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라(자)고’ 싶은 카톡을 받게 될 때면 말이야, 숨이 턱 막혀. 무슨 말을,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무시하면 되지 않냐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야. 그런데 그게 안 돼. 받았으니까 꼭 답을 해줘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조종한단 말이지. 다른 일을 하다가도 ‘대답해줘야 하는데...’라는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다른 쪽으로 돌려도, 결국 그쪽으로 생각이 흘러. 늪도 아니고 다시 거기로, 또 거기로. 대체로 카톡을 마무리 짓기 전에는 다른 일을 영 못 하겠더라고.
방금 온 카톡이 그런 카톡이냐고? 응... 앞도 뒤도 없이 딱, 한마디.
- 뭐 하냐?
확인하자마자 너무 화가 나는 거야. X라서? 차라리 그게 낫겠다. 솔직히 그 남자랑 나는 전혀 교류가 없다시피 한 관계란 말이야. 그것도 일요일 오후 5시에 무슨 의도로 물어보는지 모르겠는 거지.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이게 메인 질문이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무엇 때문에 이런 미끼 질문을 보내나 싶은 거지. 그럼 상대방에게 물어보지 그랬냐고? 그래, 그러면 되는데... 그런 마음 알아? 대꾸하고 싶지 않은 거. 마음이 비뚤어진 거지. 그래서 다음 톡을 기다렸는데 그냥 그게 다였어. 그냥 읽씹 한 사람이 되기로 했어. 이 남자가 이런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거든.
3년 전인가, 4년 전인가. 갑자기 이런 카톡이 왔어.
- □□이는 어떻게 지내?
내 안부를 물은 거 아니냐고? 천만에. □□은 내 이름이 아니었어. 그래서 처음에는 피싱 카톡으로 생각했어. 카톡 상단에도 <친구로 등록되지 않은 사용자입니다. 금전 요구 등으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하세요>라고 적혀 있었으니까. 프로필 사진도 없고, 대화명은 뭐였더라? 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류의 영화 타이틀이었어. 뭐, 더 볼 것도 없었지. 대화창을 바로 삭제해 버렸어.
그런데 영 찜찜한 거야. 봐봐? 내 카톡 대화명은 내 이름이거든. 내 번호를 저장했다면 이름이 분명 떴을 거잖아. 근데 굳이 이름을 틀려가면서 피싱을 한다는 게 이상한 거야. 혼자 한참을 추리했어. 그러고 보니 그 무렵 초대받은 단톡방이 하나 있었어. 대학교 동기 단톡방. 혹시나 해서 멤버들을 하나하나 확인했지. 역시나 그 방에 있는 사람이었더라고. 나는 멤버들을 따로 저장 안 했는데 아마도 그 사람은 나를 저장한 모양이야. 그제야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겠더라고. 걔가 부른 이름이 내 절친 이름이었거든.
대학교 시절 그가 오래도록 좋아했던 그녀의 이름이 바로 □□였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단톡방에는 없는 친구였지. 그녀 소식을 나를 통해 알고 싶었던 거야.
그래,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서 다짜고짜 딱 필요한 것만 물어볼 수 있지. 근데 내가 황당했던 건, 그와 나 사이에는 그녀가 있었을 뿐 아무것도 없었어. 서로의 연락처도 몰랐고, 공적인 일을 제외하고는 따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을 만큼 서먹한 사이였거든. 그땐 그게 딱히 이상하진 않았어. 당시 그의 세계는 오로지 그녀밖에 없어 보였으니까. 나도 그도 서로를 신경 쓰지 않았어. 그랬던 그가 개인적으로 내게 말을 건 게 그 카톡이 처음이었단 말이야. 아니 처음 말을 걸면서 자기 정체도 안 밝히고, 내 이름도, 내 안부도 아닌 내 친구의 안부만 대뜸 물어본다는 게 너무 이상하지 않아? 내가 예민한 거야?
그런데 또다시 몇 년 만에 말을 걸면서 그날처럼 거두절미, 딱 세 글자만 보낸 거지. 뭐. 하. 냐. 이건 99% 내가 뭐 하는지 궁금해서 보낸 게 아니잖아. 안 그래? 딱히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툭 던지는 안부가 솔직히 황당하다 못해 기분 나쁘더라고. 왜냐하면 나는 상대에게 대답을 들으려면 최소한의 배려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 어떤 카톡이 배려가 부족하냐고?
- 우리 수요일에 만나기로 한 거 금요일에 봐도 되지?
- 너 그 사람이랑 친하잖아. 어떤 사람이야?
- 원래 오늘 미팅 홍대에서 하기로 했었는데
경복궁 역에서 봐요
- 일요일에 시간 되지?
그래, 맞아. 저 질문들에 대답이 어려운 건 아니야. 근데 상대방 입장에서는 대답 이전에 ‘왜’가 궁금한 질문들이란 거지. 또는 '왜'를 알아야 할 수 있는 대답이거나. 나는 이런 대화 방식을 불편 아니다, 불친절하게 느껴. 그래서 내가 먼저 물어볼 때면 꼬박꼬박 배경 설명을 붙인단 말이야.
- 갑자기 촬영 일정이 생겨서 그러는데
수요일 약속을 금요일로 옮길 수 있을까?
- 우리 팀에 이력서를 넣었길래 면접 보러 오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그 사람 어때? 괜찮아?
- 제가 미팅 끝나고 신사동으로 넘어가야 해서
혹시 약속 장소를 같은 3호선 라인인
경복궁역으로 바꿔도 될까요?’
- 공연 티켓 생겼는데 일요일에 시간 돼?
이렇게. 나도 알지. 사람들이 다 나 같지 않다는 거. 이게 내 스타일이듯, 그것이 그들의 스타일이라는 것도 너무 잘 알아. 그래서 그럴 때는 내 쪽에서 ‘왜’라고 다시 물어. 근데... 그 친구한테는 그마저도 하고 싶지 않았어.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 게 가장 컸고, 또 그로 인해 대화가 길어지는 게 싫었달까. 서로의 일상을 단 한 번도 공유한 적 없는 우리였는데, 심지어 휴일 오후 5시에 내 일상을 답해줘야 할 필요성을 조금도 못 느끼겠더라고.
밤 10시, 그에게서 다시 카톡이 왔어.
- 아니다. 건강해라~
이보다 더 간결할 수 없게, 아주 단순 명확하게 말하는데도 도대체 무엇이 기고, 아니라고 말하는 건지. 그냥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게 되는 건지. 몇 번을 읽어보아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 솔직히 읽으면 읽을수록 화가 났어. 그래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그를 끝까지 무시하고 싶었어. 하지만 ‘건강하라’며 나에게 보내는 안녕은 차마 무시되지 않더라. 근데 또 알지? 늦은 밤에 피곤한 카톡 하기 싫은 거. 다음날 출근길에 답을 보냈어. 그냥 내 마음이 편하고 싶었어.
-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건강해라.
이유를 그제야 말해주더라.
- 아니 어제 ○○이랑 한잔 하며 추억 팔이 하다가
연락해 봤어~
○○, 그도 같은 단톡방의 멤버이자 그가 좋아했던 그녀도, 또 다른 나의 절친 중 한 명이었어. 그래, 내 절친들을 좋아했던 두 남자가 술을 먹다가... 뭐, 그 뒤는 더 얘기 안 해도 알겠지?
물론 그 친구가 말한 추억 일부에 나도 (아주~~~~~) 조금은 포함돼 있었겠지. 하지만 대부분 내가 아닌 그녀들이었을 거야. 그러니까 더 그런 생각이 들더라. 만약 내가, 그들이 수년이 지난 오늘까지 가끔씩 추억하는 그녀들이었다면 그렇게 톡을 보냈을까. 아니. 절대 아니었을걸.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겠지. 어쩌면 끝까지 고민하다가 못 보냈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그에게 나는 그저 쉬운 사람이었을까. 단지 아무 사심이 없어서 편한 사람이었을까.
솔직히 이렇게 말할까도 생각했어. 앞으로 말을 할 때는 나한테 했던 말 정확하게 반대로 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결국은 같은 말이라도 ‘○○이랑 한잔 하며 추억팔이하다가 너한테 연락해 봤어~ 잘 지내지? 지금 뭐 하냐?’ 이렇게 말이야. 근데 안 했어. 그날 이후가 그랬듯, 우리 사이에 나눌 이야기가 더는 없을 것이고, 내가 추구하는 화법이 변하지 않듯이 그 친구도 변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그냥 말았어.
나는 언제부턴가 상대가 달라지기를 바라고 기다리는 것보다 내 기대를 빨리 접는 쪽을 택해왔던 것 같아. 대체로 그 편이 더 쉽기도 하고, 내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런 마음의 방향이 절대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건 아니야. 다만 덜 괴롭게 만들어주는 것뿐. 그러다가 더 이상 접어버릴 기대가 없을 때가 오면 주저 없이 인연의 끈을 놓는 게 나더라.
어쩌면 그들에게는 다소 당황스러운 작별이었을 테고, 나로서는 버틸 만큼은 버틴 미련이었다고 한다면 너무 내 변명 같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