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재 한담 4] 지와 무지, 앎과 모름의 경계
지와 무지 혹은 앎과 모름의 문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의 핵심 주제였다.
지와 무지의 경계를 최초로 사유한 서양의 철학자로 소크라테스를 든다. 그는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가를 탐구하였고, 그 결과 아는 것이 없다는 성찰에 이르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나는 단지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 뿐이다. 내가 진정으로 아는 것은 없다.” 이 말에서 ‘지와 무지의 경계’를 사유함으로써 궁극의 진리에 이르고자 하는 그의 진지한 태도를 알 수 있다.
논어를 읽어보면 공자도 지와 무지에 대해 많은 말을 하고 있다. 그 중에 한 대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야, 안다는 것이 어떤지를 가르쳐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함이 진정한 앎이니라.”(논어, 위정 17)
한자는 뜻글자이고, 그 글자로 기록한 논어에 나타난 공자의 말은 군더더기가 없다. 제자의 질문에 대해 공자는 에둘러 말하지 않고 핵심을 곧장 치고 든다.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앎과 모름’의 실례로 내가 자주 인용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선생의 질문에 학생들은 흔히 “잘 모르겠습니다.”라며 피하곤 한다. 그때 나는 되묻는다. “무엇을 모르는가? 자네가 무엇을 모르는지 내게 말해주게.” 나의 반문에 학생들은 소위 멘붕에 빠지고 만다. ‘모른다’고 하면 더 이상 질문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선생이 다시 ‘무엇을 모르는지 말하라’고 하니 머릿속이 하얀 백지상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공자의 말을 요약하면, 지와 무지 혹은 앎과 모름의 경계는 “내가 무엇을 알고, 또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다. 특히 후자의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어느 학생이 수학 방정식 문제를 풀었는데, 그만 답이 틀려 버렸다. 시험이 끝나고 생각해보니 어느 부분에서 실수하여 문제의 답을 틀려버렸는지를 알았다. 만일 그 학생이 그런 앎의 수준에 이르렀다면, 설령 점수는 깎일지라도 그 방정식 문제의 정답은 틀려도 모르는 게 아니다. 반대로 그 학생은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고 있으므로” 오히려 그 문제만큼은 정확히 이해하고 아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앎과 모름’을 ‘(정답의) 맞고 틀림’의 문제로 잘못 아는 경향이 있다. 이 또한 과도한 경쟁 위주로 치러지는 대학입시의 병폐다. 객관식 문제 한 두 문제를 더 맞고 틀리는 데 따라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가고 못가고의 결과로 이어지고 마니 ‘앎과 모름의 경계’를 사유할 여유가 없다.
숭산스님은 깨달음에 이르는 방편으로 제자들에게 “오직 모름” 혹은 “오직 모를 뿐”을 화두로 삼으라고 했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그리고는 깊이 사유하고 명상하자. 어떤 대답을 얻었는가?
오직 모를 뿐! (2019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