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기다림'을 '머무름'의 지혜로 바꾸는 법

향기, 가장 지혜로운 기다림의 친구

by 이지현

"읽음" 표시는 떴지만 몇 시간째 답이 없는 메시지 창, "결과는 추후 통보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끝난 면접, 관계의 향방을 알 수 없는 미묘한 침묵. 우리의 삶은 이처럼 '결론 나지 않은' 상태, 즉 '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상태를 "기다리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비교적 가볍게 넘길 수 있지만, 우리 초민감자(HSP)들에게 모호함은 종종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고문처럼 느껴집니다. 닫히지 않은 문 앞에서, 우리는 그 문이 열릴지 닫힐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옴짝달싹 못 한 채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 버립니다.

이처럼 모호한 상태를 유독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은 당신의 의지가 약하거나 인내심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당신의 뇌가 '미결 사건'을 그냥 내버려 두지 못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정보를 깊이 처리하고, 잠재적인 위험을 미리 감지하려는 우리의 섬세한 신경계에게, '결론 나지 않음'은 해결되지 않은 중대한 문제이자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됩니다. 뇌는 이 '열린 루프(Open Loop)'를 닫기 위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긍정적, 부정적 시나리오를 쉴 새 없이 시뮬레이션하며 과부하 상태에 빠집니다. 결국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난 것보다 더 큰 감정적 소모를 겪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처럼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모호함' 앞에서, 성급한 결론으로 뛰어들거나 불안에 잠식당하는 대신, 그 불확실성 속에 평온하게 '머무르는' 기술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왜 초민감자는 '모호함'을 견디기 힘들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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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루프'를 닫고 싶은 뇌의 본능

초민감자의 핵심 특성인 '깊은 정보 처리(Depth of Processing)'는 우리의 뇌를 뛰어난 '문제 해결사'로 만듭니다. 우리는 복잡한 정보 속에서 패턴을 찾고,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여 명확한 결론을 도출하려는 강한 내적 동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호한' 상태는 바로 이 문제 해결 시스템에게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와 같습니다. 뇌는 이 '열린 루프'를 닫고 인지적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제한된 정보만으로 섣부른 결론을 내리려 하거나("답이 없는 걸 보니, 분명 나를 싫어하는 거야"), 혹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같은 생각을 맴도는 '반추 사고'에 빠지게 됩니다. 이는 뇌가 안정감을 되찾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를 더 큰 불안과 왜곡된 판단으로 이끌 뿐입니다.


모든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하는 피로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미묘한 단서를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이 능력은 모호한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동시에,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주된 원인이 됩니다. 상대방의 짧은 메시지 하나에서, 우리는 수십 가지의 다른 의도와 가능성을 읽어냅니다. 그리고 각각의 가능성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마치 수많은 평행 우주를 탐험하듯 모든 시나리오를 생생하게 시뮬레이션합니다. 특히, 뇌의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으로 인해, 우리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게 됩니다. "만약 면접에 떨어진다면...", "이 관계가 결국 나에게 상처를 준다면..." 이처럼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고통을 미리 경험하느라, 우리의 신경계는 현재의 평온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탈진 상태에 이릅니다.


통제력 상실에 대한 깊은 불안

'모호함'의 본질은 '통제 불가능성'입니다. 결과는 나의 통제 밖에 있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이는 잠재적인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통제하여 '안전'을 확보하려는 우리의 생존 본능을 정면으로 위협합니다. 뇌의 경보 시스템인 편도체(Amygdala)는 이 통제력 상실 상태를 '위협'으로 인식하고, 몸을 '투쟁-도피' 모드로 전환시킵니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해하며, 어떻게든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성급한 행동(계속해서 메시지 보내기 등)을 하려는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이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모호함 견디기'의 뇌과학: 기다림의 근력을 키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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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아로마테라피스트 이지현입니다. 법학과와 스포츠의학을 전공한 뒤, 현재는 국제 아로마테라피스트로 활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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