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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설계하는 부장들 이야기

단편

by 정현재

서울 자가에 대기업을 다닌다는 김 부장 이야기는 어디서나 비슷하다.


미국도 다르지 않았다.


나를 처음 인터뷰했고, 함께 일했던 첫 스튜디오 헤드(그를 부장이라 부르자)는 임원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은 좋지 않았다. 코로나 이후 해고가 본격화되던 시기, 감각적으로 장기 휴가를 떠났던 그는 돌아왔을 때 회사로부터 두 가지 선택지를 받았다고 했다.


퇴직, 혹은 강등.


그는 뛰어난 건축가였다. 이민 1세대였고, 하버드 출신이었지만 단지 이 회사가 그의 첫 직장이 아니라는 이유, 즉 ‘성골’이 아니라는 이유로 승진은 늘 밀렸다. 마침 대만 프로젝트가 축소되면서 그는 조직 밖으로 밀려났다. 그래도 그는 다행이었다. 비싸다는 캘리포니아에서 집이 두 채나 있는 투자자였고, 지금은 교수로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를 보며, 그리고 ‘김 부장’을 보며 사람들이 조용히 던져주는 조언들을 떠올리게 된다.


작년, 회사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진행하던 시기에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아마 그즈음부터 스레드를 시작했고,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가끔 십오 년 후, 이 조직 안에서의 내 모습을 떠올려본다.


임원이, 파트너가 되지 못하면, 아마 사라지겠지.


지금 함께 일하는 디렉터는 임원을 눈앞에 둔 위치다. 우리 회사에서는 그 단계가 프린시펄이다.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어느 순간, 그는 1화에서 썼던 김 부장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젊은 부장들이 등장해 경쟁하고 있다.


나는 조직이 정리될 때 디렉터 덕분에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회와 자원의 분배에서 어느 순간부터 내가 2순위로 밀려난다는 걸 느낀다. 도 부장이 자기 사람을 챙기듯, 이곳에서도 그 질서는 분명했다. 용병의 위치는 선명하다. 그들에게 3년 차도, 5년 차도 네가 성장하는 것보다 예전 역할을 정확히 반복하는 팀원이 더 필요하다.


점심을 먹으며 입사 동기이자 대학원 동기와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다. 화제는 같은 학교를 졸업한 또 다른 친구가 호주 오피스에 시니어(과장급)로 입사했다는 소식이었다. 우리는 동기들 중에서 승진이 가장 빨랐지만, 외부 입사는 내부 승진과 결이 다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의 대기업형 건축회사, 글로벌 설계조직에서 성장이라는 말은 하나의 모습이 아니다. 역할, 기회, 혹은 시장. 형태는 다양하다. 다른 생각이 스친다. ‘내 것’을 만들려면 지금부터 쌓아야 할까? 회사가 아니라, 나라는 브랜드.


이 먼 타국에서 쉬운 건 하나도 없다. 특히 건축설계라는 영역에서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제한적이다. 남아서 성장하든, 밖으로 나아가든 실력은 필수다. 그리고 실력은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다고 쌓이는 게 아니더라. 끈이란 건 여러 의미이다.


김 부장이 떠난 뒤 남겨진 팀원의 시선도 흔들린다.

그래도 그들 중 몇은 살아남아 부장이 되겠지.

미국도 그렇다.


#미국에서 설계하는 부장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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