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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복 Jul 06. 2019

[소선재 한담 5(2)]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유마힐거사가 자신에게 문병 온 문수보살에게 한 말이다. “병은 어째서 생겼으며, 얼마나 오래 됐으며,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문수보살의 질문에 유마힐은 대답한다.


“내 병은 무명()으로부터 애착이 일어 생겼고, 모든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픕니다. 중생의 병이 없어지면 내 병도 없어질 것입니다.”


유마힐의 이 말은 보살도()가 지향해야 할 시작이자 끝이요, 처음이자 마지막 지점이다.


누구나 자신의 몸이 아프면 몸과 병에 집착한다. 큰 병을 앓은 적은 없지만 어릴 적부터 허약했던 나는 또래 친구들보다 강건하지 못한 몸에 집착하였다. 남들만큼 빠르게 달리고 싶었지만 달리기만 하면 늘 꼴찌였다. 조그만 돌부리에 걸려도 쉬 넘어져 다치곤 했으니 무릎이 성한 때가 없었다. 환절기만 되면 심한 감기 몸살로 독한 약을 먹고는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 앓아누웠다.


몸을 가진 존재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아프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성으로는 알고 이해해도 아프면 괴롭고 외롭다. 병으로 인한 고통(병고)은 오롯이 자신이 견디고 버텨야 한다. 아무도 자신을 대신하여 병을 앓고 그 고통을 덜어줄 수 없다.


오랜 정신적 방황으로 몸과 마음이 지치고 피폐해져 있던 어느 날 <유마경>을 읽는데,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유마힐의 말이 날카롭고 뾰족한 창과 화살이 되어 가슴에 깊이 꽂혔다. 몸에 깃든 병고를 대하는 고정관념의 틀이 한순간에 깨졌다.


마음공부를 한다면서도 나는 ‘내 몸의 아픔’에만 매달리고 집착했다. 그를 통해 세상과 중생이 겪고 있는 병과 고통을 보듬고 돌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유마힐이 말한 대로 내 병이 생긴 원인은 무명, 즉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불가에서 속세에 머물면서 출가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우바새(남성신도)·우바이(여성신도)라고 한다. 전자를 처사 혹은 거사라 하고, 후자를 보살이라 한다. 속세로 출가하여 우바새가 되기로 결심한 나는 유마힐을 모델로 삼고, 중생구제라는 보살도를 행하기로 서원을 세웠다.


학문의 기본은 이 세상에서 소외받고 고통 받고 있는 소수자와 약자들이 겪고 있는 아픔(고통)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 그리고 연민이다. 중생(세상)이 아픈데도 내가 아프지 않다면, 학문을 하는 자의 바른 도리가 아니다. 비단 학자뿐 아니라 세상의 부와 권력,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가진 모든 사람은 부자가 아니라 아프고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가난한 중생’의 편에 서야 한다. 중생이 아프면 나도 함께 아파야 한다. (20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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