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석 Dec 16. 2017

저녁이 있는 삶?

#직딩에세이 #13

직장인은 '딱 받는 만큼만' 일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저녁이 있는 삶'을 갖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우리나라의 직장인은 왜 이러한 기본적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안타까워한다. 퇴근 시간 후에 메세지를 보내지 못하도록 하자는 법안을 검토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


돈을 벌기 위해서. 물론 그것도 하나의 답이 될 순 있겠다. 실제로 직장을 선택할 때 연봉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정말로 '돈을 벌기 위해서'란 이유가 우리가 일을 하는 근간이 될 수 있을까? 가령, 가장 적은 시간을 근무하고 가장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회사, 혹은 같은 월급을 받더라도 가장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회사가 가장 좋은 회사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이러한 차이는 직장에 대해 갖는 개인의 인식에서 비롯된다. 정말로 어떤 사람들에겐 월급이란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반면 다른 사람은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중간 어딘가에서 있다. 어떤 것이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최적의 포지션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 의미에 가깝다. 말하고 싶은 부분은,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가치가 지나치게 한 쪽으로 치우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 쓸데없는 일(이건 설명이 필요없지 않을까)

- 부당한 업무(불법이거나, 도덕적으로 그렇게 진행하면 안 되는 것)

- 착취, 혹은 열정페이 같은 것

- (하고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기본적인 생활수준이 무너지는 것

- 가족과의 완전한 단절


그러나 이러한 사항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여기서 더 편한 근무환경에 더 많은 돈을 주는 회사보다는 '원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그런 회사를 찾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페이스북에서 출퇴근 시간이 없고, 야근을 강제하는 사람이 없다고 '일 자체'가 적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무도 감시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절대로 속일 수 없는' 감시자를 불러 들인다. 그것은 바로 '자기자신'이다.


첫 회사에서 사수가 해 준 말이 있다. 어떤 팀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려면, '팀장'이 없을 때(가령 휴가 혹은 출장을 갔을 때)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보면 된다고.


우리나라 법에서 근무시간은 하루에 8시간이다. 여기에 한 시간의 점심시간을 포함하여, 9시-6시, 10시-7시를 가장 많이 적용한다. 주당 근무시간은 40시간(8시간 x 5일)이고, 회사와 직원 간의 합의가 있다면 주당 12시간까지 초과로 근무하게 할 수 있다. 주말에 근무를 한다면(물론 상호간의 합의와 특근수당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여기에 최대 16시간이 추가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법이고, 이 기준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회사들이 많다. 법이 만들어진 취지를 고려하지 않고 법에서 미처 명시하지 못한 부분을 악용하여 '포괄임금제'와 같은 상식을 벗어난 계약서가 내노라 하는 회사들에 많이 적용되어 있기도 하다.


법(정확히는 근로기준법)에서 근로시간을 규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부당한 기업들을 감시하는 것은 굉장히 옳은 일이다. 사무직에 포괄임금제를 금지하는 법안이 준비되고 있는 등 전반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은 분명히 모든 직장인에게 환영받을 일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제도의 개선은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더욱 떠올리게 한다.


만약 '근무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주어지지 않고 '월급'만 주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1) 적당한 시간(가령 8시간)을 스스로 선택한 후 그 시간만큼 일을 한다

2) 일하지 않고 논다

3)(시간 제한 없이) 원하는 만큼 일을 하고 필요한 만큼 휴식을 취한다


위 세 가지 유형 중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것을 전제로) 페이스북에 가장 어울리는 유형은 3번이다. 오히려 지나칠만큼 업무에 몰두하기 때문에 매니저가 '의도적'으로 휴식을 권장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페이스북 직원들이 1년에 2번씩 정기적으로 모이는 컨퍼런스의 1번 주제는 언제나 Fuel(재충전을 위해 좀 쉬라는 뜻이다. 직역하면 '당신의 연료를 바닥내지 마세요' 정도라고나 할까)이었다.


출퇴근 시간이 없고, 강제되는 야근이나 회식이 없고 스스로 업무시간을 결정할 수 있다는 내용을 '편한 직장'이라는 의미로 생각해서 페이스북에 지원했다면, 그리고 페이스북의 채용 시스템이 이러한 사람을 걸러내지 못한다면(현실적으로 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 사람은 '최소 가이드의 법칙'에 따라 모든 제약이 사라진 후에 자신의 직장생활에서 처음으로 맞는 진정한 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굉장히 혼란스러운 것이, 실제로 모든 페이스북 직원들이 이러한 자유를 긍정적으로만 활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악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규칙'이나 '규범'같은 인위적인 틀로 통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아예 누군가 '악용한다'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악용'의 기준은 또 누가 정하는 것인가? 그럴 시간이 있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좀더 시간을 쏟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은 원래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학창시절의 '공부'도 즐거운 것이었어야 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무엇인가 의미있는 것을 실행하고 배우는 과정이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우리에게 이러한 즐거움을 앗아간 것은 우리의 업무를 강제하는 그 '무엇'들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저녁'이 아니라, 일의 즐거움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A급 인재를 떠나게 하는 7가지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