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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Nov 24. 2024

폭식증과 끝없는 허기

폭식증의 악순환과 정신과 문을 두드리기까지

처음엔 단순히 체중을 줄이기 위해 칼로리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이어트는 점점 극단으로 치달았다. 바디프로필 촬영을 준비하면서 탄수화물은 철저히 배제되었고, 단백질과 채소만으로 구성된 키토 식단이 나의 유일한 식사로 자리 잡았다.


탄수화물을 멀리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촬영일이 다가올수록 수분 섭취까지 줄이기 시작했다. 물 한 모금조차 두려웠다. 몸에서 빠져나가는 수분의 양이 체중으로 드러날까 봐, 하루 종일 마른 입을 달래며 버티곤 했다.


이 극단적인 식단은 단기간에 빠른 체중 감량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내 몸과 마음을 서서히 망가뜨리고 있었다. 음식에 대한 갈망은 강박으로 변했고, 숫자에 집착하는 마음은 더 깊은 불안을 낳았다. 하루 종일 칼로리를 계산하고, 조금이라도 기준을 넘으면 자신을 책망했다.


극심한 다이어트의 부작용은 내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잠식해 들어갔다. 식이장애는 서서히 나를 잠식했고, '백색 탄수화물'이라는 단어는 내게 가장 큰 적으로 자리 잡았다. 빵을 먹는 행위는 곧 나 자신을 죄악시하게 만들었고, 아침저녁으로 체중계에 올라서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밥을 먹은 뒤에는 곧바로 체중을 재고, 화장실을 다녀온 후 또다시 체중을 쟀다. 마치 숫자로 나를 증명하려는 듯한 강박이었다. 집에서 식사할 수 있는 날조차 체중계가 나를 지배했다. 이 모든 것이 내 삶을 점점 더 조이는 줄처럼 느껴졌다.


가족과의 갈등이 극대화되던 시기에 결국 폭식증이 터지고 말았다. 아무도 내게 빵이나 밥을 먹는 것에 대해 손가락질하지 않았지만, 나는 점점 숨어서 먹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억눌렸던 갈망이 터져 나왔다.


그릇된 갈망은 앉은자리에서 빵 10개를 한꺼번에 먹게 만들었다. 떡볶이, 김밥, 쫄면, 수제비까지 한 번에 먹어 치우는 날이 반복됐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언제나 예상 가능했다. 끔찍한 구토와 함께 끝나는 폭식증의 사이클. 먹는 동안 잠시나마 느껴졌던 해소감은 구토가 끝난 후, 더 큰 죄책감과 혐오감으로 나를 짓눌렀다.


폭식증은 내 몸과 마음을 기하급수적으로 무너뜨렸다. 폭식을 반복하며 체중은 눈에 띄게 늘어갔고, 폭토로 인해 침샘은 부어올랐다. 부은 얼굴은 마치 달덩이처럼 커져갔고, 거울 속 내 모습은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처참했다.


엄마는 나를 붙들고 폭식증 치료를 전문으로 한다는 한의원으로 데려갔다. 한의사는 모든 열이 머리로 몰려 있고, 전해질이 불균형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침치료와 한약을 처방받았지만, 내 안에 자리 잡은 본질적인 허기와 갈망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끊임없이 갈증과 배고픔이 올라왔고, 결국 나는 다시 빵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마치 걸신이 들린 사람처럼, 아귀가 들린 것처럼 음식에 대한 갈망은 멈추지 않았다. 빵과 함께 떡볶이, 김밥, 쫄면, 수제비까지 한 번에 먹어치우는 일이 반복되었다. 폭식 후 이어지는 구토는 내 몸을 더 상하게 했고, 마음에는 더욱 깊은 죄책감과 혐오를 남겼다.


이 모든 악순환을 끝내고 싶다는 마음에 나는 내 발로 정신과를 찾았다. 하지만 상담실에서 몇 마디 이야기를 꺼낸 후, 더 깊이 들어가기가 두려웠다. 상처의 뿌리를 마주하기보다, 다시 문을 닫고 돌아서고 말았다. 치료는 이어지지 않았고, 나는 또다시 악순환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저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은 컸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를 옭아매는 갈망과 고통의 굴레는 여전히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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