쓰기도 배워야 할 게 많다. 어떤 글을 쓰느냐에 따라 알아야 할 게 있다. 모르는 걸 배우는 것만큼 계속할 동기가 되는 것도 드물다. 새로운 걸 알아가는 즐거움은 마치 깜깜한 밤 내 발밑으로 불빛이 하나씩 켜지는 것과 같다.


같은 걸 반복하면 효용은 분명 떨어진다. 하지만 효용은 떨어질지 몰라도 무언가 이루기 위해서 반복은 피할 수 없다. 무엇을 바라든 반복했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게 진리이다. 사람이다 보니 지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럴 때 저마다 극복할 방법이 필요하다. 방법은 앞서 말했다.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가치는 어떤 면에서 스스로 정한 신념이기도 하다. 신념처럼 지켜야 할 게 명확하다면 효용은 그다지 중요치 않을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얻게 될 가치는 분명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 반대로 작용할 거라 감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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