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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May 14. 2021

나도 엄마처럼, 언젠가 노인이 될 ‘지금은 젊은 사람’

        엄마의 생활패턴은 내 생각보다 더 촘촘하고 매우 일정한 편이다. 고백하자면 함께 살 때는 몰랐다. 1N 년 넘게 따로 살게 되면서 본가를 방문(!)할 때마다 엄마를 관찰하며 알게 된 사실이다. 이를테면 엄마가 일찍 일어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몇 시에 일어나는지는 몰랐다. 내가 하루를 시작했을 때, 엄마는 늘 깨어 있었으니까.      


        평소에 엄마 아빠는 따로 잔다. 그럼에도 엄마는 내가 머무는 동안만큼은 나와 같이 자기를 원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한 적도 있다. 함께 할 수 없는 가장 큰 걸림돌은 엄마의 취침시간 9시가 되면 ‘나도’ 무조건 취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TV 시청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시간을 대부분 어겼고, 잠귀가 밝은 엄마는 그때마다 깼다. 또 피곤할 때면 나도 모르게 이를 가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나를 깨우고 ‘너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다’와 같은 한밤중의 잔소리가 반복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엄마는 나의 거부 취지를 이해하면서도 동침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긴 고작해야 일 년에 대여섯 번 정도 보는 우린데, ‘그게 뭐라고’ 싶었다. 나는 반항을 멈추고, 엄마의 루틴에 나를 맞췄다. 그렇게 해서 함께 살 때도 몰랐던 기상부터 취침에 이르는 엄마의 하루를 알게 됐다.      


        엄마는 보통 아침(!) 6시 30분 전후로 깬다. 오로지 알람 소리에 의지해 기상하는 나와는 다르게 엄마에게 기상 알람은 따로 필요 없었다. 언제나 비슷한 시간에 아침을 맞았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라디오를 켜는 것. 따로 주파수는 건드리지 않는 걸 보니 고정된 지 한참이 된 것 같았다. 한 가지 평소와 다른 것은 틀자마자 나 때문에 볼륨을 낮춘다는 것. 아마도 내가 떠나는 며칠 후에야 볼륨은 원래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첫 볼륨에 나는 잠을 깼지만 그대로 눈 감은 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소리로 라디오와 엄마를 듣는다. 엄마는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맨손 체조를 시작한다. 엄마와 자주 보지는 못해도 통화는 매일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향후 3일 정도의 날씨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줬다. 엄마의 정보원이 다름 아닌 라디오 아침 뉴스였다는 사실도, 매일 듣던 라디오를 내가 옆에 잠들어 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자제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도 몇 년이 채 안 된다.     


        엄마의 아침 식사 준비는 내가 아닌 <인간 극장>이 함께 한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방에서 나왔을 때는 대충 ‘따라라라~ 따라라라~’ 모두가 다 아는 프로그램 엔딩 음악이 흐를 때가 많다. 식사는 <아침 마당>에서 시작하지만 5분에서 10분 후 채널은 바뀐다. 일일 아침 드라마로. 내가 보지 않는 드라마지만 사실 5분 정도만 보면 내용은 대충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엄마는 나에게 스토리를 설명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뭐 그래 봐야 아무리 드라마가 바뀌어도 ‘저놈(년)이 나쁜 놈이지.’ ‘이 둘이 다시 사랑하게 될 거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알면서도 모른 척, 듣고 마는 것은 결말이 어찌 될지 뻔히 알면서도 늘 처음처럼 재미있게 보는 엄마에 대한 내 나름의 아주 작은 효도였다.      


        매일 하는 전화로 파악한 엄마의 낮 일정은 주로 병원 정기 검진, 친구들 모임, 은행 업무, 텃밭 가꾸기, 산책, 운동, ‘우리 영웅이’로 시작되는 엄마의 덕후 생활 등. 그때그때 달랐지만 내가 머무는 동안은 나와 함께 산책하는 것을 가장 하고 싶어 했다. 우리는 오전, 오후 각 한 시간씩, 손을 잡고 걸었다. 엄마와 나의 산책 코스는 크게 세 가지였다. 아파트 단지 바로 옆 작은 하천이 흐르는 산책로나 두 블록 떨어진 아파트 뒷길에 있는 큰 연못 산책로, 마지막으로 지하철 역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도는 산책 코스. 이날은 연못 산책로를 택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온한 산책이었다. 어떤 문구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즐비한 동네. 단지를 넘고, 코너를 돌아 매번 가던 길로 걸었다. 또다시 코너를  돌아야 할 차례. 90도로 꺾자마자 마주한 70m 정도 이어지는 직선 길 끝자락 정면에는 처음 보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한 걸음씩 다가가자 글자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노인 요양 병원 건설을 당장 중단하라!


        플래카드 뒤편으로 요구대로 공사를 중단한 건지, 오늘은 쉬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수선한 공터가 눈에 들어왔다. 혼자였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 텐데, 엄마와 함께였던 그 순간만큼은 그 플래카드가 너무 거슬렸다. 하필(!) 어제가 어버이날인 것도 신경 쓰였고, 엄마의 사촌 언니 그리니까 이모가 요양 병원에 입원한 지 1년이 다 되어 가던 것도 마음에 걸렸다.


        분명 처음부터 한 번도 엄마와 나, 우리를 겨냥한 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이라는 단어를 발견한 순간, 남 일이 될 수가 없었다. 굳이 나누자면 엄마는 노인의 나이에 속했고, 나도 엄마처럼 언젠가 노인이 될 ‘지금은 젊은 사람’에 불과했다. 제발 엄마가 안 봤으면 했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잘 보이는 위치에서 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는 별말이 없었다. 그래도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70m의 길은 그날따라 좀처럼 줄어들 줄 몰랐다.      


        플래카드가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엄마가 가만히 물었다.      


노인 요양 병원이 지어지면
뭐가 안 좋은 거야?


        속상한 것도, 서운한 기색도 없었다. 말 그대로 가만히 물었다. 아... 역시, 나만 신경 쓰였던 게 아니었구나. 엄마는 나에게 묻기 전에 그 문구를 몇 번이나 곱씹어 봤을까. 그리고 나에게 물어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당연히 이유가 있으니 반대하겠지만 당사자가 아닌 나로서는 도저히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나는 다른 편에 서 있는 당사자였다. 나의 지금을 위해 한평생을 바친 노년의 부모님이 있는 당사자.

     

- 응?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설사 이유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대답 대신 영화 <은교>에서 들었던 이적요(박해일)의 대사만 떠오를 뿐이었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다행히 연못 산책로를 한 바퀴 다 도는 동안 엄마는 노인에서 다시 나의 엄마로 돌아왔다. 우린 매일 그랬듯, 집에 도착하면 <6시 내 고향>과 함께 저녁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방송국 채널을 돌아가며 저녁 일일 드라마 세 개를 보고 난 밤 9시. 함께 잠을 청할 것이다. 어쩌면 또 혼나겠지. 나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다고. 그래도 괜찮다. 나는 엄마가 이대로 나의 엄마로만 계속 있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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