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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진 Apr 07. 2018

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의 필연적 공생

문화는 커뮤니케이션을, 커뮤니케이션은 문화를 만든다.

커뮤니케이션은 기업문화의 수단이자 과정인 동시에 결과이다. 극단적일 수 있지만, 어떤 기업의 문화를 알고 싶다면 그 기업의 구성원들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떤 말을 하는지, 사내 카페에서는 주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그리고 사내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보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조직문화를 말하는데 있어 커뮤니케이션은 결코 따로 떼어내어 말할 수 없는 필수 요소이다.  


언어는 문화의 다른 말이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려면 그 국가의 문화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건 우리 모두가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언어에는 수많은 역사가 들어있고 문화적 맥락이 엮여 있으며 하나의 국가, 사회, 시대와 세대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하나의 테크닉이나 스킬이 아니라 문화 그 자체다. 따라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그룹은 문화를 공유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언어란 크게는 language, 작게는 word까지도 포함한다.


언어를 공유하는 단위는 국가에서 시작해 조금씩 좁혀 들어갈 수 있다. 같은 국가 안의 지역, 지역 내에서도 마을, 마을 내에서는 학교와 가정 등의 소단위까지 쪼개질 수 있다. 각각의 단위별로 사용하는 말들을 살펴보면 같은 단위 내에서는 자주 사용하는 어휘나 표현 등의 공통된 패턴이 발견될 것이고 이는 각 단위별로 조금씩 다를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언어는 세대별로도 나뉘어진다. 한국만 봐도 소위 급식체라 불리는 수많은 신조어들을 사용하는 10대부터 그들만의 개그를 선보이는 40~50대 아재 세대까지 연령대별로도 언어는 조금씩 다르게 사용된다.


갑자기 급식체와 아재개그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언어를 공유하는 단위에 따라 문화가 달라짐을 강조하기 위함이며, 이 단위에는 기업 또한 크게 한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다 같은 대한민국의 기업이라고 해도 이들이 사용하는 한국어는 조금씩 다르다. 즉,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단어, 표현방식, 소통 매체나 빈도 등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직적이고 관료적인 문화를 가진 기업이라면 명령이나 지시조의 딱딱한 말을 많이 사용할 것이고, 빠른 속도와 변화를 강조하는 기업이라면 유연성과 신속성을 강조하는 말을 주로 사용할 것이다. 일정 기간동안 몇 개의 기업에 상주하며 각각의 기업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를 기록하여 비교한다면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고, 바로 그 결과로부터 각 기업의 분위기나 문화를 예측해볼 수 있을 것이라 감히 단언해 본다.


무엇을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할 것인가가 문화를 좌우한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하는 기업문화가 있다면 우리는 무엇보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 기업이 지향하는 가치와 신념을 공유하고 직원들과 상호작용하기 위한 수단이 결국 커뮤니케이션이고, 사내 커뮤니케이션은 결과적으로 한 기업의 문화 수준을 알 수 있는 척도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조직구성원들 간 대화와 협업의 방식은 어떤지, 보고와 의사결정 구조 및 체계는 어떻게 되는지, 회사-직원 간 커뮤니케이션 방향과 빈도는 어떤지, 사내 공식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등 모든 것들이 결국 문화를 만드는 동시에 현재 존재하는 문화를 대변한다. 말은 문화의 과정이자 결과이며, 수단이자 목적이다.


수평문화를 지향하는 기업들이 앞다퉈 직급체계를 없애고 '님'과 같은 호칭제도를 사용하는 이유도 말이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진출 신화를 쓴 히딩크 감독이 맨 처음 대표팀 감독에 부임한 후 단행한 일 중 하나가 바로 '형'이나 '선배'와 같은 호칭을 없앤 것이었다고 한다. 선배에 대한 예우로 잘못된 패스를 하고 반대의견을 내지 못하는 데서 한국축구의 팀워크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호칭을 바꾼다고 하여 당장 문화가 달라지진 않는다. 사실 호칭만 바꾸는 것은 문화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 '연령이나 경력에 구애받지 않고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하는 여러가지 제도와 정책이 호칭제도와 함께 일관성 있게 맞물려 돌아갈 때 비로소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단편적인 예지만, 히딩크 감독이 식사자리에서 일부러 자리배치를 바꾸거나 선후배간 격의없는 대화 자리를 유도한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서 '언어와 문화'의 상관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속성 중 하나가 나온다. 바로 '일관성'이다.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한다면서 조직의 직급체계나 구조는 수직적이거나 리더가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조직이라면 어떨까? 혁신을 위해 도전하는 문화를 추구한다면서 경영진이 직원의 실수나 실패를 공개적으로 비난한다면? 기업이 추구하는 미션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가치가 있는데 사내 커뮤니케이션은 이와 동떨어져 있다면?


사람들은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보다 바로 내 눈 앞에서 펼쳐지는 모습과 내 귀에 들리는 소리에 더 민감하고, 내가 느끼고 경험하는 것을 더 믿는다. 제 아무리 멋들어지게 기업의 철학을 공표해봤자 직원들이 수많은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경험하는 것이 그것과 다르다면, 기업문화는 기업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건 상관없이 그저 직원들의 경험을 따라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 말과 행동의 불일치는 개인적으로나 조직적으로나 치명적이다.


경영진을 비롯한 리더들의 말이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결정적이다.

사내에서 돌고 도는 말은 곧 그 기업의 경영진 또는 리더가 주로 어떤 말을 하는가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리더들은 좋은 리더이든 아니든, 그리고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조직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리더는 대체로 더 많은 정보와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수평적인 조직이라 할지라도 조직 내에는 하이어라키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눈에 잘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의 차이일뿐. 따라서 리더의 역량과 역할은 경영성과뿐 아니라 기업문화에도 필수적이다. 기업문화와 경영성과 간의 역학관계를 생각하면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특히, 그 중에서도 경영진의 말 한마디는 생각보다도 훨씬 더 큰 파급력을 가진다. 이는 나름 뚜렷한 색깔의 기업문화와 경영성과를 유지하고 있는 기업들의 CEO들이 한 말을 보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핵심가치로도 조금은 괴팍한 재미(fun)을 추구하고 실제로 유니크한 문화로 유명한 자포스의 토니 셰이는 "즐기십시오. 돈벌이 수단 이상으로 생각할 때 게임은 훨씬 즐거워집니다"라는 말을 하곤 했고, 세계 1위를 목표로 뛰고 있는 중국의 IT기업 화웨이의 창립자 런 정페이는 "우리는 '늑대'의 정신을 지닌 조직입니다. 늑대는 사자와 싸울 때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합니다. 이겨야 한다는 강한 열망과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투지를 불태우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사자를 녹초로 만들어 버립니다."라는 말로 ‘늑대문화’를 조직에 설파했다. 거대공룡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회사가 있다. 고객으로부터 돈을 더 받아내기 위해 일하는 회사와 덜 받기 위해 일하는 회사다. 아마존은 후자다.”라는 말을 실제 모든 경영활동에서 몸소 보여주며 세상 어떤 기업보다도 고객 중심적인 기업으로서의 조직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기업의 커뮤니케이션과 문화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극단적으로 넓게 보면 둘은 동의어에 가까우며, 작게 봐도 커뮤니케이션은 문화의 구성요소이자 수단이며 결과이다. 부디 모든 기업이 문화를 만들어갈 때 말과 글을 신중하게 활용하기를 바라며, 특히 조직문화라는 배의 키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 현명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더 좋은 문화를 만들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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