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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Jan 13. 2021

내 진심은 '돈'에 반응한다.

        생각보다 상대방을 많이 좋아하고 있구나라고 느껴지는 순간이나, 생각만큼 내 진심이 크지 않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의 경우 보통 내가 써야 하는 시간과 돈, 두 가지로 그 사실을 파악하게 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시간과 돈은 웬만하면 비슷한 행동력을 보인다. 내가 돈을 더 많이 쓰거나, 혼자만 쓰게 되더라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라면 내 시간 역시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내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감당해야 하는 돈의 크기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돈이 아깝지 않은 사람’보다 ‘시간이 아깝지 않은 사람’에게 마음의 기복이 있기 때문에 나의 씀씀이는 변덕이 심하다. 오롯이 나 혼자 책임질 수도, 1/N조차도 쏙 빠져나가고 싶을 때도 있다.  


        그렇다. 나는 시간보다는 돈에 진심이 반응하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통해 내 진심 그리고 상대방의 진심을 깨닫곤 했다. 바로 ‘밥값’이었다. 솔직히 나뿐 아니라 ‘밥 사 주는 게 아까운 사람’ 적어도 한 명쯤은 있지 않나? 고백하자면 과거의 나는 아주 X100 많았다. 그 돈으로 해결해야 될 일, 그러니까 월세도 내야 했고, 생활비도 써야 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아직은 미천한 작가 경력에 벌이도 시원찮았던, 심지어 프로그램 종영으로 당분간 백수로 살게 된 어느 날. 그녀가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며 내가 사는 동네로 찾아왔다. 아무리 백수 시즌, 긴축 재정 중이라 할지라도 동네에 찾아온 손님 대접은 내가 해야 하는 게 도리. 같이 밥을 먹고 계산하려는데 그녀가 한사코 말렸다. 나는 못 이기는 척 잘 먹었다는 말로 순순히 물러섰다.     


- 내가 사야 되는데...

- 됐어! 너는 나 백수 되면 밥 안 사 줄 거야?      


        ‘당연히 아니지’라고 대답했지만 묻기 전까지는 솔직히 생각해 본 적 없는 경우의 수였다. 그녀를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지만 나는 그저 빨리 헤어지고 싶었다. 그녀와 달랐던 나의 계산적인 마음이 들킬까 봐 두려워서였다.     


        작가 지망생 시절, 방송 아카데미 매점에는 커피 자판기가 있었다. 얼마였지? 200원이었나, 300원이었나. 강의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같은 반 친구였던 A를 만났다. 평소에는 거의 이야기해 본 적이 없던 아이였다. 그래서 딱히 할 말이 없었던 우리는 커피를 마시기로 했고, 자연스럽게 커피 마시자고 먼저 말을 꺼낸 내가 샀다. 약속하지 않았지만 다음 날 같은 시간, 우린 또 만났다. 어제와 같은 루틴. 나란히 커피 자판기 앞에 섰다. ‘어제는 내가 샀으니, 오늘은 A가 사겠지’라고 생각했던 건 내 욕심이었을까. 고작 몇 초의 시간이지만 A의 요지부동이 느껴졌고, 그 순간을 못 참고 동전을 넣은 건 나였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서울깍쟁이’인가. 논리는 딱히 없었다. 단지 나는 지방러였고, A는 서울 토박이라는 차이에서 인과관계를 찾았을 뿐. 내가 커피를 내밀자, A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아마도 A에게 나는, 시간을 쓸 수는 있지만 돈을 쓰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었겠지. 고작 몇백 원이라 할지라도. 그때 A가 고맙다는 말은 했던가? 아니면 내가 기억을 삭제한 건가? 아마 했다고 해도, 그 말을 수납할 기억의 공간은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는 100원도 손해 보지 않고 살겠다는 결심만이 머릿속에 가득했으니까. 다음 날도 우린 만났지만 나는 A에게 커피 마시자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A도 마찬가지였다.


        지하철역까지 그녀를 바래다주던 거리에서 ‘손해 보지 않겠다’ 던 내 결심이 무너지고 있었다. 굳이 내가 사는 동네까지 와서 시간과 돈을 쓰면서까지 내게 베풀어준 그 ‘한 끼’ 때문에. 나 스스로가 참 웃겼던 건, 몇 백 원으로 남의 마음을 평가했으면서 정작 나는 내 마음만큼 남들에게 돈을 쓰지 않았다는 것. 1/N의 몫으로 염치를 차리는 딱 그만큼에서 마음도, 돈도 결코 무리하지 않았다.     


- 너는 나 백수 되면 밥 안 사 줄 거야?      


        이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나도 그녀처럼 돈을 손해 보지 않는 사람보다는 마음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때부터 내 마음과 돈은 같이 움직였다. 진심을 쓰는 일인 만큼 모두에게 공평할 수는 없었고, 예외는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짰고, 누군가에게는 관대했다. 어떤 일에는 통 크게 질렀고, 어떤 부분에서는 여간해서 돈을 쓰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알려 들지 않아도 내 마음의 깊이를 알 수밖에 없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내 사람들에게 잘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게 나이자, 내 진심이었기에 속물근성이라고 해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나의 속물근성이 활개를 칠수록 사람들이 나에게 할애하는 모든 것이 돈으로 살 수 없는 '마음 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고마웠다. 그리고 되도록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 했다. ‘심행일치’를 하다 보면 아주 가끔은 통장이 텅장이 될 때도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돈을 손해 보지 않기로 결심했던 때보다 마음만은 더 여유로웠다.     


         그녀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겠지만 그녀로 인해 중요한 건 금액이 아니라 태도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지금의 내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고, 지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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