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레이오프 그리고 챕터 에필로그
2024년 추수감사절 전날이었다.
모두가 다음 날의 휴식과 가족과의 시간을 기대하던 조용한 오후, 샌프란시스코 오피스에서 20년 넘게 근무하신 한 디자인 프린시펄이 회사를 떠난다는 메일이 올라왔다.
그는 단순히 오랜 시간 근속한 선배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따랐고, 다음 세대를 이끌 리더로 당연하게 여겨졌던 분이었다. 그의 퇴직 소식이 믿기지 않았던 건, 그 사람이 떠나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 자리를 비워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는 마지막 인사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 한편이 쿡 찔리는 듯했다.
정말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새로움’이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의 리스크를 줄이려는 익숙한 말장난일까.
2025년
어제 또 한 번의 퇴사 소식을 들었다.
이번엔 내가 정말 좋아하던 분들이었다.
작년 연말 임원들이 연이어 회사를 떠났던 그 시기와 비슷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허무함이 밀려왔다.
떠나는 사람은 매번 똑같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말하지만 남겨진 사람은 매번 다른 감정을 겪는다.
‘아, 이 팀도, 이 프로젝트도, 결국 사라지는구나’ 하는 상실감. 그리고 여전히 자리에 남아 있는 나 자신에 대한 혼란.
어제 진행된 미드 리뷰는 그 허무함을 더 짙게 만들었다.
1년 동안 함께 일해본 적도 없는 매니저, 수첩조차 들고 오지 않은 슈퍼바이저 앞에서 나는 내가 참여하지도 않은 프로젝트로 평가를 받았다.
물론, 헷갈렸겠지.
팀의 프로젝트 스코프를 일일이 기억하기란 쉽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런 실수조차 ‘말을 위한 말’처럼 들렸다는 게 문제였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나는 단순히 평가를 받은 게 아니라, 존재를 오인당한 것 같았다.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낯설고도 깊은 허탈감이 남았다.
그 순간엔 나조차 내가 무엇을 증명하려 이 자리에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지난 4년 동안, 나는 여덟 번의 레이오프를 겪었다.
그 사이 수많은 팀이 해체되었고, 익숙했던 얼굴들이 사라졌고, 조직의 방향은 끊임없이 흔들렸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회사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 오피스는 더 심하게 느껴졌다.
뉴욕, LA와는 너무도 다른 공기.
마치 혼자서 낡은 기계를 돌리고 있는 듯한 감각. 그 속에서 리더십은 과도기를 핑계로 후퇴했고, 매니저들은 위기 상황에서 방향을 잡지 못했다. 뭉쳐야 할 때조차 서로를 경쟁자로 여겼고, 프로젝트보다 자신의 디자인 쾌감에 몰입하는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방어 기제를 발동했다.
누군가는 조용히 문을 나섰고, 누군가는 침묵 속에 자신을 지웠다. 그리고 나는 아직, 이 자리에 남아 있다.
남아 있다는 건, 단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기억하고, 사라진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는 행위다.
매번 사라지는 이름들을 보며, 나는 내 자리에서 그려야 했다.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이제, 나는 이 기록의 마지막 장을 덮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려 한다.
미국에서의 시작. 신분이라는 투명한 벽 너머에서
낯선 땅에서 건축을 배우고, 살아남기 위해 애썼던 나의 대학원 시절로.
그곳에서부터 다시 쓰려한다. 왜 이 길을 택했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지를.
나는 아직 남아 있다.
그리고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