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현 Nov 24. 2024

우울증의 시작

스타트업에서의 갈등과 무너진 일상

나는 필라테스 강사로, 신랑은 재활 교정 전문 트레이너로 각자의 분야에서 일하며 가정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 시기 나는 기업 강의를 나가기 시작했고, 신랑은 교육 강사로 부업을 병행하며 점점 더 바쁜 날들을 보냈다. 


그러던 중, 우리 둘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일을 알선해 주던 업체가 스타트업으로 새 출발을 한다는 소식에, 함께 도전해 보기로 결정했다.


회사의 초기 비전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나는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아 책임감을 느꼈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사업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대표는 점차 직원들에게 험담과 성냄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사내 갈등은 점점 심화되었다.


나는 내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회사 분위기는 점점 나를 짓눌렀다. 책임감과 압박감이 쌓이면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머릿속은 항상 복잡했고, 어느새 길을 걷다가 문득 멈춰 서는 날들이 잦아졌다. ‘여기가 어디지?’라는 생각이 떠오르며, 내가 왜 여기 있는지조차 잊어버린 듯한 멍한 상태로 길 위에 서 있었다.


몸은 움직이고 있었지만, 마음은 텅 빈 채로 헤매고 있었다. 익숙한 일상이 낯설게 느껴지고,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나는 우울증에 다시 빠져들고 있었다.


우울증은 단순히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감정의 병이 아니었다. 그것은 익숙했던 일상을 왜곡시키고, 내가 서 있는 현실조차 흔들리게 만드는 깊은 혼란이었다.


이런 상태는 단순히 길을 잃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 자신과의 연결이 끊어진 감각이었다. 무엇을 위해 여기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삶의 목적이나 의미는 점점 희미해졌고, 스스로를 붙잡고 있는 끈이 점점 느슨해지는 기분이었다.


우울증이 주는 가장 큰 고통은 바로 이런 자기 상실의 순간들이었다.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지고, 평범한 일상의 행위조차 무거운 과제가 되어버린다. 이 혼란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 증상은 슬픔이나 무기력을 넘어서, 삶 전체를 흐릿하게 만드는 안개처럼 내 모든 것을 뒤덮었다.


퇴사를 하기로 하고 결국 병원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스스로를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회사에서의 압박감과 갈등, 그리고 나 자신을 잃어버린 기분은 여전히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치료는 어쩌면 내 삶을 되찾기 위한 작은 발걸음이었지만, 그 발걸음을 떼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전 02화 폭식증과 끝없는 허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