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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규 Mar 20. 2022

내가 나에게

삶의 의미와 도전, 흐름에 대하여

 누가 쫓아 오지도 않는데 저만 벼랑 끝을 달리네요. 제 삶이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건 누구의 탓일까요. 제 탓일까요. 하지만 이는 자연의 큰 순환 같기만 합니다. 저의 그 어떤 치밀한 계획도 헤겔이 말한 세계 정신과 같은 큰 자연의 계획엔 전혀 미치지 못하더군요. 언젠가는 행복했습니다. 또 언젠가는 불행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두 제 의지는 아니었습니다. 계획대로 되었을 때의 성취감이라는 행복이 있는가 하면 뜻하지 않게, 우연하게 된 일이 저에게 행복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반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아 불행한 적도, 계획대로 되었는데 잘못된 선택이었던 적도 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렇게 보면 전 항상 행복할 수도 항상 불행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삶의 불행과 행복은 개인의 선택이다.’ 와 같은 일반적인 깨달음에 회의를 느낍니다. 물론 좋은 깨달음이지만 저는 그와 조금 다르단 말입니다. 돌이켜보니 이 모든 일이 제 의지대로는 아니었습니다. 단지 흐름이었습니다. 선택에 앞선 고민과 고뇌도 제 커다란 정서의 물줄기 중 일부일 뿐입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 위한 여러 장면 중 한 장면에 불과했습니다. 선택에 대해서 죄책감이나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만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책하고 불안해해도 됩니다. 오히려 그 감정들을 타고 흘러가는 것이 더 좋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최근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인생에 있어서 폭풍우를 만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들이 제가 이 글을 쓰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이 글을 계기로 어딘가로 다시 흘러가고자 합니다.


 저는 지금 당신에게 있는 그대로의 흐름을 즐기라고 조언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도전의 가치는 무엇이냐, 도전하나 그렇지 않으나 삶은 흘러갈 것이고 그엔 기쁨과 슬픔이 따를 것인데'. 훌륭한 지적입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도전하나 하지 않으나 삶은 흘러갑니다. 도전의 유무가 인생 전반의 불행과 행복의 총량엔 크게 기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전은 우리 인생에 다양성을 부여한다는 점, 이를 주체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시도해볼 만 합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한 동물로서 느낄 수 있는 충분히 다양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으로서 더 많은 경험을 해볼 수 있습니다. 다른 동물들이 이루지 못한 거대한 문명을 일궈냈기 때문이죠. 삶에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그의 인생 물줄기에 또 다른 한 줄기를 '스스로' 더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다양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좋지 만은 않습니다. 그만큼 더 다양한 방법으로 고통 받기 때문이죠. 하지만 더 많은 추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추억 또한,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추억을 선택한 우리는 좀 더 인간적일 선택지를 얻어갈 뿐입니다.


 나아가 당신은 '스스로'라는 말에 의문을 가지며 도전도 결국  자연 흐름에서 수동적인 것이 아니냐 물을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도전하게 되는 것도 세상 흐름의 일부일 뿐이죠. 그러나  도전이라는 것은 '주체적으로 선택했다는 느낌' 줍니다. 이런 인간으로 태어나서 내가 무언가를  힘으로 했다는 경험은 우리가 인간임을   자각할  있게 해주죠. 저는 이렇게 도전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전의 기회에서 도전해야 할까요? 과연 가치 있을까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으면 하라.’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당신이 무언가를 선택할 때 하나의 판단 기준으로 이를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입니다. 도전의 가치란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 개인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렇기에 이렇게 다시 조언합니다. 어느 선택을 하던 그 흐름을 즐기세요. 선택이 인간의 고귀한 능력이지만 그 능력은 완벽하지 못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의 결과를 즐기는 것입니다. 당신의 영화가 새드엔딩일지 해피엔딩일지는 아무도 모르기에 엔딩 전까지는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가 공포스럽고 불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그저 흐름입니다. 오히려 극적인 결말을 위한 하나의 위기일 뿐일수도 있죠.      


 저는 지금도 벼랑 끝을 달리는 것 같습니다. 너무 힘듭니다. 불안합니다. 하지만 그냥 달리렵니다. 제 앞의 벼랑이 진짜 벼랑일 수도 있겠지만 안개에 가려진 길일 수도, 찬란한 낙하를 위한 발판일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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