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포개어져 살아갑니다.
광장에 서면, 반짝이는 유리탑과 거무죽죽한 벽돌 건물이 나란히 서 있는 풍경을 볼 수 있지요.
시간이 쌓인 건물들은 단순히 공간이 아니라, 시대의 기억을 머금은 생명체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건물들을 우리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무너진 벽을 허물고, 새로운 빌딩을 세우는 것만이 답일까요? 아니면, 오래된 골조를 살리면서 지금의 기술을 덧입혀 새로운 삶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요?
요즘, 이 질문에 조용히 답을 내기 시작한 존재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건물의 호흡을 읽고, 균열을 감지하며, 에너지를 아끼는 일까지 맡아주는, 바로 인공지능(AI)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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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건물을 돌보는 인공지능
과거의 리노베이션은 대개 경험에 의존했습니다.
건축가는 오래된 도면을 펼쳐놓고, 현장에서는 두드려보고, 들어보고, 손끝으로 건물의 상태를 짐작했죠.
하지만 지금은 그 과정에 보이지 않는 조력자, AI가 들어왔습니다.
AI는 빛의 세기, 공기의 흐름, 구조물의 미세한 흔들림까지 읽어냅니다.
그리고 이 데이터들을 연결해, 지금까지는 느낄 수 없던 방식으로 건물을 이해하고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런던 로열 앨버트 홀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1871년에 문을 연 이 공연장은, 전통을 간직하면서도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꾸준히 변화를 시도해 왔습니다.
몇 해 전, AI를 도입해 조명과 난방 시스템을 실시간으로 조정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지요.
관객의 밀도, 공연 종류, 외부 기온 등을 분석해 가장 적절한 에너지 소비 패턴을 스스로 학습했습니다.
그 결과, 공연장의 에너지 사용량은 17%나 감소했고, 관객들은 예전보다 훨씬 쾌적한 공간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역시 비슷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과거 기차역이었던 이 건물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곳곳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습니다.
미술관은 수천 개의 센서를 건물 구조물에 설치해, AI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도록 했습니다.
그 덕분에 금속 피로나 벽체의 변형 같은 문제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게 되었고, 대규모 보수 없이도 건물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팔레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는 한발 더 나아가, AI가 관객의 움직임을 파악해 조명과 공조 시스템을 자동 조정하고 있습니다.
관객이 많이 몰리는 구역은 환기를 강화하고, 상대적으로 한산한 곳은 에너지를 절약하는 식입니다.
AI는 보이지 않는 무대 뒤편에서, 관객들이 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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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노베이션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긴장
하지만, 오래된 건물에 AI를 적용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는 안전성입니다.
AI가 조명이나 온도를 제어하는 것은 비교적 단순하지만, 구조물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균열이나 뒤틀림을 판단하는 일은 훨씬 복잡합니다. 만약 데이터 분석에 오류가 생긴다면, 치명적인 구조적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투명성입니다.
AI가 내리는 모든 결정 과정은 기록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보수 시점에 어떤 센서가 어떤 이상 신호를 감지했는지, 그리고 그에 따라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를 남기는 것. 이런 ‘디지털 감사 기록’이 없으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규명하기 어렵게 됩니다.
세 번째는 책임의 분명한 분배입니다.
AI가 추천한 방식을 따르다 문제가 생기면, 과연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요? 건축가? AI 개발사? 시공사?
최근 유럽연합은 ‘AI 책임법(AI Liability Directive)’ 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AI를 활용한 결정에 문제가 생길 경우, 명확한 책임 소재를 묻겠다는 움직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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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울타리 안에서
건축과 법은 늘 복잡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AI 리노베이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재 보호 규정 준수는 기본입니다.
예를 들어 파리에서는 문화재 등재 건물에 대해 외부 구조를 변경하거나, 전통 재료를 교체하려 할 때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AI가 아무리 효율적이라고 하더라도, 건축적, 역사적 가치를 훼손한다면 허용될 수 없습니다.
데이터 보호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AI가 건물 내부에서 사람들의 움직임, 이용 패턴, 심지어 얼굴 정보를 수집한다면, 이는 곧 개인정보 문제가 됩니다.
GDPR 같은 데이터 보호법은 이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으며, 사용자의 명시적 동의 없이는 데이터를 수집할 수 없습니다.
보험과 책임도 새롭게 정의되고 있습니다.
최근 몇몇 유럽 도시에서는, AI를 적용한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에 대해 별도의 ‘AI 리스크 보험’ 가입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모를 시스템 오류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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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로부터 배운 것들
우리는 실패를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웁니다.
2019년,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는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연기 감지기가 신호를 보냈지만, 사람들은 이를 오작동으로 간주했고, 소중한 시간이 지나버렸습니다.
AI가 있었더라면 상황은 달랐을까요?
실제로 몇몇 연구에서는, AI가 연기 농도, 열 분포, 공기 중 입자 변화를 통합 분석해, 초기 화재를 기존 시스템보다 수 분 빠르게 감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기술은 때로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조용한 눈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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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노베이션, 기술을 넘어서
AI는 무척 유용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AI가 제안하는 ‘최적화’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때때로, AI는 “이 공간은 비효율적입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비효율적’인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소중한 추억의 장소일 수 있습니다.
구석진 벤치 하나, 비좁은 복도 끝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한 줄기.
이런 것들은 데이터로 수치화할 수 없는 것들이니까요.
건축가의 역할은, AI가 놓치는 이 미묘한 감정과 기억을 읽어내는 일 아닐까요?
AI는 분석하지만, 인간은 느끼고, 기억하고, 선택합니다.
AI는 건물을 더 안전하게, 더 편리하게, 더 오래도록 살아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공간을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리노베이션이란, 결국 시간과 기억을 존중하는 일입니다.
지나간 손길을 이해하고, 앞으로 올 사람들의 발걸음을 환영하는 일.
그 한가운데서, AI는 훌륭한 조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터치는,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