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보드 제작 가이드, 개정판, 마무리.
브런치에 처음 제작기를 올리고 10개월정도 지났다. 당연하겠지만 그간 생각보다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목공방을 계약하여 자동대패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골절기와 벨트 샌더 등의 다양한 공구를 활용한 작업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작업 공간이 주는 안정감은 작업의 능률과 효율을 올려줄 뿐더러, 일종의 책임감까지 갖게 만들었다. 한달에 얼마씩 나가는 공방 사용 비용 때문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의무감이 되려 내 한쪽 발을 살짝 밟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보드를 잘 만들수 있을지를 조금 알게되어서, 추가할 만한 팁들을 마지막으로 공유해보려고 한다. 초기에 작성했던 제작기의 개정판(?)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각 프로세스 별로 개선과 고려가 필요한 사항들에 대해서만 적어보겟다.
아마추어 레벨에서 직접 보드를 만드는 과정은 초반과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먼저 어떤 보드를 만들 것인지를 염두해두고 리서치를 한후, 설계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베이스는 어떤 제품을 쓸 것인지, 엣지가 들어가는지, 코어는 어떤 나무를 사용하고 어떻게 가공할 것인지, 사이드월은 넣을 것인지 생략할 것인지 등을 고민해준다. 머릿속으로 수십번 정도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실제로 일을 진행하면 계속 돌발 상황들이 생기기 때문에 최대한 고려할 수 있는 요소는 고려하고, 간소화 할 수 있는 요소는 간소화하는 것이 용이하다. 손으로 자르기보다는 자를 대고 자르고, 자를 대기보다는 CNC를 활용하도록 해보자. 사람 손이 그렇게 부정확 할수가 없다. 기계문명 만세!
여러가지 보드를 만들어보면서, 직접 손으로 만드는 보드는 어떤 장점을 갖고 있는지- 무엇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고민해봤다. 내 손으로 만드는 보드는, 내가 디자인한 설계와 선택한 재료(카본 왕창, 케블라섬유도 넣고!)로 보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아마도 유일한 장점이 아닐까 싶다. 기업처럼 설비가 갖춰진 곳이 아니라 완성도와 안정성을 매우 떨어질 것이지만, 독특한 형태 (파우더용 제비꼬리, 서프보드쉐잎 등) 를 가진 보드를 만들어보는 것은 추천할만한 일이다. 특히 요새 일본과 유럽에서는 파우서프/유키타 라는 개념의 보드들이 유행하고 있다. 바인딩 없이 파우더에서 데크만 타는 형태의 보드들인데, 파우더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적용 가능할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라운드 데크나 해머 데크들에 비해서 모양이 특이하고, 이쁜 경우가 많아서,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보통 내가 데크를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고려하는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파우더에서 탈 보드인가, 하드한 데크인가, 추가재료(카본, 케블러, 등)를 넣을 것인가, 사이드컷의 R값이 큰가 작은가. 이 정도를 크게 고민해 놓고, 이 기준안에서 최대한 이쁜 보드를 만들어보려고 했다.
코어와 베이스 디자인을 하는 과정에서, 적층 작업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미리 가이드 구멍을 뚫어주는 것도 가능하겠다. 마지막 스플릿 보드를 이 방식으로 디자인했는데, 작업이 매우 효율적이고 간편하게 진행되었던 점이 인상적이다. 베이스의 노즈와 테일 부분에 3cm 정도 공간을 더 주고, 구멍을 내주었다. (아래 사진참조) 같은 위치의 베이스에도 공간과 구멍을 내주어서, 적층 과정에서 정확하게 일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실제 제작 과정에서는 여기서도 작은 개선점이 나타났는데, 적층 과정에서 베이스의 구멍 위치와 코어의 구멍위치는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겹쳐서 휘어지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여 우드 코어의 구멍 위치를 1mm정도 안쪽으로 조정하거나, 코어쪽의 구멍을 라운드직사각형으로 만드는 것이 좋아보인다. 또한, 우드 코어에 구멍을 뚫기보다, 사이드월이나 팁필 머티리얼에 이 작업을 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나무 두께를 잡는 일이 보드 만드는 일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일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자동대패는 그것을 굉장하게 용이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다만, 아마추어 레벨의 보드 제작을 해보려는 상황에서 자동대패를 바로 구입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제작기 1편에서 소개한 세가지 프로파일링 방법을 모두 사용해본 나로는, 자동대패를 갖고 있거나 아는 목공소가 있는게 아니라면, 초반에 사용했던 전기 대패 방식을 추천하고 싶다. 생각보다 편하고 정확하게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직접 내 손으로 코어를 깎아내는 기분이 좋은 부분도 있다.
사이드월은, 보드의 코어를 눈과 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직접 보드를 만들때, 하나의 프로세스 혹은 하나의 재료가 추가된다는 것은 상당히 큰 부담이 되는 일이다. 재료의 선정과 수급, 가공 등의 많은 장애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이드월을 넣지 않았던 5편의 재고정리보드는 관련된 가공과정이 매우 간단하게 끝났다. 하지만 사이드월이 이쁘게 들어간 보드는 제품으로서의 완성도가 확실히 높아보인다는 장점이 있어서 포기하기 어렵다. 해외 직구를 통해 구입한 사이드월은 베이스와 같은 소재로 만들어진 10mm * 6.5mm의 플라스틱 막대인데, 가공과 설계에 대한 자유도가 떨어지고, 이를 우드코어에 붙이기 위해서 드는 품또한 만만치 않다. 최근 진행했던 해결 방법으로는 사이드월을 보드에 붙일 수 있는 형태로 CNC로 주문하여 받았다.
직구를 하거나, 원재료를 구입해서 10mm로 자르는 방법등에 비해서 비용이 더 들지만, 훨씬 완성도와 작업 용이성이 좋아진다고 판단되었다. 1에서 언급된것처럼, CNC로 작업을 한다면 적층을 위한 가이드 구멍을 여기에 추가하면 완성도가 더 높아질 것 같다.
초기에는 철판을 이용한 몰드를 제안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결함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잇었다. 여러장을 찍어보고 겨우 발견한 부분이라, 기술해 놓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그림 1과 2를 비교해보면, 철판이 살짝 들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것은 진공으로 가해지는 힘의 방향이 일정하지 않아서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결국 프로파일을 포함한 모든 부분이 진공백 안으로 들어가야한다. 그래서 철판몰드보다는, 기존에 유튜브 등에서 사용되던 나무로된 몰드를 이용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좋은 옵션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 몰드의 경우 하판은 18mm 코팅 합판을 사용하였고, 상판은 3mm짜리 우드 합판을 가로 방향으로 길게 잘라서 (이부분은 목공소에 미리 이야기를 해야한다. 보통은 세로방향으로 잘라주기 때문에) 볼트로 눌러서 고정 시켰다.
또한 진공백을 만들어서 몰드를 안에 넣어버리는 작업에는 또다른 이점이 있는데, 미리 진공백을 만드는 과정에서 섬세하게 테이핑을 다 해놓으면, 나중에 진공을 잡기가 매우 쉽다. 나의 경우에는 2M * 2M 진공백 비닐을 구입하여 2M * 1.1M로 재단하여 반으로 접어서 접히는 부분에 테이프를 붙여서 진공백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쪽 입구를 열어놓고, 몰드와 보드 재료를 집어넣고 밀봉하였다.
*작은 팁: 진공백에 저 나무 몰드와 보드를 넣고 진공을 걸어주면, 아무래도 작은 나무 까스레기나 날카로운 모서리에 의해 진공백이 뚫리는 경우가 있다. 모든 모서리를 미리 샌딩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믿음, 사랑, 소망 이 셋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공간이라는 말도 있듯이(없다), 공간이 가장 중요하다. 공간을 대여하고 이름을 올려놓고 계좌이체를 하는 행위는 나에게는 의무감을 증폭시켜서 작업의 원동력으로 만들어주었다. 게다가 내가 언제든 가서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작업 과정에 있어서 안식으로 다가왔다. 사실 처음 세 달 정도는 그냥 직장이 두 개 생긴 기분이었고 매일 저녁 공방에서 뭐라도 깎거나 만들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불안을 느꼈다. 몇 달이 지나고난 지금은, 조금 여유를 갖고 작업할 수 있게 되었다. 중간 중간 사용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쉬어가면서 작업을 했는데 그것도 많이 도움이 되었다. 보드를 타러 스키장에 가듯,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명확하게 정해놓거나 만들어 놓는 것은 공구와 장비의 유무와도 상관없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집을 구할때도, 내 몸하나 뉘일만한 원룸보다는 투룸이 있어서 작업실(컴퓨터작업이나 미싱작업 등 작은 작업) - 침실로 구성해놓고 살아보니 훨씬 퇴근길이 신이 났었다. 이렇게 역할이 부여된 공간이 주는 체계성은 의외로 일에 대한 능률과 애정을 오르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미세한 팁들이 존재했던 기분이 든다. 진공백을 걸어주기 전에 코어를 고정하기 위한 블럭의 높이가 너무 높으면 면이 고르게 안잡힌다던가, 폴리카보네이트는 에폭시로 접착이 되지는 않지만 매끄러운 탑시트 면을 얻는데는 좋은 몰드 소재가 된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런 사소하고도 중요한 팁들을 좀더 적어볼 수도 있었을 것같은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오늘 공방에 다시 느낀 기분이다. 유니온 스플릿 바인딩에 사용되는 크램폰(스플릿보드용 스파이크 같은 부품으로 바인딩에 부착된다)이 버전이 두개가 존재하는 줄 모르고 호환이 되지 않는 크램폰을 구입했다가 호환을 위해 부품을 드레멜로 깎아내면서, 그런 기분을 느꼈다. 이걸 왜 내가 지금 하고 있지... 굳이... 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결국 나는 계속 나타나는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 이걸 하고 있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노우보드를 만드는 이 행위는 아마도 경제적인 이유는 아닐 것이다. 만드는게 더 싼것도 아니고, 만드는게 성능이 더 좋은 것도 아닐 것이고... (심지어 나는 올해 스키장에서 탈 데크는 새로 샀다. 버튼 좋아) 결국 생각이 든것은, 수학 엄청 잘하는 친구가 수학문제를 풀면서 즐거워할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게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수학천재가 아니다)
이것이 다학제적인 프로세스라고 설명을 했는데, 보드를 만드는 작업은 메이킹에 있어서 굉장히 복합적인 공정이 얽혀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아마추어 레벨로, 수작업으로 만들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도면 그리기, 설계, 유리섬유, 에폭시, 카본, CNC, ABS, 나무, 진공 성형 등의 정말 복합적인 소재와 가공방식들은, 혼자서... 거의 조모임 하는 기분이 들었다. ABS를 잘 활용하기 위해 공정을 수정하면 우드 코어쪽에서 문제가 생기고, 이 문제들을 다 해결하고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진공 성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험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냥 그게 조금... 재밌었고, 문제를 해결했을때 "아 난 진짜 개천재" 라고 혼잣말 한번 내뱉는 걸 하기 위해서 이걸 하고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몇 개월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났을때 내가 다시 살펴보고, "아 난 진짜 개천재였군!" 이라고 상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서 아닐까. 그래서 이 글을 읽고 보드를 제작하기로 마음 먹으신 여러분들을 위해서, 나머지의 팁들은 조금 숨겨놓도록 해볼까한다. 분명 실패할 것이고, 스트레스를 받을것이다. 고통스럽겠지, 하지만 결국 이겨낼 것이고, 이쁘게 만들어서 인스타에 업로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여러분만의 개천재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유리섬유 가루 조심하시고, 에폭시 조심하시고, 폭설오면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