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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Dec 03. 2020

타인의 사랑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

공감의 조건!

         아주 오래전, 절친의 남자 친구를 욕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일로 나는 친구에게 절교를 당할 뻔했다.   

          우리에게 위기가 찾아온 그날은 화이트데이. 남자 친구와 있어야 할 시간에 그녀는 싱글인 나와 함께였다. 사랑보다는 ‘우정’이 먼저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눈치 없이 내가 그녀와 나의 우정을 시험한 것도 아니었다. 누가 뭐래도 그날만큼은 사랑 우선주의인 날. 커플과 싱글, 우리의 극명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혼자여야 하는 씁쓸한 현실 때문에 우리는 만나야 했다.     


        나야, 싱글이니 그렇다 쳐도 남자 친구 있는 그녀가 혼자인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물론 피치 못할 사정이야 있을 수는 있다. 그렇다면 다른 날 챙길 수도 있고, 못 만나는 게 아쉽지만 전화 한 통이나 문자로도 마음을 충분히 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남자 친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한 달 전 밸런타인데이가 떠올랐다. 그와 연인이 되고 맞는 첫 번째 커플 기념일. 오직 그를 위한 하나뿐인 수제 초콜릿을 주문 제작하고, 선물도 준비한 그녀였다.  

   

        그런데 하필 퇴근을 몇 시간 앞두고, 갑자기 그녀가 수습해야 하는 업무가 생겨버렸다. 약속 취소를 할 수도 있었지만 남자 친구를 실망시킬 수 없었던 그녀는 서프라이즈 이벤트로 급하게 변경했다. 퀵 기사님을 선택하는 게 여러모로 쉬웠지만 친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시간이 되는 다른 친구들을 수소문해서 케이크 픽업을 부탁하고, 선물까지 챙겨 친구들 편으로 남자 친구에게 전달했다. 그러니 내 친구의 미안함과 정성을 그가 모를 리는 없었다. 그런데 그는 그녀를 외면하고 있었다. 그것도 화이트 데이에.     


        아무리 절친이라도 연인 사이의 일을 내가 다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다. 또 한 달 사이에 둘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아 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연의 종지부를 찍은 게 아니라면 연인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속상함이 나에게는 분노가 되어 내 마음을 지배했다. 자제력을 상실한 나는 그 마음을 꾹꾹 눌러 담지 못하고 급기야 폭주했다. 이놈 저놈, 상욕만 안 했을 뿐 남자 친구 욕을 무제한으로 쏟아냈다. 그때였다.     


- 네가 내 남자 친구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그래?     


        그 말을 남긴 채,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 순간, 그녀가 이 모든 사달을 만든 남자 친구가 아닌 나에게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한 나는 덩그러니 혼자 남겨졌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 일은 나로 하여금 그녀에게 서운함을 가지게 했다. 

    

        때로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그저 공감해주고, 말없이 들어주는 게 전부여도 된다. 분명히 머리로는 그게 됐는데... 어쩌다 공감의 추가 균형을 잃어버릴 때, 브레이크가 제대로 밟히지 않았다. 어느 순간 일방적으로 내 사람들의 편을 들고 있거나 ‘굳이 내가’ 관계를 심판하고자 했었다. 그 결과 내 사람들은 착하고 좋은 사람. 상대방은 나쁜 사람이 되곤 했다. 분명 악의는 아니었다. 나는 그것이 친구라면 당연히 해야 되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훗날 알게 됐다. 적어도 내가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남자 친구를 평가할 자격은 없었다. 그 사실을 간과했던 나는 주저 없이 그의 잘못을 따졌고, 그의 마음을 판단했다. 그리고 내 판결(!)에 따라 그는 일순간 나쁜 남자가, 그녀는 말도 안 되게 나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되어버렸다. 그를 사랑했던 그녀의 마음까지 초라하게 만든 것은 그 순간만큼은 남자 친구인 그가 아니라 나였다.     


        자발적 비혼모가 된 방송인 사유리. 그녀는 몇 년 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할 만큼 정말 사랑했던 남자가 있었다고 했다. 그와 빨리 결혼해서 아기를 갖고 싶었지만 그는 싫다고 했고 그래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단다. 이 사실을 그녀의 엄마에게 털어놨을 때 ‘아기를 갖고 싶지 않거나 결혼하기 싫은 사람한테 아기를 갖자고 말하는 건 성폭력’이라고 했다는 사유리 엄마의 말은 나에게 좋은 의미로 큰 충격이었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말했을까. 사랑의 결말이 반드시 결혼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몇 년이나 이별과 사귐을 반복하면서도 끝까지 바뀌지 않았던 남자의 마음은 생각할수록 아프게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여지없는 그의 선택 때문에 상처 입은 여자의 마음을 더 걱정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또다시 그날처럼 책임지기 싫은 거라던가, 덜 사랑했다는 말로 그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도 몰랐다.  

   

        하지만 끝내 같은 마음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지나온 모든 순간이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끝까지 함께 가고자 하는 방법이 서로 달랐을 뿐. 그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저 달라서, 이별한 것뿐이다.  

   

 아픈 이별이었다고 해서 아름다웠던 사랑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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