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연재를 이어가며 하는 '핑계'.
어떤 일은 선후관계나 인과 관계를 예측할 수 없거나 파악할 수 없는 채로, 혹은 그러한 의지 자체가 상실된 채로 발생한다. 그리고 때로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을 마치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간주하며 이후 벌어질 일을 합리화하는 데에 쓰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내가 ‘여행의 소득’을 연재하다가 갑자기 두 번째로 대만 여행을 가게 된 것은 앞선 두 가지의 이유로 어느 정도 마음의 방향이 ‘다시 가야 한다’로 흐르고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지만 ‘그러나’라는 현실 방지턱에 가로막혀 주저했던 일이었음에도 급작스럽게 신용카드 3개월 할부 결제라는 액셀을 밟게 된 것은 그즈음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으며, 고로 나는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반드시 힐링 목적의 여행을 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처럼 말이다. 당연하게도 그와 이 여행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 사람 때문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잠시 부재를 알리기 위해 말할 수밖에 없었던 여행을 간다는 사실에는 늘 이유가 필요했다. ‘그냥’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마일리지 만료 때문에 가야만 한다고 핑계를 댔던 대만 첫 여행이 그랬듯이, 핑계는 이번처럼 전적으로 타의에 의지할 때도 있었지만 정작 핑계가 필요했던 이유는 타인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을 납득시키거나 나의 상황을 해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필요했다. 나를 움직이도록 하기 위한 핑계.
아니다. 절대라고까지는 할 수는 없겠지만 일부 진실이 있다고 해도 상당히 거짓말이다. 다음 달 카드값을 ‘나 몰라라’하고 여행을 떠나도 되는 사람으로 보일 수.... 그럴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핑계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에게 여행은 ‘그냥’ 일 수 없었다. 아니, 그냥이면 안 됐다. 비로소 인정한다. 매번 여행의 핑계가 필요했던 이유는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조금 더 당당하게 돌아다니기 위해서 내가 아니라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 필요했다. 무조건적인 이해를 받기 위한 핑계 말이다.
그 사람에게 받은 스트레스는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모두 다 열거할 수 없지만 그래도 고마운 이유는 그 하나하나를 기어이 끄집어내 ‘여행의 핑계’로 만들 때마다 사람들은 내 여행의 당위성을 즉각 부여해 줬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나는 그와 일을 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그러려고 죽을 만큼 힘들었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떤 일은 선후관계나 인과 관계를 예측할 수 없거나 파악할 수 없는 채로, 혹은 그러한 의지 자체가 상실된 채로 발생한다. 그리고 때로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을 마치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간주하며 이후 벌어질 일을 합리화하는 데에 쓰이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그에게 카톡이 왔다.
미숙한 저와 일하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혹여 함께 하는 동안 아쉬운 점이나
맘 상하게 해 드린 부분들은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아니라는, 그런 일 없었다는 말도, 당신도 나로 인해 받은 상처나 서운함은 접어달라는, 으레 인사치레로 건넬 수 있는 말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당신도 고생 많았다고만 했다. 그 사람이라고 나에게 왜 그런 게 없었겠냐 만은 그에게 전달할 나에 대한 핑계는 ‘그냥’ 없어도 될 것 같았다. 진심 없이 예의만 차린 문장 그 어디쯤에 그가 방점을 찍을지 나는 알 것 같았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도록 나를 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나 또한 그가 보낸 문장에서 그의 진심을 찾는 부질없는 짓은 하지 않았다.
우리 서로가 완전하게 인정할 수 있는 말은 ‘고생했다’ 그뿐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