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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Aug 20. 2020

‘나쁜 사람’을 제거하는 기회비용.

        우리 모두가 동일 선상에서 인생을 새롭게 출발한다고 할 때. 사는 동안 반드시 한쪽으로는 노력을 해야 한다면 ‘좋은 사람 되기’와 ‘나쁜 사람 되지 않기’, 둘 중 어느 쪽을 사람들은 선택할까?      


        어렸을 때의 나라면 아마 좋은 사람이 되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때는 누구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더 컸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저 사람처럼은 안 될 거야’라는 다짐이 많아졌다.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에 뇌가 점점 더 질색하고 나서부터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도 좋은 사람을 찾아내기보다는 나쁜 사람을 먼저 거르는 편이다. 좋은 사람은 만나면 좋고, 만나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나쁜 사람은 내 삶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선한 마음’을 이용하는 사람, 그중에서도 돈거래에 마음을 이용하는 사람을 첫 번째로 꼽는다. 고작 20만 원을 얻기 위해 내 마음을 이용한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사라졌다!      


        내가 그의 잠적 소식을 들은 건 그가 종적을 감추고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당연히 20만 원은 돌려받지 못했다. 어떤 경우에라도 ‘절대’라는 말은 쓰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가 입버릇처럼 한 말이 있다. 누구와도 절대 돈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나의 다짐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무너졌다. 그것도 오직 돈을 빌려주는 일에 한해서 말이다.      


        ‘돈거래 불가’라는 굳은 결심을 흔들리게 하고, 단박에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그들은 그때를 노렸다. 나에게 원고료가 입금되는 날을 정확히 아는 ‘위치’에 있거나 ‘친분’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손을 벌리는 돈은 적게는 10만 원, 많게는 200만 원. 돈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방패 삼아 무조건 다 거절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정도에서 포기하지 않았다. 동병상련, 인지상정, 역지사지, 측은지심. 온갖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스토리를 동원해 마음 약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겪어본 중 가장 최악은 ‘우리 사이’와 '금액'을 적나라하게 비교하면서 의리를 요구하는 부류였다. 예를 들면 우리 사이가 고작 10만 원도 안 되냐고 되묻는 식. 과연 서로 간의 진심, 의리가 돈으로 증명될 수 있기는 한 것일까?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왜 그 증명은 빌리는 쪽이 아니라 빌려줘야(?) 하는 쪽에서 해야 하는 것일까? 애초에 질문이 잘못됐다. 자신을 믿는다는 것을 알면서 그 믿음으로 돈거래를 하려는 쪽은 과연 의리가 있는 행동이냐고 내가 반문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반박이 생각난 것은 이미 돈 문제로 여러 번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나서였다.     


        내가 나에게 가장 아쉬운 부분은 ‘그 정도의 돈’이라는 상식을 왜 나를 대변하는 데 쓰지 않고 굳이 상대를 이해하는 데만 쓰려고 했을까 하는 것. 그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은 오죽할까. 그래, 우리 사이가 이 돈보다는 중요하지. 내가 그런 마음이 크다는 것을 그들은 집요하게 이용했다. 그 정도의 돈이 없어서 빌리는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다. 문제가 있는 건, 안 빌려주는 내가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그 정도의 돈이 없는 자신들이다. 애초에 우리 사이를 돈으로 가늠하려고 했던 것은 그들인데 왜 부채감은 나만 가져야 하는가 말이다.      


        솔직히 돈을 빌려주고 나서 마음이 정말 편했다. 최소한 ‘우리 사이’에 내가 할 도리는 했다는 해방감뿐이었다. 하지만 돈을 돌려받아야 할 때면 내가 한 도리는 곧잘 무시당했다. 약속한 날짜에 갚은 사람은 놀랍게도 한 명도 없었다. 늘 먼저 내 쪽에서 말을 꺼내야 했다. 그나마도 받으면 다행. 못 받는 경우도 있었다. 고작 그 정도(!)의 약속도 지킬 수가 없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한 고민이 가여워 끝없이 후회가 밀려왔다. 내 발등 찍은 하소연을 잠자코 들어주던 메이 언니의 한 마디에 단 1g의 자책도 더는 하지 않기로 했다.      


- 근데 있잖아. ‘우리 사이’를 정말 생각하는 사람들은 

  돈 빌려달라고 웬만해서는 말 못 해.

  우리 봐. 너나 나나 그런 적 있어?     


        후에 안 일이지만 20만 원을 빌려 간 그의 채무 전력은 꽤나 화려했다. 나와의 돈거래는 처음이었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금전 관계는 수년이 된 것 같았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까지 몰리자 돌연 자취를 감춘 것이었다. 나처럼 그에게 적지 않은 돈을 빌려준 선배가 말했다.      


- 나는 그냥 그 돈 안 받아도 되니까 

  다시는 이런 부탁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어.     


        나는 선배의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돈 빌려달라는 부탁을 듣는다는 것도 큰 스트레스지만 그것보다 거절할 구실을 찾고 상대를 단념하게 만드는 게 더한 고통이었다. 무엇보다 선의로 최선을 다한 마음이 끝내 배신당했을 때 드는 사람에 대한 회의감은 단순히 실망으로만 그치지 않고 대부분 인연의 종말로 이어졌다. 그러니 어쩌면 돌려받으려 애쓰기보다 차라리 인간관계 정리 비용으로 생각하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나는 20만 원으로 그를 내 미래에서 제거한 셈이다. 곁에 두면 언젠가 최소 한 번은 더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나쁜 사람’을 제거하는 기회비용 치고는 나쁘지 않다고 자위하면서.      


        그럼에도 잘못한 건 그 사람인데 왜 비용이라는 대가는 내가 치러야 하는지... 억울한 마음만은 영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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