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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진 Dec 09. 2018

자존심, 자존감

자존심과 자존감. ‘심’과 ‘감’ 한 끗 다른 단어인 이 둘의 사전적 의미는 실제 둘 다 ‘남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 품위를 지키는 마음’이라는 비슷한 뜻을 지닌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용되는 맥락을 보면, 이 둘의 용처와 의미는 하늘과 땅 사이의 차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존심과 자존감의 정의를 사전과 조금 다르게 내려보고 싶다.


자존심: 존중 받고 싶어하는 욕심
자존감: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


둘의 가장  차이는 ‘누가 주체가 되는가이다. 자존감은 누가 뭐래도 내가  주체다. 스스로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은 바로 나에게서 비롯되고 나로 인해 완성된다. 반면, 자존심은 타인이 주체가 된다. 존중 받고 싶은 욕심은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존중해줘야만 채워질  있다. 그만큼 - 모든 욕심이 그렇듯 - 채워지기 어렵고, 채우자면 끝도 없으며,  때문에 괴롭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존감은 낮을 확률이 크다


위와 같은 이유로, 자신감과 자존감은 대체로 역의 상관관계를 갖는다. ,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존감은 낮을 확률이 크다.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 겉으로 자존심을 세게 내세우는 사람들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누군가 건드렸을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가지로 갈린다.   열등감이나 우울감에 빠지거나 “  그래. 네가  안다고 그래?”하며 오히려 콧대를 높여 세우거나. 반응은  가지지만 이를 이끌어낸 심리적 근원지는 같다. 열등감,  낮은 자존감이다.  

자존감이 높다면, 스스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남들의 평가에 휘둘릴 이유가 하나도 없다. 누가 뭐라한들, 이미 나의 가치는 내가  알고 있으니까. 고로 이런 사람은 자존심이 상할 일도, 자존심을 부릴 일도 없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면을 누군가 지적하더라도 소위 쿨하게 인정하고 오히려 수면 위로 끄집어내 그것을 소재 삼아 이야기할  있다.


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하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 받고 싶어 한다. 누군가의 선택과 인정을 갈구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평가는  자신의 낮은 가치에 대한 의심 또는 확인사살이 되고, 이는 자존심에 몹시  상처로 남는다.


자존감은 내 손으로 직접 내 안에 쌓아 올리는 것이다


그간 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실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이제 알 것 같다. 그동안 나는 운이 좋게도 내 자존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만큼 어려운 상황이나 자존감을 해칠만한 사건을 경험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럴 만한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피해 왔었던 것도 같다. 무엇보다, ‘자존심’이 ‘자존감’인 줄 착각하며 살았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인생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다양한 형태의 더 많은 비교군을 경험하게 되고, 손에 쥐는게 많아질수록 쥐고 싶은 것들이 더 많아지면서 더 자주 상처 받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그리고 그 상처의 뿌리를 파고 들어가 보니, 그 자리에는 자존감이 있었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나는 늘 승부욕이 많은 사람이었고, 사람들의 인정과 좋은 평가를 갈구해왔다. 그게 내 성취의 증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덕분에 그간 내가 속한 조직에서는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아왔고 이는 내 자신감과 자존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결정적으로 나는 나 자신에 대한 평가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해 왔다. 내가 이겼다는 걸, 내가 더 잘했다는 걸, 나는 잘하고 있다는 걸 꼭 다른 누군가의 인정이나 평가로 확인받고 이를 통해 성취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로 인한 자존감의 형성과 유지는 조건적으로만 유효하다. 타인의 평가가 계속 좋기만 할 때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나를 좋게 볼 수는 없기에 이는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존감은 누군가의 부정적인 평가에 너무나도 취약하다. 곱게 키워온 자존감은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쉽게 금이 가고 허물어진다. 자존감이 금이 간 자리에 자라나는 건 열등감이 씨를 뿌린 괜한 자존심 뿐이다. 내 안의 자존감이라는 탑을 다른 사람 손에 맡긴 채 부실공사를 한 결과다.  

외부의 평가와 인정에 기댄 자존감은 마치 깨지기 쉬운 물건 같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약간의 충격에도 쉽게 깨지고야 만다.

특히, 한국처럼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는 자존심만 세게 부리는 사람들은 넘쳐나는 반면, 내면의 자존감은 쪼그라든 사람들이 태반이다. 알게 모르게 누군가와 비교 당하고 서열을 정하는데 익숙한 우리 사회에서 조금만 열위를 차지하거나 뒤쳐지는 자신을 발견하면 자존심에는 스크래치가 가고, 이로 인해 겉으로는 오히려    하거나, 그마저도 하지 못하면  안에 분노가 켜켜이 쌓여 결국엔 분노조절장애 같은 현대인의 질병으로 표출되기도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최악의 경우, 자존심만 하늘을 찌르고 자존감은 바닥인 사람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오죽하면 ‘열폭’(열등감 폭발을 의미하는 비속어)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고, 자존감 관련 서적들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을까. 모두가 나의 가치에 대한 평가를 내가 아닌 남에게 맡기는데 익숙해져버려 자존심이 자존감인줄 착각하고  탓이다.


‘자존심이 센’ 사람들에게 이제는 말해주고 싶다. 한번쯤은 ‘나는 왜 자존심이 센지’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고. 그게 진짜 자신감의 발로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난 충분히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그저 자존심 강한 스스로에 대한 안일한 평가는 아니었는지. 어쩌면, 이제라도 나의 자존감을 깊게 살펴보고, 어루만져 주고, 삶을 살아가며 (특히 자존심이 센 사람일수록) 매일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상처들에 당당히 저리 가버리라고 외쳐주어야 할 때는 아닌지 말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 누구와 있든, 스스로 빛난다. 누구와 있어도 위축되거나 주눅들지 않고, 반대로 스스로를 과하게 포장하거나 콧대 높은 척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런 사람 주변에 머물기를 좋아한다. 우월의식도 열등감도 없는 사람은 스스로도 편안하고, 다른 사람들도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존중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존중할  안다.


이런 자존감은 그 누가 대신 만들어줄 수 없다. 누군가 대신 만들어줄 수 있다면, 누군가 깨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건 자존감일 수 없다. 이제 나부터 ‘자존감’이라는 말을 조금 더 신중하게 대하고 아껴보려고 한다. 타인의 평가와 인정이 아니라, 나 스스로 먼저 나를 제대로 보고 인정하는 일을 차근차근 해봐야겠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내가 언제 자존심이 상하는지 살펴보고, 그 순간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가만히 들여다봐야겠다. 그리고 그것이 과연 내 존재가치를 해칠만큼 심각한 일인지 생각해볼 것이다. 아마 그 무엇도 그럴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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