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피트

단편. 일상

by 정현재

두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붙들고 있다.

일주일의 4일은 상세설계도를 그리고, 5일은 마스터플랜의 설계 기준을 고친다. 일주일은 분명 7일인데, 왜 9일처럼 일하는지는 모르겠다.


지역개발공사의 고층 타워 디자인 기준을 협의하고 있다. 하루에 가장 경제적으로 타설 할 수 있는 면적, 약 13,500 제곱피트에 맞추는 것이 전제다. 시공의 속도가 곧 사업의 속도가 되기 때문이다. 대지의 폭은 192피트. 모든 계산은 이 숫자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에게 허락된 폭은 192가 아니다.

모든 건물은 대지 경계선에서 20피트를 물러나야 한다.


높은 건물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보행자를 밀어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규정이다. 도시는 위에서만 설계되지 않는다. 아래에서 걷는 사람의 속도로 완성된다. 그래서 20피트는 단순한 선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거리다.


192에서 20을 빼면 172.

이 20피트가 결국 건물의 비례를 정한다.

우리는 처음에 154피트 길이의 직사각형을 제안했다. 벽이 너무 길게 늘어서지 않도록, 도시의 시야를 막지 않도록. 같은 연면적이라도 비례가 달라지면 그림자도, 하늘도 달라진다.


하지만 개발공사는 185피트까지도 가능하다고 본다. 면적이 늘어나면 수익이 안정되기 때문이다. 복도 양쪽에 세대를 배치하는 이중 복도형 평면은 13,500 제곱피트의 타설 기준에도 잘 맞는다. 계산이 쉽고, 반복이 가능하다. 멀리서도 직사각형을 원하는 의도가 느껴진다.


그 사이 어딘가에 170피트라는 숫자가 놓인다. 한계 안에서 조금 줄인 선택. 안전과 비용, 그리고 디자인을 동시에 맞추려는 타협의 폭이다. 몇 피트 차이지만, 그 차이가 도시의 인상을 바꾼다. 그래서 20피트는 중립적인 숫자가 아니다.


그 안에는 두 개의 세계가 겹쳐 있다.


하나는 자본의 세계다. 몇 제곱피트를 더 확보할 수 있는가, 하루에 얼마만큼 타설 할 수 있는가. 다른 하나는 몸의 세계다. 바람이 어떻게 스치는가, 그림자가 얼마나 길어지는가, 하늘이 얼마나 남는가.


이 둘 사이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고, 다시 그 이야기를 숫자로 환산한다. 건축 설계의 일상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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