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커서, 움직이지 않는 손
출근을 하고, 컴퓨터를 켜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커피도 준비되었고, 주변 환경도 정돈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니터 화면 속 깜빡이는 커서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지금 시작해야 제시간에 끝낼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 얹힌 채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습니다. 머릿속에서는 빨리 시작해야 해라는 목소리와 도저히 엄두가 안 나라는 목소리가 팽팽하게 맞서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갑니다. 이 정적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감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결국 자신을 자책하는 마음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초민감자의 뇌는 깊은 정보 처리 특성으로 인해, 단순한 업무 하나를 보더라도 그와 연관된 수많은 과정과 결과를 동시에 떠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메일 보내기라는 단순한 과제가 적절한 단어 선택, 수신자의 반응 예측, 혹시 모를 실수에 대한 점검, 이후에 이어질 답장 대응 등 수십 가지의 하위 과제로 나뉘어 인식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아주 작은 일조차 거대한 산처럼 느껴져,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즉 압도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뇌는 이 거대한 과제를 처리할 엄두가 나지 않아, 본능적으로 회피하거나 시작을 미루는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시작을 가로막는 또 다른 큰 원인은 완벽주의일 수 있습니다. "제대로 하지 못할 바에는 시작도 하지 않는 게 낫다"는 무의식적인 믿음이 브레이크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첫 문장부터 완벽해야 하고, 첫 아이디어부터 획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은, 텅 빈 화면을 채우는 것을 공포스러운 일로 만듭니다. 초민감자는 비판이나 실수에 대해 더 깊은 감정적 고통을 느낄 수 있기에, 잠재적인 실패의 가능성이 있는 시작이라는 행위 자체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방어 기제를 작동시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뇌가 휴식 모드에서 고도의 인지 능력을 요하는 집중 모드로 전환하는 데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듭니다. 이를 전환 비용이라고 합니다. 에너지가 고갈되기 쉬운 초민감자는 이 전환 비용을 더 비싸게 치를 수 있습니다. 특히 출근 직후나 점심시간 이후처럼, 이완된 상태에서 다시 긴장된 업무 상태로 넘어가야 할 때, 뇌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을 보입니다. "딱 5분만 더 쉬고"라고 생각하며 뉴스 기사를 보거나 SNS를 확인하는 것은, 뇌가 이 힘든 전환을 피하려고 무의식적으로 저항하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시작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신경전달물질은 도파민입니다. 도파민은 흔히 보상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동기 부여와 행동 개시에 더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도파민 수치가 떨어져 있으면,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몸을 움직일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미루는 습관이나 시작의 어려움은 종종 뇌의 도파민 회로가 적절히 자극받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시작을 위해서는 뇌에 도파민을 분비시켜 "이 일을 하면 좋을 거야" 혹은 "일단 움직이자"라는 신호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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