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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Jul 21. 2021

브런치, 글 지구력의 값.

나의 브런치 1년.

        김신회 작가의 <보노보노처럼 살아서 다행이야> 책에서 ‘월급은 지구력의 값’이라는 문장을 읽고, 정말 무릎을 탁! 쳤다. 이보다 지금 나의 경제력을 설명할 말은 없다고. 그러나 나의 다소 초라한 경제력이 내 지구력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나는 지구력이 넘친다. 1N 년 넘게 한 우물을 파고 있고, 버텼다. 그런 데 왜? 단지 내 지구력에 비해 통장에 찍히는 돈이 대범하지 못하고 소심할 뿐이다,라고 말해본다.     


        오늘은 브런치 작가로 데뷔(?)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1년의 소회를 감히 말하자면, ‘브런치는 글 지구력의 값’이었다는 것. 글의 개수는 들쑥날쑥했지만 매주 1개 이상올려서  발행한 글이 200개가 넘는다. 시작할 때는 내가 이 정도로 버틸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꾸준히 써온 것에 비해 브런치 성과도 내 수입 통장처럼 눈부시다고 할 수는 없다. 문장력이 출중한 것도 아니고, 조회수나 라이킷이 폭발하는 편도 아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구독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구독자들님께 그저 감사할 뿐이다.     


        솔직히 한 번에 브런치 작가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보기 좋게 떨어졌다. 당신들이 보기에는 내 글이 몇 점짜리 글이라서 90점 이상만 글을 발행할 수 있는 브런치에는 부적합하다고 말해주면 속은 상해도 답답하지는 않지. 이건 그냥 ‘응. 넌 안돼!’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 많이 겪어보지도 않고 고작 글  세 개로 가능성을 부정당하고 짓밟힌 느낌이었달까.     


        자존심이 상해서 이까짓 것(!) 안 하려고 했다. 그런데 오기가 생겼다. 심기일전 도전해서 두 번째에 합격했다. 처음에는 떨어지고, 두 번째는 왜 붙었을까? 답은 심기일전에 있다. 만만하게 생각하고 도전한 오만했던 처음과 이번에는 꼭 붙고 말겠다는 오기로 준비한 두 번째의 차이는 그것이었다. 지금도 가끔 브런치 합격 팁 글을 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강조 X100) 그 팁을 크게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이 제안하는 방식과는 거의 다르게 썼다. 그렇다고 내가 글을 아주 잘 쓰냐. 지금 읽으면서 느꼈다시피 그건 더더욱 아니다.      


        작가님을 소개해 달라는 곳에는 아프고, 힘들고 상처 받을 때마다 일기를 쓴 사람이라고 썼다. 브런치 활동 계획에는 되도록 목차로 정리해달라고 하는데, 지금도 주로 일기를 쓰지만 앞으로도 일기를 쓸 거라서 목차로 정리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대충 과거의 일, 현재의 일, 미래의 일 이렇게 쓸 수는 없으니 따로 목차 없이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날들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고 썼던 것 같다. 그리고 첨부한 글 3개 모두 일기였다. 그러니까 나는 ‘일기’로 키워드를 잡고, 나를 일기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쓰고 싶은 글도 일기고, 제출한 글도 일기였다. 첫 도전에는 이런 이야기, 저런 주제 다 써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제출한 글은 그것과 전혀 상관없는 글이었다. 한 마디로 일관성 제로에 고민도 노력도 없었다. 떨어졌다는 사실에 불쾌했지만 합격하고 보니 왜 떨어졌는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브런치의 시작과 지금의 가장 다른 점을 꼽으라면 ‘내가 글을 (계속) 쓰는 이유’라고 말하겠다. 처음에는 라이킷도 많이 받고, 구독자도 쭉쭉~ 늘어날 거라고 단꿈을 꾸었다.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될 거라 기대했지만 브런치는 그야말로 냉정한 곳이었다. 구독자 얻기는 고사하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브런치 메인에 소개되는 작가님들은 구독자 수도 많고, 라이킷도 수십, 수백 개인데, 내 글은 무관심 정도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모르는 수준이었다. 브런치를 기업에 비유하자면 대기업(!)은 아예 꿈도 못 꾸고, 중소기업도 여간해서는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 브런치는 머잖아 발길 닿지 않는 골목 가게처럼 이곳저곳 전전하다가 폐업을 하게 될 거라 생각하니, 의욕이 한순간에 푹! 꺾여버렸다.  


        그때가 내 ‘글 지구력’에 가장 큰 위기였다. 글을 쓰는 나보다,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더 마음 주었던 때. 그 마음을 결국 나에게 돌리지 못하고 계속 숫자에 집착했다면 벌써 그만뒀으리라.

     

        그만두지 못한 이유가 혹시나 하는 미련 때문은 아니었다.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브런치에 낙심해 있는 나에게 물었다. 글을 쓰는 이유가 남들에게 받는 인정이 전부냐고. 그렇다면 당장 접으라고. 솔직히 너도 알지 않느냐고. 그저 남들보다 글 쓰는 걸 더 좋아할 뿐, 네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맞다.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했다. 잘 써서가 아니라 좋아서 시작한 거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잘 쓰는 사람대접까지 바랐던 거다.      


        허황된 꿈을 버리니 그 자리에 다른 것이 채워졌다. ‘발견’이었다. 글을 쓰면서 수없이 나에게 물어야 했다. 선택에 대한 이유를, 후회에 대한 원인을, 자책에 대한 까닭을, 잘못에 대한 원인을. 그렇게 나에게 물으며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됐고, 내가 놓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알았다. ‘발견’ 덕분에 새로운 다짐도 생겼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또다시 후회하지는 말자고. 지금 내가 글을 계속 쓰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브런치 시작 287일째인 5월 3일 구독자 100명이 됐다. 100명은 브런치를 시작할 때 내가 이루고픈 목표였다. 욕심을 버렸으니까 덤덤했겠다고? 천만에. 기대까지 버린 것은 아니어서 엄청 좋았다. 이런 날이 안 올 것만 같았는데 나에게도 오다니! 나는 이게 다 ‘뛰어난 문장력의 값’이 아니라 부족한 줄 알지만 나를 위해 꿋꿋하게 쓴, ‘글 지구력의 값’이라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이 지구력이 유지될까. 글을 쓰면서 얻는 위로와 이해가 있다고 느낀다. 글을 씀으로써 가능한 성장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부디 오랫동안 글 지구력이 머물기를 원하지만 무조건 꾸역꾸역 쓰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거니까. 마음을 비웠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라이킷을 보면 설레고, 좋은 건, 내가 좋아하는 걸 좋다고 해주니까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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