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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Nov 02. 2020

누군가의 내일을 담보로 하는 고객의 자격.

나의 절친 메이 언니와 뽈 언니, 두 사람은 4년 넘게 써온 핸드폰과 지난주 토요일에 작별했다. 그리고 나는 그 역사적인 순간을 직관(!)했다. 우리 세 사람이 S사 디지털 매장을 방문한 지 무려 3시간 여 만에 단행된 이별이었다. 우리 중 누구도 그 정도로 시간이 걸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시간관념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1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어머! 저희 때문에 다른 분 상담 못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지금은 대기 손님 안 계세요 편하게 계세요’


그는 온화한 미소와 다정한 말투로 우리를 안심시켰다. 그나마 긴 상담 끝에 ‘다음에 올게요’가 아닌 두 사람 모두, 핸드폰을 바꿨으므로 조금은 덜 미안한(!) 마무리였다. 그러나 ‘진상 고객’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내심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그건 아마도 1시간 30분 전, 매장에서 본 한 남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언니들이 확실하게 바꾸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매장을 방문한 건 아니었다. 그냥 한번 보기나 하자. 그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던지 큰 규모의 매장임에도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기 일보직전처럼 느껴졌다. 30분 정도 우리끼리 둘러보다가 상담을 받으려고 직원을 부르니 번호표를 뽑아야 된다고 했다. 아, 그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번호표를 뽑을 걸. 뒤늦게 뽑은 번호는 117. 우리 앞에 3-4팀이 있는 상황이었다. 잠자코 이 상품 저 상품 보고, 또 보면서 우리 차례를 기다렸다. 그때였다.


 아니, 고객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보고 있던 노트북에서 시선을 옮겨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아내일 수도 있는 또래의 여성과 함께 온 중년 남성이 직원을 향해 불쾌함을 담아 고함치고 있었다.


 ‘고객을 20-30분 넘게 서서 기다리라는 데가 어디 있어!’


기약 없는 대기 시간을 못 견디고 나가기로 결심하고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남자는 계속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함께 온 여자가 그를 말리지 않았다면 상황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다행히 남자는 못 이긴 척 여자에게 등 떠밀려 매장을 나갔다. 그를 향해 직원들은 다만 ‘고객님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정중하게 말할 뿐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기다린 시간은 2-30분이었다. 2시간도 아니고 2-30분 기다려도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백번 양보해서 짜증이야 날 수도 있겠지만 이게 화낼 일인가 싶었다. 그의 불만이 더 와 닿지 않았던 것은 자기 순서에 누군가 새치기를 해서 번호표가 무용지물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기 생각보다 순서가 빨리 돌아오지 않은 것뿐, 상담은 번호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고객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라는 말에 설득력을 줄만한 객관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도 고객이지만 직원들이 더 안쓰러워 보였던 것은 우리를 대하던 그들의 태도를 보고 나서였다.


그가 사라지자 금세 소란은 잠재워졌고, 드디어 우리 차례도 돌아왔다. 통신사가 다른 핸드폰 2대에 대한 기종 상담, 개통, 데이터 백업까지. 직원우리에게 집중한 시간은  어림잡아 2시간이었다. 그들은 사소한 우리의 질문도 놓치는 것 없이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덕분에 망설임을 접고 후련하게 핸드폰 교체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에 하나, 고민이 깊어진 우리 때문에 대기 시간이 길어져 다른 고객의 불만이 나왔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과연 그의 말처럼 직원들이 고객을 함부로 했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우리의 상담 중에도 다른 상담 역시 문제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내가 진행 상황을 확인했을 때 번호는 119번에서 멈춰있었다. 대기 고객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매장을 나서려는데, 직원이 우리에게 당부했다. 고객 서비스 설문조사를 할 때 가능하면 꼭 '만점'을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하고도 부탁을 해야 되는 그 상황이 어쩐지 씁쓸했다. 실은 그들의 부탁이 아니었더라도 내가 무조건(!) '만점'을 준지는 꽤 오래된 일이다.


아주 오래전. 고객 서비스 평점에 대부분 만점을 주고도 정확한 항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하나를 8점인가, 9점을 준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우연히 한 시사 고발 프로그램 <어느 서비스 센터 기사의 죽음> 편을 보게 됐다. 고객 평점이 그들의 인사 고가에 반영이 될 거라 생각은 했지만 '만점'이 아니면 의미 없는 점수가 될 줄은 몰랐다.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나처럼 만점을 주지 않은 고객의 그 점수 때문에 재계약은 불발됐고,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돌아가신 기사님이 내가 만점을 안 준 기사님과 동일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죄책감을 피할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나 때문에 그런 일이 또 생기는 것은 아닐까 며칠은 속앓이를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서로가 만점 때문에 불안해하는 이 제도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결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 제도 때문에 고객 서비스가 좋아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당근 줄 생각을 안 하고, 채찍으로만 쓰려고 할까. 그것도 누군가의 내일을 담보로.


부당함은 당연히 짚고 넘어가야 하고 따질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직 고객에게만 주어지는 자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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