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신경이 쓰이는 것이 평가다.
평가 결과에 따라서 연봉이나 인센티브와 같은 금전적인 부분들이 달라지기도 하고, 승진이나 역량레벨이 결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다 무시하고도 회사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평가를 내리는 주체는 '자신'이 아니다. 매니저가, 그리고 그 매니저의 매니저가 한다.
따라서 일단 제출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평가결과를 노심초사 기다리는 것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들을 하는게 좋다. 매니저나 동료에게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말이다.
1. 평가란 무엇인가?
평가는 '구슬을 나누어주는 것'이다.
구슬은 매년 개수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직장인으로서 취할 수 있는 전략은 아래 두 가지이다.
- 업무를 통해 배분할 수 있는 구슬의 양을 늘린다
- 그 구슬이 어떻게 나누어지는지를 살핀다
전자 없이 후자에만 관심을 두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나눌 것이 없는데 그 안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서로 구슬을 더 많이 갖겠다고 다투는 것은 슬프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비생산적이다. 먼저 배분할 수 있는 구슬의 양을 늘리는 것이,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현실에선 많은 회사에서 반대의 상황이 발생한다.
나눌 수 있는 구슬이 적을 수록 더 살벌하게 싸우고, 구슬이 많은 회사에서는 자신이 받은 구슬이 예년보다 많으면 만족해한다. 이건 꽤 이상하다.
이게 가능하다는 것은 회사의 성과에 관계없이 자신이 평년 대비 얼마의 구슬을 받는가만 관심이 있다는 건데, 나눌 수 있는 구슬의 양과 그 구슬을 분배하는데 들이는 고민은 비례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구슬을 어떻게 나눌까 하는 부분을 미리 고민하는 것은 어떨까?
그럴 바에는 그냥 구슬을 늘리는데 신경을 쓰는 것이 더 낫다. 오히려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구슬을 나누는 로직'이 아니라, '그 로직을 세울 사람(a.k.a. 경영진)을 믿을 수 있는가?'하는 질문일 것이다.
2. 내게 가장 영향을 주는 요소는 무엇인가?
평가로 인해 주어지는 것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 금전: 연봉인상, 인센티브
- 기회: 프로모션(승진, 역량레벨 Up)
- 인정: 따뜻한 말 한마디(평가를 잘 주진 못하지만, 너는 정말 회사에 필요한 존재다. 음???)
금전과 기회는 같은 방향으로 갈 수도 있고, 다르게 주어질 수도 있다. 그냥 생각했을 때는 평가를 잘 받으면 연봉도 오르고, 승진도 하고 그럴 것 같지만, 한 명에게 몰아주기는 어려우니 적당히 분배하는 경우도 많다.
셋 다 받으면 좋겠지만, 나에겐 (지금 시점에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현찰을 좀더 중시하는 사람은 금전 위주로, 조직을 갖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은 기회에 더 관심을 둔다.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 그런 것이라 보기에는 각자의 성향에 따른 차이가 크고,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가와 더 관련이 깊다.
3. 평가의 대략적인 결과를 미리 알고 있는가?
평가 결과를 미리 알고 있다고?
이렇게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평가는 1년에 한 번 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굳이 회사 차원에서 반기나 분기 단위의 평가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회사가, 매니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평소에 확인해야 한다.
평가에 따른 보상은 회사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해도, 대략적인 평가의 내용을 모른다는 것은 이미 평소에 교감이 없었거나, 피드백을 들었음에도 흘려보냈다는 의미이다. 이러면 평가를 잘못 받아도 사실 할 말이 없다. 평가결과는 크리스마스 아침에 열어보는 깜짝 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만약 잘 모르겠으면 평소에 물어보겠다는 다짐을 하자. 올해부터는 꼭.
4. 내가 나에게 매기는 점수는 얼마인가?
회사에 제출하는 자기평가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내가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을 의미한다.
-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성과를 내었나.
- 나는 성장했는가.
- 내가 나의 매니저라면 나는 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평가와 '자기평가'는 다르다.
평가는 다른 사람이 내게 주는 것이다. 그것을 높이기 위해 전략을 짤 수도 노력을 할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나의 통제 밖에 있는 것이다. 아무리 공정한 평가체계를 갖추려고 회사가 노력해도 평가엔 기본적으로 주관적인 부분이 많다. '목표대비 달성율' 같은 것도 가만히 살펴보면 애초에 그 목표를 정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주관이 많이 들어간다. 게다가 숫자로 정리할 수 없는 것들도 많다.
그러나 자기평가는 다르다. 자기평가는 내가 스스로 나에게 매기는 점수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고, 그 점수를 가지고 누군가를 설득할 필요도 없다. 온전히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변화가 필요한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매기는 점수에만 의존하게 되면 안정적이고 일관된 기준을 갖기 어렵다. 이 보다는 자기평가를 먼저 하고, 매니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참조'하는 것이 더 좋다.
5. 간격이 발생하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좋은 평가나 보상을 받았을 때, '이것은 납득되지 않습니다!'라고 항의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일단 생략하고 아래에 집중하자.
- 자기평가
- 평가, 그로 인한 보상
만약 이 둘의 차이가 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 평가나 보상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솔직하게 리뷰하는 것이 좋다. 평가와 보상은 이직을 비롯한 어떤 행동의 '계기'로서 작동할 수도 있고, 그 행동을 보다 수월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자기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외부요인인 평가와 보상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정말로 자신이 있다면, 언제라도 이직을 통해 외부요인에서 발생하는 차이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평가와 보상은 더 이상 그 사람에게 있어 어떤 행동의 계기로서 작동하지는 않는다. 생각보다 낮은 평가와 보상을 받았다면? 그 때문에 이직을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그 사람이 추후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에 따라 어떤 결정을 하는데 회사가 먼저 방해물을 제거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6.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역량을 증대하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참고 꾹 기다리는 것도, 누군가의 평가를 기다리는 것도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변하지 않는 것, 자신이 분명히 알고 해결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다.
이런 의미에서 평가결과를 기다리며 이에 따라 어떤 행동을 하겠다고 마음먹는 것 보다는 자기평가를 바탕으로 개선점을 찾는데 시간을 보내는 것이 효율적이다.
-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를 적어본다
- 가치를 부여한다
- 절반정도의 비효율적인 업무는 제거할 방법을 찾는다
제거한다고요?
맞다. 비효율적인 업무는 제거할 수 있다. 회사는 괴로운 만큼 돈을 주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치가 적거나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업무는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다.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진짜로 들여다보면 걷어내거나 개선할 부분들을 찾을 수 있다.
절반이요?
맞다. 절반이다. 10-20%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다. 매년 절반 정도의 업무를 걷어내고 효율화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매년 계속 실행하게 되면 업무효율은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비단 어떤 업무를 처리하는 능력, 비효율적인 업무를 걷어내는 능력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업무를 맡을 때 비효율적인 부분을 처음부터 알아보고 제거하는 능력도 같이 커진다.
업무를 개선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 가장 큰 걸림돌이다.
만약 비효율적인 업무를 개선하는 것을 싫어하는 정말로 회사가 있다면, 빨리 그 회사를 나와야 한다. 투덜대면서 만족하는 대신에 말이다.
7.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업무를 개선할 때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할 수는 없다.
정말로 해결하고 싶다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많은 것들을 검토하되 방향을 정하고 그 중의 1-2개에 대해 분명하게 우선순위를 설정해야 한다.
지금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한 가지는 무엇인가.
한 해를 돌아보는 것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고에 그쳐서는 안된다. 돌아보는 이유는 나아가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그것은 다른 사람이 정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