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첫 번째 전화.
‘오 마이 갓! 전화다! 누구지? 누굴까?’
전화가 울리는데 안 받고 뭐 하냐고? 받기는 받아야 하는데... 안 받고 싶은 맘, 당신 뭔지 알아? 정말이지 이상하리만치 전화받기가 너무 싫어. 실은 무서워. 심지어 기다리던 전화이거나, 꼭 받아야 하는 전화일 때조차도 받는 걸 주저하고만 있어. 어느 정도냐면 전화벨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일은 셀 수도 없이 많고, 심할 땐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도 생길 정도야. 물론 핸드폰이 비싸니까 차마 던지지는 못하지.... 하하.
그래서 나름 요령이 생겼어. 전화벨이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으면 좋겠다고 바랄 때면 그냥 무음으로 해놓는단 말이야. 근데 그러고 나서는 전화가 왔나 안 왔나, 시시때때로 확인하는 건 뭐람?! 하아... 이 정도로 불안해할 거면 그냥 받고 말지 싶지? 내 말이! 당신 말이 맞아. 완전 인정. 나도 이런 내가 정말 바보 같아. 나는 언제부터 전화가 두려웠던 걸까. 정확히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는데, 전화벨이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오는 전화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는 걸 알아챘지.
가장 큰 특징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은 순간을 흐트러뜨리는 전화라는 거야. 보통 그럴 때는 집이든, 여행지이든, 부모님 집이든, 내가 계획한 대로 나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을 때라서 나 자체가 방해 금지 모드를 작동하고 있단 말이지. 근데 걸려오는 전화는 그걸 일순간 해제시켜 버려. 그러면 방금까지 무방비 상태로 쉬고 있던 뇌가, 갑자기 부산스러워진다? 왜 전화했을까, 혹시 그거 때문인가? 그러면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나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하는 거야. 내가 생각할 때, 이게 마음의 준비 운동인 거 같아.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기도록 만드는 마음의 시동 말이야. 잠시 동안 혼자서 이런저런 시뮬레이션을 하다가 전화를 받곤 해.
마음의 준비 운동을 마쳤는데도 불구하고 도저히 받고 싶은 용기가 안 생기면 어쩔 수 없이 그 전화는 부재중 전화로 만들어. 언제고 마음에 시동이 걸리면 내 쪽에서 전화하는 식이야. 아,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그럴 때도 대게는 30분에서 1시간 내로는 반드시 회신을 해. 그럼 내가 거는 전화는 괜찮냐고? 걸려오는 전화보다야 거는 전화가 편한 건 맞아. 그나마 내 의지대로, 예측 범위 내에서 하는 거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렵게 느껴지는 건 마찬가지야.
특히 내가 부탁을 해야 하고, 그로 인해 거절당할 가능성이 있는 전화가 그런 경우에 속해. 근데 이건 직업병이야. 방송 프로그램 대부분은 섭외가 반이거나 그 이상일 때도 많거든.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그야말로 반반의 확률 싸움. 근데 문제는 내가, 행복회로 가동률보다 아니라 부정회로 가동률이 더 쉬운 사람이라는 거야. 섭외에 성공할 경우보다 안 됐을 경우를 먼저 가정한다는 거지. 그러니 마음이 절실하다 못해 얼마나 불안하겠어. 실패하면 안 되는데 실패할 것 같다고 생각하고 마는 나니까.
뭐, 물론 나라는 사람이 애초부터 세팅이 그런 탓도 있겠지만 막내 작가 시절에 섭외가 안 됐을 때 생긴 트라우마이기도 하지.
- 네가 뭐 잘못 말한 거 아냐?
- 뭐라고 했는데 안 하겠대?
- 섭외 안 되면 알아서 해
섭외가 안 되는 게 다 내 탓 이래. 그러니 섭외에 실패할 때면 나는 죽었다, 또 혼나겠구나,라는 생각부터 들었지. 점점 시간이 지나니까, 섭외 전화 자체가 아예 하기 싫어지더라고. 노이로제에 걸려버린 거지. 다행히 후에 바로 다른 선배를 만나서 이 증상은 많이 좋아지기는 했어. 우리가 계획한 대로 안 돼도 그 선배는 한 번도 내 탓이라고 말한 적이 없었거든.
- 본인이 하기 싫다는 데
부처님 하느님이 나서도 안 되지.
우리 리스트에 또 누구 있었지?
다른 사람 해보면 되지. 괜찮아.
실패해도 되니까, 또 다른 대안을 찾으면 되니까 늘 괜찮다고 했어. 나도 자연스레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게 되더라고. 괜찮다. 괜찮다.... 그 후로는 섭외 전화가 예전만큼 무섭지는 않았어. 근데 반대로 내가 거절을 해야 하는 상황도 나는 너무 힘든 거야. 그러니까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종종 전화받지 않는 걸 선택한 걸지도 몰라.
그게 언제냐고? 글쎄... 예를 들면, 왜 당신은 그럴 때 없어?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라고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 말이야, 막 신나고 좋고 설레기만 해? 나는 갑작스러운 일정이 생기는 게 너무 힘들다? 그 사람이나, 그 만남 그 자체가 싫은 건 절대 아니야. 다만 시동을 꺼놓았던 나에게 다시 시동을 거는 일이 너무 힘들어. 에이~ 마음만 먹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당신 그런 말 하지 마. 있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마음먹는 일이라고 생각해. 내 마음인데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안 그래?
이런 나한테 가장 어이없는 게 뭐냐면 막상 ‘시작’만 하면 되게 잘한다는 거야. 나조차도 그랬던 사람이라는 게 거짓말 같이 느껴질 정도로 아무 문제 없이 말이야.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전화 공포증이 있다거나 내향형의 사람이라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해. 이런 내가 이해돼, 당신은?
아냐. 이해 못 하는 게 당연해. 세상 사람들이 다 나 같지는 않을 테니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때로는 즐길 수 없다는 확신이 들면 일단 피할 수 있을 때까지 피해야 해. 그리고 지금이 그때이고.
허얼... 근데 카톡 왔다. 이걸 읽어, 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