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터키를 걷다_(5)

패키지 여행의 반은 가이드라는데, 아주 부정적인 가이드를 만났다!

by 현진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전부 너였어...

새벽 3시 결전의 날(?) 알람이 울립니다. 이 미친 시간에 일어나야 했던 이유는 바로 오늘이 열기구를 타는 날이기 때문이죠. 해가 뜨기 전에 열기구에 타야 합니다. 그래야 일출도 볼 수 있으니까요. 아주 무리한 기상시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꼭 타봐야 한다'라고 주장했던 그 이유를 제 눈으로, 귀로, 온몸으로 느껴볼 생각에 피곤함도 잠시 접어둡니다. 겨울에는 날씨 특히 바람 때문에 탈 수 있는 확률이 낮다고 하지만 우리가 간 이 계절에는 95% 이상 탈 수 있다고 합니다. 벌써 호텔 로비에는 우리 팀을 비롯한 다른 팀들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열기구 투어 픽업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죠. 오늘 같은 날이 패키지여행의 진가가 발휘되는 날이 아닐까 감히 말해봅니다. 적당한 업체 선정과 예약과 픽업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으니까요. 물론 그 대가로 다소 비싼 선택관광비(170유로)를 지불해야 하지만...


15분여 정도 차량을 타고 이동하니 열기구 스태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차에서 내려 준비해준 커피를 마시며 새벽 낭만을 즐겨봅니다.


그런데! 그때 들려온 가이드의 한 마디는
우리를 절망 끝으로 안내 했습니다.
오늘 열기구가 못 뜰 거 같다는데요?


바람이 생각보다 강하게 부는 게 이유였습니다. 맙소사! 이곳까지 온 이유가 전부 이것 때문이었는데... 심지어 95%가 탄다는 이 계절에! 우리가 타지 못하는 5%에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열기구 스태프들이 열기구를 가지고만 왔을 뿐 준비를 하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계속 30분만 더 기다려보자고 애원하듯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가이드 워낙 부정적인 스타일(?)이라 세상 비관적으로 말합니다.

아무도 준비 안 하는 것으로 봐서는
오늘은 안 될 것 같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카파도키아에서 2박 일정.

그럼 내일은 탈 수 있는 거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못 뜰 거 같다네요.
강풍이라서...
일단 30분만 더 기다려보죠..


'이보시오, 가이드 양반 그게 무슨 천청 벽력 같은 소리오?' 그날은 참. 가이드가 원망스럽더라고요. '아니 가이드라는 사람이 말을 왜 저렇게 부정적으로 하지? 이왕이면 기분 좋게 이야기해주면 안 되나? 돌아가면 내 후기를 꼭 쓰리라! 너무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은 흘러갔고, 날은 결국 밝고 말았습니다. 점점 포기가 되더라고요. '결국 우리는 탈 수가 없는 거구나... 이것도 여행의 묘미 아니겠어? 우린 다음에 다시 와야겠네 '


그때였습니다. 가이드 왈.

뜨는 것으로 결정 났답니다


그제야 스태프들이 부산스럽게 열기구를 트럭에서 지상으로 내리고 바람 넣을 준비를 시작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열기구에 뜨거운 공기를 넣는 모습이 제 눈으로 확인이 되는 순간 안도감이 찾아왔습니다. 아닌 척했지만 불운을 넘어서 그때 저는 불행하다고 생각했고, 좌절까지는 아니지만 슬퍼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다음 일정이 많이 남았으니 애써 괜찮은 척 친구와 사진을 찍으며 다음을 기약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억울했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리고 그 억울함은 부정적인(?) 가이드를 향했죠. '가이드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니까 될 일도 안 되는 거야!'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생각보다 우리의 포기가 빨랐던 것도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동안 다음 일정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던 것도 결국 탈 수 있게 됐을 때 그 누구보다 더 기뻤던 것도 그 부정적인(?) 가이드 덕분이었습니다.


마치 내일은 없는 것처럼(?) 다니는 패키지여행의 특성상 날씨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많이 받을 수밖에 없고, 그동안 오늘 같은 날씨를 마주하며 분명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 테죠. 그때마다 희망적으로도 이야기해보고, 달래도 보고, 질척 질척 더 기다려보기도 하고... 아마 그중에서 '부정적 상황 암시법'이 가장 괜찮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쓸데없는 기대가 주는 희망고문의 후폭풍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여행객들이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던 거죠. 어쩌면 그게 가이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돌이켜 보면 열기구가 뜨기로 결정된 그 순간, 가이드가 우리 중 가장 밝게 웃고 있었습니다.

이 고난과 역경을 넘어 저는 드디어 열기구에 타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꿈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열기구 여행을 안내해준 우리의 파일럿
열기구 투어 중 마주한 어마어마한 광경, 그런데 이건 실제로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어요
열기구 투어 하신 분들 이거 다들 한 번씩은 해보셨죠? :)


아. 여담인데요? ㅋㅋㅋ 그다음 날 열기구는 우리의 가이드가 호언장담했던 말대로 결국 뜨지 못했다네요. 그날 그 수많은 가이드들은 그 상황을 고객들에게 어떻게 전달했을까요? 그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왠지 남 일 같지 않아서 말이죠. 그러고 보니 우리는 정말 운이 좋은 여행자들이었습니다. 그 불운한 확률을 뚫고 열기구를 탄 사람들이니까요. 끝끝내 95%에 속하게 된 여행자들! 그런데 말입니다. 95%에 속하든 5%에 속하든 카파도키아에 갔던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다시 하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 다시 올 거야!
열기구 투어 (또) 할 거야!


저는 그때 어디에 속하는 여행자가 될까요? 여러분 행운을 빌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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