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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하고 우상과 산책할 줄은...

부악문원 통신 1

by 몽상가



삭발을 한 지 2주가 되었습니다.

밖에 나갈 때는 모자를 쓰는데 가끔 모자 쓰는 것을 잊고 나갔다가 저를 본 사람들이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왜 그런지 눈치채지 못했어요. 그 사람을 지나쳐가고 나서 아~~ 하고 늦게 알아차리고 머리를 쓱 만져봅니다. 저도 삭발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거지요.

사람들은 제가 삭발을 한 것에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 짐작합니다. 아픈 사람 같아 보이진 않으니 세속적인 불화나 비극을 상상하는 것 같습니다만 제 버킷리스트에 삭발이 있었을 뿐입니다. 시기적으로 실행에 옮길 적기가 찾아와서 가차 없이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어버렸어요.


제가 생각한 적기란 브런치에 장편 [파렴치한 연애] 연재를 시작하면서 자발적 유폐 생활을 선택했는데 집중과 단절을 동시에 잡는 시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편 [파렴치한 연애] 연재와 삭발을 동시에 거행한 장소가 바로 '부악문원'입니다. 지금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장소이기도 해요.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부악문원'은 이문열 선생님이 계신 곳입니다. 지금은 건강이 좋지 않아 집필 활동은 못 하시고 부악문원의 실질적인 운영은 사무국장이 하고 있어요. 현재 집필실에는 5명의 작가가 입주해 있으며 숙식은 물론 생필품이 구비되어 있고 무료입니다. 입주작가들은 오직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는 구조라고 볼 수 있어요.


저는 20대에 이문열 선생님의 작품을 읽으면서 '소설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그런 게 소설이라면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에 이문열 선생님의 소설을 읽지 않은 청춘들이 있을까요? 문학 언저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문열의 시대에 빚을 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네, 저는 제 20대를 완전하게 장악한 문학적 스승이 이문열 선생이었습니다. 20대에 품었던 소설가라는 꿈을 이제야 이루었고 제 우상이었던 이문열 선생이 계신 부악문원에 소설을 쓰기 위해 와있습니다.

부악문원에 와서 처음 선생을 뵙던 날 저와 선생의 대화입니다.


"저는 선생님 소설을 읽고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허, 제가 몹쓸 짓을 했군요. 제가 죄가 많습니다. 허 허 허."


우상을 실제로 만나니 눈물이 찔끔 났고 뭉클했습니다. 선생의 정치적 발언으로 문단과 독자들에게 뭇매를 맞긴 했으나 저에게는 여전히 우상으로 남아있는 분입니다. 무엇보다 부악문원 창작실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일단 넓은 책상이 좋고 창밖으로 보이는 산이 좋습니다. 지은 지 오래된 건물이라 시설이 낡았다고 하지만 저에게는 이보다 좋을 순 없습니다. 오로지 저만을 위한 공간에서 저만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너무 행복할 따름이지요.


비가 오지 않는 한 오후에는 산책을 나갑니다. 종일 책상 앞에 앉아있다 보니 체중은 불고 근력은 떨어지거든요. 바람도 쐴 겸 부악문원 뒤에 있는 설봉산 자락까지 갔다 오기도 하고 길 건너 마을길을 한 바퀴 돌고 오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이문열선생 내외와 함께 산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또 얼마나 감격했는지요! 나의 우상 이문열 선생과 산책을 하게 될 줄을 상상도 못 했거든요.


제 기억 속에 있는 선생의 문장은 펄펄 날아다니는데 세월을 이기지 못한 선생은 지팡이를 손에 들었네요.

저는 소설을 써보겠다고 바리깡으로 밀어버린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네요.

선생과 저는 그렇게 같이 산책을 했습니다.

삭발을 하니 나의 우상과 산책을 다 합니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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