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진 Nov 25. 2020

내가 좋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말.

        작가 생활 N개월 차에 EBS 야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하게 됐다. 5인으로 구성되는 12팀, 60명의 일반인 출연자들이 서바이벌 형식으로 겨뤄 우승팀을 가리는 방송이었다. 프로그램 규모가 크고, 준비 및 촬영 기간이 상당히 필요해서 PD, 작가 조합 3개 팀이 돌아가면서 매주 방송을 책임졌다. 우리 팀에서 내가 맡은 일 중 가장 중요했던 것이 일반인 출연자들의 섭외와 관리로 60명 중에서 내가 직접적으로 섭외한 사람은 각 팀, 팀장 12명이었다.      


        매주 제시하는 주제에 적합한 발명품을 고안해 설계도를 제출하고, 심사에 통과하면 제작비를 지원했다. 그 지원금으로 12팀은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직접 발명품을 제작, 완성해 대결을 해야 했다. 그래서 출연자들은 설계와 제작에 상대적으로 능통한 각 대학교 기계공학과나 발명동아리 학생들이었다. 전국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사전 미팅 1회를 제외하면 제작기간 동안 우리가 만나는 일은 없었다. 오직 통화로 매일 신뢰를 돈독히 쌓았다. 나는 팀장을 독려하고, 팀장은 팀원들을 다독이면서 그들과 나는 한 편의 녹화를 위해 한달을 꼬박 달렸다.      


        고백하자면 그때 나는 일반인 아니, 시청자와 작가의 경계선에서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었다. TV에서만 보던 연예인과 한 공간에서 같이 일한다는 사실이 현실감 없을 때였다. 고작 몇 달 전만 해도 내가 TV에서 보던 사람들인데 지금은 나를 작가로 대하는 그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내가 섭외한 출연자들에게 신경을 더 써야 했음에도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눈과 귀가 그들보다 MC를 맡고 있었던 연예인들에게 더 쏠렸다.     


        출연자들과 나, 우리의 두 번째 만남은 녹화 당일이었다. 녹화 날에 내가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출연자들의 점심 도시락을 챙기는 것. 끼니를 챙기기 위해 뛰어다녔다. 하지만 온전히 내 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만은 아니었다. 제작진과 MC들이 함께 밥을 먹는데, 나도 ‘작가로서’ 그 자리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빨리 그들에게 도시락 전달을 끝내야만 했다. 출연자들 사이사이를 후다닥 뛰어다니며 식사 여부, 도시락 필요 개수를 체크했고, 한 명도 빠짐없이 도시락을 전달했다. 이제 바라던 대로 돌아가서 MC들과 밥을 먹으면 됐다. 맛있게 드시라는 말을 남기고 미련 없이 돌아서는 나를 향해 누군가 외쳤다.   


- 역시 저희 챙겨주는 건 현진 작가님밖에 없어요!

  고맙습니다!     


        순간 멍했다. 부리나케 뛰어다니면서 지금 내가 챙기고 있는 게 나의 출연자들이 맞는 건가. 내 사심이 아니고?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나는 자신 있게 답하지 못했다.      


        도시락 전달 미션을 해치우고 재빨리 돌아가려 했던 곳을 바라봤다. MC, 제작진, 여러 스태프들이 모여 복작복작 아주 화기애애했다. 다시 나의 출연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팀별로 떨어져 5명씩 옹기종기 도시락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냥 내가 없어도 될 곳, 조금이라도 내가 필요한 곳. 그 중간에 서서 한참을 있었다.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는 듯, 시간이 잠시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 하는 방송 출연에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질 이곳에서 그들에게는 서로 말고는 나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내 섭외 전화 한 통을 믿고 여기까지 온 그들. 그들은 오직 이 순간에 집중하고 있는데, 정작 내 마음은 그들에게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어버리고만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선의에서 나온 행동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선의로만 받아들일 때가 종종 있었다. 한때는 내가 그들을 속이고 있는 건지, 그냥 그들이 속아버린 건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때마다 내 진심이 그게 다가 아니라고 항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 설득을 무시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런 내 모습까지 겸손하고, 솔직한 거라고 감쌌다. 나는, 나를 끝없이 좋게만 오해하는 그들 앞에서 매번 도망치고 싶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그들과 나의 실제적인 마음의 간극이 좁혀질 것 같았다. 실은 그 편이 불편한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많든 적든, 지금까지 나에게 ‘좋은 사람의 모습’이 남아있다면 그건 다 그들 때문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고맙다’고 했던 그 말. 그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