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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Feb 06. 2024

내가 쓰는 글이 나를 말해준다

점화 효과

급발진하고 말았다. 모처럼 일찍 퇴근했고 아내가 돌아오기까지 조용한 시간을 만끽하고 싶었다. 윗집 꼬마는 이런 내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거실을 운동장 삼아 공놀이에 심취해 있는 모습이 소리로 보였다.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기다릴수록 소리만 더 커졌다. 참지 못하고 폼롤러로 천정 이곳저곳 두드렸다. 고함도 질렀다. 안방에 있던 둘째가 놀란 표정으로 나왔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그랬다고 둘째를 안심시켰다. 우리 집 사정을 알리 없는 윗집 꼬마는 계속 공놀이를 이어갔다. 화를 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몇 달째 비슷한 시간에 정도를 달리해 층간 소음이 났었다. 아내도 참을 만큼 참다가 한 번씩 천정을 두드리기도 했다. 쫓아가 보려고 했지만 서로 감정만 상할까 싶어 자제했었다. 아무리 두드려도 달라지지 않았다. 알아서 조용해지기만 기다릴 뿐이었다. 한편으로 언제까지 참아야 할지 답답했다. 예의를 갖춰 우리 사정을 알리는 것도 생각했었다. 그러다 그날 참지 못하고 혼자 급발진하고 말았다. 며칠 뒤 사과 편지와 딸기 한 바구니를 받긴 했지만, 그 이후에도 소음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러다 또 어느 순간 또 폭발할지 모르겠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나처럼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폭발하는 사람 있다. 운전 중 깜빡이도 켜지 않고 갑자기 끼어드는 앞 차 때문에 화를 내고, 실수를 꼬투리 삼아 담아두었던 말을 쏟아내는 상사, 어디서 무슨 말을 듣고 왔는지 다짜고짜 짜증 내는 친구.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화를 내는 그 순간 바로 몇 분에서 몇 시간 전에 이미 어떤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게 불쏘시개가 되어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하게 된다고 뇌과학에서 말한다. 이를 점화 효과라고 한다.


점화 효과는 긍정적인 상황에서도 작용한다. 가령 드라마 배역 이미지가 좋은 배우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그가 광고하는 제품을 선호하게 된다.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계속 좋은 이미지를 접하게 되면서 자연히 호감도가 높아진다. 호감도가 높은 상태에서 그가 광고하는 제품까지 사게 되는 '점화 효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는 단 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며칠에서 몇 주까지 지속적으로 노출됐을 때 생기는 효과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인 '신경 가소성'이 등장한다. 이는 우리의 뇌는 외부 자극에 의해 얼마든 변화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다양한 외부 자극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원하는 자극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불가능하다. 원하든 원치 않든 여러 자극에 노출되더라도 태도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평소 스트레스를 관리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스트레스에도 두 종류가 있다. 급성과 만성 스트레스다. 급성은 순간적인 자극을 말한다. 이는 우리 몸에 도움을 준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거나 이른 아침 운동을 통해 얻는 자극 등을 말한다. 반대로 만성은 화내고 짜증 부리고 신경질적인 태도를 말한다. 내 몸에 해로운 것이다.


급성과 만성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뇌도 반응한다. 앞서 말한 신경 가소성에 의해 몸과 마음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좋은 말을 꾸준히 들으면 마음에 안정과 여유를 갖게 되고, 반대로 나쁜 말을 계속 들으면 말과 행동이 부정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이왕이면 예쁜 말을 쓰고 고전을 읽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라고 권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좋은 글을 쓰는 것 또한 우리 뇌를 변화시키는 훌륭한 도구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손을 움직여 긍정적인 표현을 쓴다면 뇌에도 분명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6년, 일기를 쓴 건 996일째이다. 책을 읽은 효과도 있지만, 그보다 글을 썼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 생각한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했었다. 바꿔볼 용기도 방법도 몰랐다. 늘 뒷걸음질 치며 남일 보듯 했었다. 화가 넘쳐 시시때때로 아이들에게 쓴 말을 내뱉었다. 할 줄 아는 것도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랬던 나도 글을 쓰면서 꿈을 찾았고, 화를 누그려뜨렸고, 나를 바꿀 용기를 냈다. 부정보다 긍정의 말을 글에 담았다. 6년 동안 쓰니 뇌에도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


내 주변은 물론 여러 책에서도 나 같은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6년 아니, 몇 개월 만에 인생이 달라진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글쓰기를 통해 새 삶을 선물 받았다고 했다. 비단 글쓰기뿐만 아니다. 감사한 마음, 칭찬, 독서, 공부 등 끈기 있게 매달린 끝에 이전과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다. 자신에게 맞는 그 무언가를 꾸준히 했고 그로 인해 뇌에도 변화가 생겼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신경 가소성을 입증해 왔다. 굳이 과학적 검증이 아니어도 우리 주변의 사례만으로도 믿어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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