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다소 당황스러운 변명.

세 번째 전화

by 현진

- 작가님 잘 지내시죠?


아주 평범하고 흔하디 흔한 안부 문자. 언젠가 내가 했던 프로그램에 섭외한 적이 있는 일반인 출연자한테서 온 거였어. 또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자고 했는데 그 후로는 공통분모가 없었고, 그 약속은 오랫동안 지켜지지 못한 상태였지. 왠지 모르게 문자에서도 엄청난 예의가 느껴지더라고. 아마 안부를 묻는 게 전부가 아니라서 그랬나 봐. 행사 섭외 건으로 그의 지인이 나와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는 연예인을 섭외하고 싶어서 연락처가 필요한 모양이었어. 내 연락처를 지인에게 전달해도 되겠냐는 게 문자를 보낸 가장 중요한 이유 같더라.


솔직히 문자에 대한 반가움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더 컸어. 안부보다 부탁의 의도가 더 큰 문자여서는 아니었어. 그런 전화나 문자는 흔하니까. 나도 섭외 때문에 사람들에게 많이 한 부탁이기도 하고. 다만 내가 느낀 당혹감은 그동안 내가 해왔던 절차와는 전혀 달라서였는데, 내가 그 문자를 받은 건 내 전화번호가 ‘동의 없이’ 그의 지인에게 전달된 후도 아닌, 그의 지인과 이미 통화를 마치고 나서였거든.


내 방식? 내 방식이라... 나는 만약에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번호를 타인에게 넘겨줘야만 해결 가능한 상황이라면 본인에게 의사를 먼저 물어보지. 이러저러한 사정 때문에 그러는데 혹시 전화번호를 알려줘도 괜찮겠냐고 말이야. 하지만 이번 경우는 냉정하게 따져볼 때 반드시 내 번호를 넘겨줘야만 하는 상황도 아니었어. 먼저 나한테 사정을 설명했다면 그의 지인이 굳이 나에게 전화할 필요도 없이, 그가 나에게 양해 문자를 보낼 것도 없이, 그에게 매니저 연락처를 알려줬을 거야. 그랬다면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내 전화번호가 하릴없이 알려지는 일은 없었을 테지.


다짜고짜 내 번호를 알려주고 나서라도 나한테 예의를 차릴 방법은 있었어. 정말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자 할 생각이었다면 명확하게 교통정리를 했으면 돼. 자신이 먼저 상황 설명을 해 놓을 테니, 전화 통화는 그 후에 해보라고 말이야.


물론 그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짐작되는 바가 없진 않아. 연락처를 부탁한 사람이 그가 믿을만한 지인이고, 나에게 의사를 물어보면 나 역시도 괜찮다고 할 것 같으니까 일단 내 연락처를 넘겨주고, 바로 나에게 동의를 구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래, 그의 시나리오대로 진행되고, 내가 그보다 빨리 지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이 됐을 거야. 당신 말이 맞아. 지금 이런 ‘만약’이 무슨 소용 있어. 별거 아닌 일에 내가 좀 예민한 거라고 나도 생각했지. 그래서 아쉬움과 서운함을 깨끗이 접으려 했어. 그런데...


- 미리 언질을 받았으면 덜 당황했을 텐데...

아무튼 그분께 담당하는 매니저 번호

알려드렸습니다.


- 제가 문자를 남기는 사이에 ‘벌써’ 연락을 하셨군요.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프로그램 잘 보고 있어요.


이번에는 ‘벌써’라는 말이 찜찜함의 문턱에서 덜커덕 걸리더라고. ‘벌써’라는 말에서 자신보다는 상대를 탓하는 마음이 느껴졌거든. 아마도 나는 상대를 탓하는 ‘벌써’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제가 늦었네요’라는 말을 기다렸던 것 같아. 필요했던 전화번호를 알려줘서 ‘고맙습니다’라는 말보다 묻지 않고 내 전화번호를 알려줘서 ‘미안하다’라는 말을 바랐던 것도 같고. 맞아, 따지고 보면 순서만 바뀌었을 뿐, 결과 자체는 변하지 않았을 일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삐죽 튀어나온 실망을 도로 집어넣지 못했던 건 그의 마지막 말이 결정적이었어.


- 아, 저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겼어요


- 아하. 저는 작가님이 하셨던 때가 좋은 것 같아요.

지금보다.


지금은 내가 하지도 않는 프로그램의 시청 소감을 끝으로 우리의 대화는 황급히 조기 종영됐어.

그와의 짧은 대화를 마무리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드는 거 있지? 예의가 아닌 예의상, 인사가 아닌 인사치레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이라도 가장 성의 있게 연기(!)하는 게 그들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임무라서 상대에게 끝까지 들키지 말아야 한다고. 정체를 들키는 순간 나머지 진심도 거짓으로 의심받더라. 바로 지금처럼. 겸사겸사 건네려 했던 안부도, 미안함 대신 전한 고마움도, 방금까지 잘 보고 있다고 말한 프로그램의 예전이 더 좋았다는 고백도. 그의 진심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닿아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었어. 내가 알아야 했던 것은 나와 그의 지인, 두 사람 중에서 그에게 중요했던 사람이 나는 아니라는 것. 그리하여 그가 배려하고자 했던 사람도 내가 아니었다는 것뿐이었다고나 할까.


부탁을 해야 하는 당사자가 나라고 해서, 자칫 내 마음먹기나 내 결심이 중요한 것처럼 오해하기 쉽지만 부탁이란 건, 나의 뜻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들어줌으로써 완결되는 에피소드 같은 거라서 제아무리 부탁을 다른 이름으로 포장하려 한들 소용없어. 부탁은 가장 철저하게 부탁으로 보이도록 할 때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거든. 그럴듯한 안부로 치장하기보다 거두절미하고 부탁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낫고, 쉽게 내뱉는 고맙다는 말보다 한 번쯤 망설인 미안하다는 말이, 절대 의심받아서는 안 되는 진심만은 지킬 수 있더라. 이유가 어찌 되었든 거기에 예의상이나 인사치레로 하는 다른 말이 붙으면 ‘미안하다’와 ‘고맙다’는 말에서 찾아야 하는 상대의 진심은 사라져 버려. 아니 보이지 않게 돼. 마치 ‘내가’ 아니라 단지 ‘내가 가진 그 무엇’이 필요했던 것뿐이라는 것을 알려주고야 말겠다는 듯이 말이지.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다, 이게 내 원칙. 만약 내가 그의 지인 전화를 끝까지 받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말이야, 그저 변명처럼 들리기만 한 그의 말들이 진심만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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