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도심 속 거리를 걷고, 건물에 들어서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인공지능(AI)은 조용히 도시의 또 다른 설계자이자 보이지 않는 조율자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출근길 교통 신호를 조정하고, 빌딩의 에너지 흐름을 최적화하며, 인프라의 이상 징후까지 예측하는 기술들. 이제 AI는 도시에 아주 깊숙이 스며들어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기술이라기보다는 ‘일상’으로 체감하죠.
놀랍게도 세계 도시의 3분의 2 이상이 이미 AI 기반 도시 서비스를 운영 중이며, 이 중 80%는 향후 더 많은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모든 변화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도시의 풍경과 작동 방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AI는 이 도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도시를 설계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새로운 시선’은 어떤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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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도시를 데이터로 바라보는 AI의 시선
AI는 인간처럼 거리를 걷는 이들의 감정, 하늘빛의 변화, 골목의 정서를 느끼진 못합니다. 대신 그것은 모든 도시를 ‘데이터의 흐름’으로 봅니다. 신호등, CCTV, GPS, 공기 질 센서까지—도시의 모든 요소가 하나의 디지털 브레인으로 연결되어 있죠.
예컨대 항저우의 ‘City Brain’ 시스템은 도심 곳곳에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128개의 신호등을 실시간으로 조정해, 차량 속도를 15%나 끌어올렸고, 응급차 출동 시간도 수 분 단축시켰습니다. 이 AI는 단지 ‘차가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의 패턴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도시의 리듬을 조정합니다.
한국의 송도 신도시는 더 나아가 도시 전체를 데이터 기반으로 구축했습니다.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사람의 이동, 기온, 교통 밀도 등이 중앙에서 조율되며, 도시가 스스로 반응하는 시스템이죠.
이처럼 AI는 도로, 건물, 사람, 빛 등 각각의 요소를 별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도시를 인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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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도시 속 사람까지 읽는 기술
이제 AI는 단순히 도로나 교통신호를 넘어서, 도시를 오가는 사람들의 ‘움직임’까지 해석하려 합니다.
산호세에서는 횡단보도에 설치된 AI 카메라가 보행자를 감지하고, 충돌 가능성이 있는 상황을 예측해 신호등을 조정하는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이가 도로로 달려들 가능성이 있거나, 느리게 걷는 노인이 횡단 중일 때, 시스템이 이를 판단해 시간을 연장해 주는 식이죠.
건축가와 도시 디자이너에게 이 흐름은 새로운 과제를 던집니다. 우리가 설계한 광장이나 공원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AI가 데이터로 피드백해 주면, 설계는 끝이 아닌 ‘계속되는 조정의 과정’이 됩니다. 도시는 점점 살아있는 실험실이 되어가고 있고, AI는 그 실험을 끊임없이 실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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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알고리즘과 건축의 협업: 스마트 빌딩의 시대
AI는 이제 설계 과정의 조력자로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오토데스크는 토론토 본사 설계에 있어 직원 250명의 선호 데이터를 기반으로 AI에게 조건을 입력했고, AI는 1만 개 이상의 배치안을 생성했습니다. 건축가는 이 중 하나를 선택하고 조율해 최종안을 도출했죠.
이후에도 AI의 역할은 계속됩니다. 센서와 연결된 건물은 온도, 습도, 진동, 공기 질을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AI는 이 데이터를 분석해 에너지를 절감하고, 불필요한 낭비를 줄입니다.
실제로 뉴욕의 한 고층 빌딩은 AI 기반의 빌딩관리시스템(BMS)을 도입한 결과 연간 에너지 소비를 약 15% 절감했습니다. 구글은 데이터 센터 냉각 시스템에 AI를 적용해 냉방 에너지를 40%까지 줄였죠.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는 수천 개의 센서가 설치되어 구조물의 미세한 변화까지 감지하고, AI는 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문제 발생 이전에 조치를 취합니다. AI가 실시간 감시자가 되어, 건축물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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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거리 위의 AI: 교통 흐름을 설계하다
AI가 교통 흐름을 바꾸고 있습니다. 피츠버그에서는 카네기 멜론 대학이 개발한 ‘Surtrac’ 시스템이 교차로 신호를 실시간으로 조정해 차량 대기 시간을 40%, 이동 시간을 25% 단축시켰습니다.
싱가포르는 상업 밀집 지역에서의 보행 흐름을 분석해 보도 폭과 횡단보도 위치를 개선했고, 플로리다는 도시 전체에 AI 기반 교통 플랫폼을 적용해 응급차량의 신호 우선권을 실현하고 있죠.
이러한 변화는 건축 설계에도 영향을 줍니다. 교통 흐름이 달라지면, 건물의 입구 위치나 광장의 동선 설계, 자전거 보관소의 위치 등 모든 것이 재고되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대중교통 시스템도 조용히 바뀌고 있습니다. 시카고와 뉴욕은 AI가 수요 예측에 따라 버스 배치를 조정하고, 불법 주정차를 감지해 벌금을 자동 부과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단, 이러한 기술들이 ‘차 중심’으로만 최적화된다면, 보행자나 자전거 이용자, 교통 약자들은 소외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AI 비전 시스템이 어두운 피부색 보행자를 인식하는 정확도가 낮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죠. 기술은 ‘모두를 위한 도시’를 만드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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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보이지 않는 윤리의 경계: 건축가의 책임
스마트 도시가 고도화될수록, 도시 곳곳에 설치된 센서와 카메라들은 우리의 일상을 끊임없이 수집합니다.
토론토의 ‘사이드워크 랩스’ 프로젝트는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구글 자회사가 주도한 이 스마트 시티 실험은, 데이터 수집과 프라이버시 문제로 시민의 반발을 샀고, 결국 폐기되었습니다.
건축가와 디자이너는 이제 단순히 공간을 설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사용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합니다.
건축은 ‘프라이버시를 위한 디자인’이 필요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 오피스를 설계할 때 단순히 센서를 설치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이 그 존재를 인식하고, 그 정보가 어떻게 쓰일지를 명확히 안내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논점은 알고리즘의 ‘편향성’입니다. 과거 데이터에 기반한 AI는, 그 데이터가 편향되어 있다면—예를 들어, 특정 지역에 범죄율이 높았다는 이유로 과도한 감시가 집중된다면—그 지역은 기술로 인해 더 소외될 수 있습니다.
AI를 도입할 때 우리는 반드시 질문해야 합니다. “이 시스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데이터는 누구로부터, 어떻게 수집되었는가?”, “모든 사용자가 반영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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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6. 인간 중심의 알고리즘을 위하여
AI가 도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우리가 만든 이 도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건축의 목표는 더 이상 고정된 형태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에 끊임없이 반응하고 조율되는 공간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AI는 우리에게 새로운 도구를 주었지만, 어떤 선택을 할지는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예를 들어 AI가 어떤 광장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판단할 때,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합니다. “그곳은 정말로 비효율적인가? “
벽돌과 유리가 도시의 물리적 풍경을 만들었다면, 이제 알고리즘은 그 도시의 보이지 않는 질서를 구성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정지된 공간’을 설계하지 않습니다. 움직이는 흐름, 반응하는 구조, 데이터로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도시를 설계하게 되었죠.
하지만 AI는 이 모든 것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도울 수는 있지만, 대신 살아줄 수는 없습니다. 그 사이 어딘가, 건축가는 여전히 사람과 기술 사이를 잇는 번역자이자 균형 잡힌 설계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