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상
애도 방식이란,
결국 슬퍼하는 방법.
사람과 사별 후에 오는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흔히들 상실감을 받아들이는데 5가지의 감정이 같이 온다고 한다.
수용, 분노, 타협, 슬픔, 부정.
나는 그중 아마 가장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는 감정이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슬픔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슬프고 슬퍼하는 방법은 도대체 무엇이 있는 것일까? 슬프면 식욕이 사라지기도 하고, 무기력해지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며, 우리는 다양하게 표현할 것이다. 당신은 슬프면 무엇을 하나요?
당신은 슬픔을 어떻게 느끼나요?
그날 이전, 나에게는 슬픔이라는 것이 없었다. 우울은 있어도 슬픔이 찾아오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슬플 때 나는 주로 울기도 했지만, 화도 냈던 것 같다. 그렇게까지 슬픈 일이 누군가에게 있는 것이 너무나도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내는 분노. 나에게는 슬픔이 그런 종류의 감정이었다. 이번에도 슬픔은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사별 소식을 들은 후부터 슬픔은 모든 감정을 집어삼켰다,
블랙홀처럼.
감정의 차단기가 열린 이후, 나에게 슬픔은 끝없이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특히 나는, 나에게는 슬픔은 아픔이었다. 아프다는 것은 곧 슬프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많이 아팠다. 온몸이 잘리는 고통보다 나는 더 아팠다. 정말로 피부가 한 겹 한 겹 결마다 찢겨나가는 고통. 그것이 나에게 매일 계속되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덜 아프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아팠다. 피부는 하필 5조 5억 겹으로 되어있는지, 뜯긴 만큼 매일 회복되는지, 나는 새롭게 매일 뜯겨져 나갔다.
매일, 매일, 매일.
그러다 보니 너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우는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울 힘도 사그라졌다. 그래서 나는 아픔을 차단하려 했다. 슬픔을 멈추려고 했다. 나는 애도를 멈추고 싶었다. 나에게 애도는 아픔뿐이니까. 그런데 애도를 안 하면 내가 살 수가 없었다. S가 미친 듯이 그리워서, 보고 싶어서. 그래서 사는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아픔 말고도 다양했다. 꼬마가 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하루 종일 놀면 아무리 치워도 난장판인 상태보다 더 난장판이었다. 그 어느 감정 하나 해소되지도, 정리되지도 못했다. 감정이 순서대로 나오지도 않았고, 정리된 줄 알고 보면 다시 또 튀어나와 있던 감정들. 이런 난장판을 처음 겪은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24살의 꼬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