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조직문화, 조금은 쉽게 다가가기
설명하기 어렵고 복잡한 개념일수록 비유를 활용하거나 예시를 들면 이해가 훨씬 쉬워진다. 기업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을 하면 할수록 조직문화가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여러 가지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운다. 이럴 때마다 이를 단순화해줄 수 있는 일종의 메타포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조직문화에 대한 첫 번째 글 '조직문화란 대체 무엇일까?'에서 말한 '자율신경'도 그중 하나이다. 이 외에도 누군가 내게 조직문화에 대한 질문을 하거나 이에 관한 진지한 논의를 할 때면 내가 즐겨 쓰는 메타포가 있다.
우리 회사가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일까?
먼저 '의인화'의 방법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어떤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때는 그 사람의 외모나 성격뿐 아니라 스타일, 말투 같은 것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를 통해 다정하면서 차분한 사람, 똑똑하고 냉정한 사람, 성실하지만 재미없는 사람 등 여러 가지 무수히 많은 이미지들이 형성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어떤 기업의 문화가 어떻다고 이야기할 때는, 그 기업의 의사결정 방식, 구성원 대상 커뮤니케이션의 톤 앤 매너, 조직의 분위기 등 문화를 이루는 여러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풍기게 되는 특정한 패턴이나 공통된 스타일 같은 것을 말하게 된다. 가령 "수직적이고 딱딱하다", "재미있고 창의적이다", "유연하고 역동적이다" 등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데, 사실 저 문장만 보면 사람 성격을 말하는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회사는 사회적으로 법인격을 부여한 가상의 존재일 뿐 그 실체는 같은 목적을 갖고 모인 '사람들의 집합소'이니 의인화의 방법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회사의 문화를 정의하고 만들어 나가고 싶은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먼저 우리 회사가 '어떤 사람이면 좋을지'를 생각해 보자. 성격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기가 조금 어렵다면 특정 인물을 떠올려 보는 것도 방법이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는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면 그 회사의 문화는 어떨 것 같은가? 아마도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 자연스러울 것이고, 차별화와 혁신을 강조하며 때로 치열한 논쟁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조금은 괴짜 같은 행동도 허용이 될 것 같다. 이렇게 인물의 성격을 회사의 성격으로 치환해 보면 조금 더 쉽게 우리에게 필요한 문화적 특질이 뽑힐 것이고, 이를 제도나 정책 등에 반영하기도 조금은 수월해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의사결정의 순간마다 '이런 사람이라면 어떤 결정을 할까?'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문화를 해치지 않는 일관된 의사결정이 가능해질 것이다.
우리 회사가 집이라면, 어떤 인테리어 콘셉트의 집일까?
회사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은 집을 짓고 인테리어를 하는 과정과도 닮았다. 집을 짓는다고 상상해 보자. 외관과 구조를 설계하는 일부터 건축 자재를 결정하고 내부 인테리어를 하는 모든 과정이 하나의 명확한 콘셉트 아래 일관되게 진행될 것이다. 만약 내가 짓고 싶은 집의 콘셉트가 '발리 같은 휴양지에서의 리조트'라면 가장 많이 쓰이는 소재는 아마도 라탄이나 목재일 것이고 가장 많이 쓰이는 컬러 톤은 밝은 나무 색일 것이다.
조직문화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지향하는 문화가 '유연하고 수평적인 문화'라면 위계질서가 분명한 직급제도, 경영진의 독립되고 분리된 방, 연차에 따른 보상 등은 어울리지 않는 가구이다. 발리 리조트 같은 집을 꿈꾸면서 심플한 모던 화이트 가구나 앤틱 가구를 배치한 셈이다. 우리가 조화롭지 못한 인테리어에서 불편함이나 촌스러움을 느끼듯, 회사의 문화와 맞지 않는 경영활동들은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사기 어렵고 무엇보다 문화적 토대 자체를 부실하게 만든다.
콘셉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인테리어도 취향의 차이이듯, 윤리적인 문제만 없다면 기업문화 또한 좋고 나쁨의 차이라기보다 강한 문화와 약한 문화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업의 특징, 비즈니스가 속한 산업환경의 차이, 기업의 성장단계나 경쟁상황 등이 모두 다르기에 어떤 특정한 문화가 모든 기업에 다 맞거나 옳을 순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회사가 추구하는 문화가 기업의 모든 경영활동에 일관되게 적용되고 실행되고 있느냐 이다. 우리 회사의 인테리어 콘셉트는 무엇인가? 회사의 모든 가구와 소품들 - 제도와 정책, 조직구조, 커뮤니케이션 방식, 그리고 실제 회사 공간의 디자인까지 -은 그 콘셉트에 들어맞는가? 인테리어에서는 조명 하나, 작은 소품 하나도 전체 분위기에 큰 영향을 준다. 회사의 작은 의사결정 하나, 새로운 제도 하나도 문화 전체에 영향을 미침을 늘 명심하고 싶다면 인테리어 메타포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지속성과 일관성에 도움을 주는 메타포
몇 년 전,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하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스크린에 눈동자 그림만 덩그러니 나왔다. 그리고는 그 눈동자를 따라 움직이라는 메시지가 뒤따라 들렸다. 눈이 피로하지 않도록 눈 운동을 하자며 내보낸 영상이었다. 그때 문득 '아! 이게 조직문화를 만들어가는 방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눈 운동을 시켜야 한다는 미션이 떨어졌을 때 보통 사람들이 떠올리는 방법은 아마도 누군가가 나와 눈동자를 어떤 방향으로 몇 초 간 굴려야 하는지 등을 설명하고 따라 하게끔 시키는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따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관심조차 갖지 않을 확률이 크다. 그런데 깜깜한 스크린에 갑자기 눈 그림을 하나 띄우고 "이것만 따라오세요" 하니 나도 모르게 눈동자가 그림을 좇게 되고 그러는 새 나도 모르게 진짜로 눈 운동을 하게 되었다.
조직문화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글로 백 번, 말로 천 번 알려줘도 소용이 없다. 명확한 미션과 가치를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따라갈 수밖에 없는 시스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자연스레 알게 되는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일관성과 지속성이다. 일관성은 무수히 많은 경영활동에서 문화적 정합성을 만들어 주는 가장 중요한 속성이고, 지속성은 기업이 일관성 있게 추구한 가치와 활동들이 그 기업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기 위해 필요한 숙성의 시간을 만들어 준다.
하지만 그만큼 가장 어려운 일이 이 일관성과 지속성을 지켜가는 일이다. 때로는 방법을 몰라서, 때로는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타협하게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말한 메타포를 활용하여 매 순간 '이런 사람이라면 이렇게 결정할 거야'라거나 '이건 우리 회사 콘셉트에 안 맞는데?' 같은 생각으로 조금 더 쉽게 자기검열을 할 수 있다면 조금은 조직문화를 가꿔나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리드 헤이스팅스는 그의 저서 <규칙 없음>에서 넷플릭스의 문화를 잘 짜인 오케스트라의 교향곡이 아니라 '즉흥 연주로도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재즈'와 같다고 비유했다. 여러 말 하지 않아도 넷플릭스의 문화가 어떨지 대충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우리 회사의 문화는 어떤 메타포를 갖고 있는가? 우리 회사를 사람이나 인테리어 콘셉트에 비유한다면 어떨 것 같은가? 우리 회사의 제도, 우리 조직의 회의문화, 나의 일하는 방식은 그 메타포에 들어맞는가? 강한 문화를 만들고 싶다면 매 순간 계속해서 자문하고 얼라인먼트를 맞춰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