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01
원래 하고 싶은 게 뭐였더라.
직장을 다니면서 굉장히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질문이었다. 딱히 일하는 것이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매일이 미치도록 즐겁거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늘 맘에 쏙 드는 것은 아니었다. 비가 오는 날도 있었고, 구름 하나 없이 쨍쨍한 그런 날도 있었다.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열대야의 시간들도 결국 끝나게 마련이고, 지난 날의 무더위를 그리워할 만큼 혼을 쏙 뺄 만큼의 겨울이 찾아온다는 것도 알았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죠.
사람들은 당연한 듯 무심하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마치 '어른의 세계로 들어온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하는 듯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샤워를 하고, 회사로 가서 책상에 앉아 일을 하다가 점심을 먹고 일을 하다가 중간에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또 일을 하다가 저녁에 퇴근을 했다.
조금 더 빨리 출근해야 하는 회사가 있었다.
이런 건 도대체 왜 하라고 하는 건가 하는 일을 시키는 회사도 있었다.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상사가 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일정을 챙겨서 그냥 집에 가고 싶게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짜장면이나 짬뽕 대신 잡탕밥을 시키면 쳐다보는 회사도 있었고,
법인카드로 뭘 먹든 신경도 안 쓰는 회사도 있었다.
야근이 많은 회사도 있었고,
출근을 하든 집에서 일하든 분기말에 성과만 보는 회사도 있었다.
창문이 없어 밖에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알 수 없었던 회사도 있었는데,
정작 힘들었던 건 새해를 맞아 다같이 종소리를 듣자며 집에 가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다른 것처럼 다녔던 회사도 모두 달랐다. 사람의 기억은 왜곡되기 마련이라, 정작 흥미로운 기억들은 다닐 땐 미치게 속을 긁던 그런 회사에서 더 많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회사에서 한결같았던 것은,
인생을 걸고 해볼만한 것이 내게는 없었다는 점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화성에 가고 싶어하기도 하고, 모든 사람들의 집에 컴퓨터 한 대씩을 놓아 드리고 싶어하기도 하고, 전세계의 사람들을 연결하고 말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한다. 왜 그런 것이 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부럽고, 멋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보통 이런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드는데, 그래서 그런 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돈을 벌기도 했다.
꼭 바다 건너 사람들을 애써 찾을 필요는 없다. 비율이 꼭 높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직장을 다니다 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은 듯한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굉장히 열심히 일하고, 찾아온 기회를 탁 하고 낚아 채어 자신을 증명한 사람들이다. 회사를 차리고, 인터뷰 영상을 통해 경험을 공유한다. 혹시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칠까봐 자막을 크게 넣어 보기좋게 해서 공유하는 사람도 생겼다.
모두 열심히 살고, 노력을 하고, 꽤 오랜 시간동안 일관되게 어떤 일을 했다.
나는 왜 그런 것이 없을까, 이 생각이 들 때마다 꽤 괴로웠다. 업무를 바꿔 보기도 하고, 회사를 옮겨 보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일도 꽤 있었고, 나름대로 성과를 꽤 내기도 했다.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은 일도 꽤 있었고, 그럴 때면 가만히 앉아서 왜 그렇게 망해버린걸까를 곰곰이 생각하고는 잘못된 부분들을 수정하기도 했다. 그렇게 문제를 풀면 더 큰 즐거움이 왔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 일을 계속 하고 싶은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
퍼즐을 푸는 것은 즐겁지만, 내가 풀었던 퍼즐에 어떤 의미나 삶의 목적이 담겨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냥 퍼즐을 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충분히 어렵고 충분히 새롭기만 하면 퍼즐 자체는 어떤 것이든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동안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했으며
결혼을 하고 아이도 생기고, 대출금을 갚고 집도 하나 생겼으니 말이다.
마음에 드는 직장에 들어갔고, 일도 재밌었고, 마침내 내게 맞는 자리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2년 전이다.
여름이 막 끝나가는 밤이었고, 그냥 평범한 하루였다. 여느 때처럼 늦게까지 일을 했지만 누가 시켜서 그랬던 것도 아니었다. 수없이 지나다녔던 분당-내곡 도로를 운전을 하며 집에 돌아가는데 그날따라 터널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 딱히 엑셀을 많이 밟았던 것도 아니었다. 110km의 제한속도를 약간 초과해서, 그러나 속도계에 걸리지는 않을 만큼의 딱 살아온 인생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핸들을 돌리면 어떻게 될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굴들이 스쳐지나갔고 어쩌면 조금은 슬픈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생각보다는 핸들을 꽉 잡고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마침내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한동안 그렇게 차 안에 머물러 있었다. 위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문을 열고 침대에 누웠을 때였다 .
그러나 알 수 있었다. 그래도 크게 상관이 없었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길을 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