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민감자의 대인관계를 지키는 감정 조절 향기

왜 그렇게 예민해?'라는 말에 대처하는 법

by 이지현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그냥 좀 넘기면 안 돼?", "너만 유독 피곤하게 생각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은 가까운 동료에게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그들의 말에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온몸의 방어막이 솟아오르는 듯한 경험. 나의 진심과 감정이 오해받고, 나라는 존재 자체가 틀린 것처럼 느껴지는 깊은 좌절감. 이 말들은 단순히 나의 행동에 대한 피드백이 아니라, 나의 가장 깊은 내면, 나의 존재 방식 자체에 대한 공격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우리 초민감자(HSP)들에게 이 말들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우리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다가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상처받은 마음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관계를 해치는 말을 내뱉거나(투쟁), 혹은 모든 감정을 속으로 삭이며 스스로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내곤 합니다(도피 또는 경직). 어느 쪽이든 결국 상처만 남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 감정의 폭풍이 몰아치는 순간, 우리에게 잠시 숨을 고르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전지대'가 있다면 어떨까요? 이번 글에서는 관계 속에서 나의 예민함이 오해받는 바로 그 순간, 나를 지키고 관계도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서의 '감정 조절 향기' 활용법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상처받는 마음: 왜 그 말은 유독 아플까?

같은 말이라도 초민감자에게 더 깊은 상처가 되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그 말을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히 '상처를 잘 받아서'가 아니라, 신경생물학적인 차원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우리의 뇌는 정보를 더 깊이 처리하고, 감정적 반응성이 높으며, 미묘한 자극을 더 잘 감지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말들이 가진 숨은 의미와 파장을 남들보다 훨씬 더 크게 받아들입니다.


정체성에 대한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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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민감자에게 '민감함'은 고치거나 버려야 할 성격의 일부가 아니라, 세상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방식 그 자체, 즉 뇌의 운영체제(OS)와 같습니다. 초민감자가 아닌 사람의 뇌가 일반적인 운영체제로 작동한다면, 우리의 뇌는 모든 데이터를 정밀 분석하는 전문가용 프로그램을 탑재한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예민하다"는 비판은 마치 고화질 카메라에게 "왜 이렇게 모든 걸 자세하게 찍어?"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카메라의 본질적인 기능이지, 결함이 아닙니다. 이처럼 우리의 민감성은 존재의 핵심이기에, 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단순히 행동에 대한 지적을 넘어 "너의 존재 방식이 틀렸다"는 말과 동의어로 받아들여져 깊은 모욕감과 수치심을 유발합니다. 이는 마치 왼손잡이에게 왜 오른손을 쓰지 않느냐고 타박하는 것과 같아서, 바꿀 수 없는 나의 본질을 부정당하는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감정적 타당성의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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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뇌는 모든 자극을 깊이 처리하고 그에 따른 풍부하고 복잡한 감정을 느끼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 수많은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불안이 스쳐 지나가고, 그로 인해 슬픔이나 분노를 느끼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생생하고 진실한 현실입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무심코 던진 농담에 우리가 상처받는 것은, 그 말 자체뿐만 아니라 그 말에 담긴 미세한 뉘앙스, 과거에 비슷한 말로 상처받았던 기억, 그리고 이 관계가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까지 한꺼번에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말은 우리가 느끼는 이 복잡하고 타당한 감정이 그저 '과하거나 불필요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나의 감정적 현실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감정적 무효화(Emotional Invalidation)' 경험이며, 세상에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깊은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게 합니다. 반복되는 감정적 무효화는 결국 스스로의 감정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잘못된 건가?'라며 자기 의심에 빠지게 만듭니다.


반추 사고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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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정보 처리' 특성으로 인해, 우리는 그 말을 들었던 상황, 상대방의 표정, 목소리 톤, 나의 감정, 그리고 그때 하지 못했던 말까지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되새김질하는 '반추 사고'에 빠지기 쉽습니다. 마치 사건 현장을 몇 번이고 다시 돌려보는 탐정처럼, 우리는 그 순간을 분석하고 또 분석합니다. '그 사람이 왜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내가 그때 이렇게 대답했다면 어땠을까?', '이 말은 우리의 관계가 끝났다는 신호일까?' 이 과정에서 상처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원래의 사건과는 무관한 온갖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더해집니다. 결국 '역시 나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야',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와 같은 부정적인 자기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반추 사고는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를 덧나게 하고 흉터를 깊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시켜, 우리를 탈진 상태로 이끌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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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아로마테라피스트 이지현입니다. 법학과와 스포츠의학을 전공한 뒤, 현재는 국제 아로마테라피스트로 활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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