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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내일을 기대하자.

미래의 나

by 노을

되고 싶은 모습이 그려지던 날이 있었다. 미래를 볼 수 있어 불안하지 않았다. 대학교를 입학하고, 자유롭게 살다가 임용고시를 보고 교사가 되어 지내는 모습. 아이들 때문에 웃기도, 울기도 하지만 결국 그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학교생활에 만족하는 모습. 때로는 나처럼 아픈 아이가 학교에 들어오면 꼭 도움을 주겠다는 다짐을 하며, 특히 아이들에게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겠다고 다짐하던 모습. 그리고 항상 이런 대사를 말하는 나를 꿈꿨다.


“나는 장애를 가졌지만 내가 가진 꿈을 포기하지 않았어. 결국 교사를 하겠다는 꿈을 이루며 살고 있단다. 그러니 너희들은 무엇이든 꿈꿀 수 있어. 그리고 그것을 해낼 수 있어.”


말로만이 아니라, 직접 보여줄 수 있는 교사가 되는 것이 내가 꿈꾸던 교사상이었다. 나를 보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끼고, 행동으로 실천하기를 바랐다.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와 같이 환경에 의해 꿈이 좌절되는 아이가 단 한 명이라도 줄기를 희망했다. 적어도 인연이 닿아 나와 지내는 학생들은 그들의 지지대가 있는 삶을 보내길 바랐다. 그것이 내가 교사를 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였다. 적어도 기댈 수 있는, 숨 쉴 구멍이 되어주는 사람이고 싶었다.


기댈 곳이 없었던 내가 기댈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기댈 곳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 시절, 어린 나는 참으로 강했다. 그로 인해 내 꿈은 ‘교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내 경험을 살려 주변의 교사들에게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좋은 교사들이 많아지길 희망한다. 한 명의 교사로 교육이 바뀌는 것이 아니니까, 적어도 한 학교에서의 긍정적인 변화를 꿈꾸기에. 물론 그러면서도 내가 학생들과 멀어지는 것은 싫었다.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던 순간, 나는 암흑 속에 빠진 것 같았다. 사실 매일이 힘들었는데, 유달리 현재가 더 힘든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내 생각 회로의 스위치가 꺼진 것 같았다. 그 이전의 나는 매일 침대에 누워서 내일을 떠올리면 내일의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미래를 생각하면, 미래가 그려졌다. 되고 싶은 모습이 있고,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명확했다. 하지만 갑자기 내일을 생각하면 검은색의 화면만이 나에게 다가왔다. 내일이 없는 것 같았다. 당연히 교사가 된 이후의 나도 그려지지 않았다. 당황스러웠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미래를 생각할 수 없으니 오늘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나에게만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렇게 지금까지 나는 내일이 그려지지 않는다. 어쩌면 내일을 그릴 수 있었던 시기가 특별했던 것 같다. 대부분 사람들이 내일이 그려지지 않는다고 하니까. 이렇게 불안한 미래를 그리며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 이후로 나는 항상 생각해본다. 나는 어떤 모습을 바라며 살아야 하는가? 내가 원하는 모습은 무엇일까?



다행인 것은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완전무결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상처를 주지 않고, 옳은 선택만을 하며, 힘든 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을 꿈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런 관계가 될 확률이 높다. 익숙하고 편하다는 이유로 긴장이 풀린 채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치료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생각이었다. 병을 준다면, 약도 같이 주자는 것이다.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사과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타인의 행동을 탓하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수용하는 사람이, 원인을 파악하는 것 대신 감정을 공감해주는 사람이 되자고. 그렇게 내 사람들을 아끼고,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나는 완전무결할 수는 없지만, 인간미 넘치는 사람은 될 수 있지 않을까?



현실적인 내 미래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보고, 교사가 되고, 학교생활을 하고, 틈틈이 글도 쓰고, 여행도 다니며, 친구도 만나다가, 힘들면 상담이나 병원을 다니면서 가능하다면 또다시 다양한 것을 시도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정년퇴직도 하게 될 것이다. 그 사이 부모님은 돌아가실 것이고, 나는 나이를 먹을 것이다. 어쩌면 뻔한, 어쩌면 매우 평범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돈을 벌고,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할 일에 치여 사는 삶을 살 것이다.


그렇게 살면서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예전처럼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여전히 신경통에 휘둘려 신경증에 걸린 삶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아픔에만 휘둘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고, 너무 많았다. 모든 것에는 총량이 있다고 믿는다. 행복에도, 불행에도 말이다.


그러니 내 미래는 행복이 조금 더 많이 있는 채로 다가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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